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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숨은 경주

통일전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71호입력 : 2021년 01월 07일
↑↑ 김경애 시인,
경북문화관광해설사
통일전은 경주시 남산동 920-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총 면적 6만6000㎡ 건평에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주역 위인을 모셨다.
신라 29대 태종무열왕, 30대 문무왕, 태대각간 김유신장군 세분의 영정이 봉안돼있다. 세분의 위업을 선양하며 분단된 조국통일의 실현을 기원함이 설립 목적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1976년 4월 22일 착공하여 1977년 9월 7일 개관하였다. 건물본전 통일전(統一殿) 현판(懸板) 휘호는 박정희대통령 친필이다.

건물양식은 신라시대 양식을 재현했다. 동궁과 월지, 황룡사지, 발굴 출토유물 등을 고증하여 축조했다.

정문을 들어서면, 소나무 등나무 산비탈 울창한 숲을 병풍삼아 고풍스런 정자를 낀 연못이 발길을 끈다.

넓은 마당 태극기 펄럭이는 정원주위로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장군 사적비가 위풍당당하다. 삼국통일의 주역 세분 위인의 업적을 기록한 비다. 무열왕 사적비 전면은 태종무열왕릉비의 글씨체다.
문무대왕 사적비 전면은 중국 오나라 명필 천발신참비 글씨체다. 후면은 용비어천가 글씨체다.
김유신장군 사적비 전면은 진흥왕순수비 황초령비, 후면은 월인석보 한글체다.
비문은 이선근 박사가 짓고, 글씨는 서예가 김응현이 썼다.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통일전의 외삼문인 흥국문(興國門)이다. 현판휘호는 서예가 조수호 글씨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을 통일한 황금기국가의 기상과 융성함을 이룩하였다는 뜻에서 흥국문이라 명했다.
통일신라의 위상을 상징한 연화문 숫막새, 당초문 암막새 기와로 지붕을 얹었다. 운공첨차(雲空檐遮) 소슬대공을 한 최고의 건물양식이다. 추녀마루 문손잡이는 용면(龍面)을 설치하였다.

통일전 내삼문인 서원문(誓願門)을 올라 앞을 내다보면, 속이 확 트이는 상쾌감이 밀려온다.
멀찌감치 건너다보이는 쭉 뻗은 가로수 길로 양옆 은행나무가 나이테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면 은행잎 푸른 기운이, 가을이면 샛노랑 잎이 한 폭의 풍경으로 장관을 이룬다. 여름날 울창하게 젖어드는 경치를 안겨주고, 겨울시린 바람에도 곧은 키 멋있는 나목들로 계절을 휘감고 간다.

서원문의 휘호는 서예가 최정균 글씨다. 통일신라시대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양식을 따와 돌계단 형식을 축조했다.
소슬대공과 운공첨자 건축에 기와를 이은 내삼문 안으로 발을 들인다.

경건함에 발자국 소리 낮추는 자세가 저절로 목례를 치르게 한다.
삼국통일의 성업과 호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조국통일을 염원하고, 그 실현을 맹세하자는 뜻에서 서원문이라 명했다.
향을 사르는 향료높이로 희미한 연기가 번진다. 위인을 기리는 숨결이 흐르는듯하다. 고 박정희 대통령 친필 휘호 현판 ‘통일전’ 본전건물 가득 향내음 은은하다.

무열왕⦁문무왕⦁김유신장군 영정이 모셔진 벽면이 위엄으로 차오른다.

백제 660년, 고구려 668년,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676년, 꿈꾸던 통일은 새로운 역사를 낳았다. 참으로 위대한 민족인 것을 후손들이 놓쳐버려 애닯은 통일이다.
그리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역사를 빛낸 위인들을 추모하고, 통일의 꿈을 살피라 이른 통일전이다.
천 년 전 조상님들이 민족지간에 싸우지 말고 오순도순 살고파 피땀 흘려 화합한 통일의 정체성을, 후손들이 잘 보존하지 못하고 총을 겨누는 민족으로 갈라섰으니 참으로 선조님께 죄스럽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은 말한다.
신라 30대 문무왕이 일통삼한(一統三韓)대업을 완성하기까지, 부왕(父王)인 29대 무열왕이 통일의 초석을 잘 다져놓았다고. 그리고 외삼촌인 김유신장군의 공덕도 한량없음을 서술한다.

봉안된 영정은 문무왕을 중심으로 오른편엔 태종무열왕, 왼편엔 김유신장군 영정이 모셔져 있다.

왕은 금관을 쓰고, 요대(腰帶) 요패(腰佩)도 금제품이다. 의복은 비단으로 지은 자색 빛깔의 신라의상이다.
태종무열왕 영정은 60세 때, 문무왕 영정은 40세 때의 모습을 추정해서 그린 김기창 화백 작품이다.

김유신장군 영정은 은관(銀冠)을 쓰고 요대 요패도 은제품이다. 사후인 흥덕왕때 흥무대왕으로 추존되었지만, 삼국사기 기록엔 왕으로 승격된 구체적 서술이 없다.

본전 ‘통일전’ 건물 양옆으로 늘어선 회랑은 호국불교의 원당 양식으로 조성하였다. 바닥에는 보상화문 전돌을 깔았다. 회랑벽면 설치된 그림들은 삼국통일 전후의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다.

김유신장군 단석산 수련도, 김유신장군과 천관녀도, 김유신장군 출전도, 무열왕 남천정 출전도, 강수 외교문서 작성도, 원광법사 세속오계 교화도, 삼국통일 영광도, 평양성 함락도, 매초성 당군 격멸도, 기벌포 대첩도, 문무왕 호국해룡도, 사천왕사호국불사도, 원효군사 자문도, 화랑 관창 용전도, 황산벌 혈전도, 남산성 축성도, 황룡사 9층탑 조영도 등 삼국통일의 과정을 그린 17점의 기록화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71호입력 : 2021년 0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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