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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숨은 경주

포석정(2)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67호입력 : 2020년 12월 10일
↑↑ 김경애 시인
경북문화관광해설사
겨울초입에 들어섰다.
코로나 똬리 튼 겨울입김이 싸늘하다. 천지강산 단도리 하는 경계의 선들이 날카롭다. 어디쯤 주춤하는 기색이 엿보이면 좋으련만, 자고새면 더욱더 조심조심 무장해야하는 일상이 살얼음판이다. 서로를 안정시키며 위로하고 위로 받는 존재의 품성이 각별한 요즘이다.

악귀를 물리치고 재앙을 막기 위해 추던 신라때 춤, 처용무(處容舞) 불러와 한바탕 질펀하게 추고나면 코로나 몹쓸 역병이 달아날려나!
그 춤은 신라왕경 달 밝은 밤에 번뇌를 떨치려 절실했거니

포석정은 신라 49대 헌강왕(875~886)이 산신으로부터 춤을 배운 터다. 신라의 왕들이 사시사철 맑게 흐르는 포석계에서 계욕을 하고, 헌강왕에게 춤을 가르친 산신 상심(詳審)이 살고 있다고 믿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조상과 남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서러운 유적지다.

【삼국사기】 55대 경애왕(924~927) 가을 9월, 견훤이 고을부에서 우리 군사를 공격하므로 왕이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태조가 장수에게 명령하여 정병 1만명을 출동시켜 구원하게 하였다. 견훤은 이 구원병이 도착하지 않은 틈을 이용하여, 겨울 11월에 서울을 습격 하였다. 이 때 왕은 왕비 및 후궁과 친척들을 데리고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며 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적병이 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갑자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왕은 왕비와 함께 후궁으로 뛰어 들어가고 친척과 공경대부 및 사녀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숨었다. 적병에게 붙잡힌 자들은 귀한 자 천한 자 할 것 없이 놀라고 진땀을 흘리며, 엎드려 노복이 되겠다고 빌었으나 화를 면하지 못했다. 견훤은 또 군사들을 풀어 공공의 재물이나 사사로운 재물을 약탈하고 대궐에 들어앉아 측근들로 하여금 왕을 찾게 하였다. 왕은 왕비와 비첩 몇 사람을 데리고 후궁에 있다가 군영으로 잡혀갔다. 견훤은 왕을 협박하여 극단적 선택을 하게하고, 왕비와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비첩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 그리고 왕의 아우뻘 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임시로 국사를 맡게 하였다. 이 사람이 경순왕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 기록을 보면 포석정은 경애왕이 신하들과 흥청망청 즐기다가 신라를 패망으로 이끈 비운의 장소로 치부된다.
참으로 귀하고 보배로운 삼국사기(1075~1151)·삼국유사(1206~1289)가 엮어진 시기는 신라가 패망한 후 긴 세월이 흐른 뒤다. 전깃불도 돋보기도 우리글도 없던 무명(無明)의 시절이다.
필기구도 암울했기에 빼고 덧 씌워진 구전(口傳)으로 전해진 역사서다.
필자는 불 밝고 돋보기 흔한 세상, 컴퓨터로 글을 써도 시 한편 짓는데 천 번을 퇴고 한다. 그러한데 무명의 신라적 책 쓰기는 오자 탈자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충이리라.
또한 역사의 기록은 승리한 자의 몫이기에 고려시대 기록 된 신라의 기록은 흠집이 새어 날 수도 있겠다 싶다.

【삼국사기】 경애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위웅이며 경명왕의 동복아우이다. 원년 9월, 태조에게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직접 신궁에 제사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삼국유사】 55대 경애왕이 즉위한 동광(同光) 2년 갑신(甲申; 924) 2월 19일에 황룡사에서 백좌(百座)를 열어 불경을 풀이했다. 겸해서 선승(禪僧) 300명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대왕(大王)이 친히 향을 피워 불공을 드렸다. 이것이 백고좌를 설립한 선교(禪敎)의 시작이었다

【삼국사기】 경순왕(56대 신라 마지막 왕, 927~935)은 전 왕의 시체를 서쪽 대청에 모시고, 여러 신하들과 함께 통곡하였다. 시호를 올려 경애(景哀)라 하고 남산 해목령에 장사지냈다. 태조가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제사에 참여케 하였다.

위의 기록들을 읽으면 경애왕은 외교활동도 진취적이고, 조상을 섬기는 예의범절, 어눌하고 소외된 계층을 살피는 어진 왕임을 알게 된다.

23대 법흥왕 시기 공인한 불교를 숭상하고 더 높고 넓게 깊이를 가하는 종교의 성찰도 짐작하게 된다.

견훤에게 무참히 주검을 당했거늘, 경순왕으로 하여금 신하들과 통곡에 이른 것은 재위 기간 업적이 훌륭했으리라는 공명이 아닐까.

헌강왕 시절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 때 홀연히 산신이 내려와 임금 앞에서 춤을 추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한동안 연회를 멈추게 하고 춤을 지켜보았다. 그 동작이 신하들에겐 보여 지지 않았다. 춤이 끝나자 신하들이 여쭈었다. 헌강왕이 “산신이 춤을 추고 갔다”고 했다. 신라의 국운을 살펴주는 상서로운 춤으로 어무상심(御舞詳審)·어무산신(御舞山神)이다. 이후에 나라 안에 널리 퍼져 고려 때까지 추어졌다고 전한다.
신라인들의 성지인 남산 입구에 위치한 포석정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가을 9월에 견훤이 고을부(지금의 영천, 경주에서 차(車)로 20분) 가까운 거리에서 신라를 공격하려 주둔해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그리고 태조 왕건에게 군사적 도움을 청한 상태다. 과연 한 나라의 왕이 적군이 쳐들어오려는 긴박한 현실에서 신하들과 흥청망청 즐길 겨를이 있을까. 그리고 견훤이 침범해온 음력 11월은 양력 12월이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유상곡수연을 즐기기엔 살얼음이 끼어서 불가능이다.

포석사(砲石祠)의 사(祠)자는 절 사(寺)자가 아닌 사당 사(祠)자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모셔 팔관회(八關會)를 개최하는 포석사에서 국난의 위기를 극복하려 남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다 경애왕은 적군에게 참변을 당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67호입력 : 2020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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