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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릉(1)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59호입력 : 2020년 10월 15일
↑↑ 김경애 시인,
경북문화관광해설사
성큼 다가온 가을을 맡으며 역마살 낀 나그네 되어 거니는 천년고도! 세월 흐를수록 신비롭고 아름답다.
먼발치 여심(女心)을 흔드는 갈대의 손사래에, 묻어 둔 그리움은 산발해 끝 간 데 없이 번지는 얼굴 어머니다.
계절이 안겨주는 눈물 만지며 홀로 거닐기 안온한 신라의 품안, 오릉이 감싸고 있다.
신라시조왕 박혁거세⦁알영왕비⦁2대 남해왕⦁3대 유리왕⦁(4대 석씨시조 석탈해왕) 5대 파사왕, 피장자의 진위를 떠나서 다섯 박씨 왕릉으로 오릉이라 전한다.

【삼국사기】시조의 성은 박(朴)씨이며,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前漢) 효선제(전한 제7대왕, 오봉 원년은 서기전 57년) 오봉 원년 갑자 4월 병진날(정월 15일)에 즉위하여 왕호를 거서간이라 하고, 그때 나이는 13세, 나라이름을 서라벌이라 하였다.

육부촌 돌산 고허촌장 최씨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의 숲 사이에 말이 꿇어앉아 울고 있었다. 찾아가보니 말은 간데없고 다만 큰 알이 있었다. 알을 쪼개니 어린아이가 나와 거두어 길렀다. 나이 10세가 되자 지혜롭고 영리하며 몸가짐이 조신하였다. 6부 사람들은 그의 출생을 기이하게 여겨 높이 받들었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으로 삼았다. 진한사람들은 호(瓠)를 “박”이라 하였다. 처음에 큰 알이 박과 같다하여 박(朴)을 성으로 삼았다. 거서간(居西干)을 진한에서는 왕이란 뜻이다. 〔혹은 귀인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아득한 옛날 박혁거세는,

오봉 원년에 나라를 열었도다.

1천년의 오랜 세월 서로 전하여,

겨우 한 구석이나마 보전하였도다.

계림의 땅을 바치고,

흑령성의 하늘에 와서 조회하였도다.

면면히 이어지던 삼성(박˚석˚김)의 제사가,

길이 끊겼으니 참으로 가련하구나.
-권근(權近)의 응제시(應制詩)-

시조왕은 17년 백성들에게 농토를 충분히 이용하여 농사와 양잠을 권했다. 19년 정월. 변한이 나라를 바치고 항복해왔다. 21년 고구려 시조 동명왕이 즉위했고, 서울에 성을 쌓아 금성이라 불렀다. 24년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사기(史記)의 기록처럼 박혁거세가 성인(聖人)임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읽혀진다.
30년. 낙랑군이 침범하려다가 국경 부근 사람들이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으며, 노적가리가 들에 가득 쌓인 것을 보고 서로 말했다, “금성 사람들은 서로 도둑질 하지 않으니 도덕이 있는 나라라고 할만하다. 군대로 몰래 기습한다는 것은 도적과 다름없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낙랑군은 군사를 거두고 돌아갔다.
어진 왕의 어진 백성으로 살아가는 평화로운 시국이다.

39년. 마한왕이 별세하자 신하가 왕에게 말했다. “서한왕이 이전에 우리 사신을 모욕했습니다. 이제 국왕이 죽은 기회를 틈타 공격하면, 그 나라를 충분히 평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혁거세거서간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재난을 우리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행위이다.”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곧 사신을 보내 조문하였다. 성인에 이르는 덕이 우러나오는 기록이다.

53년. 동옥저 지금의 함흥지방 사신이 와서 좋은 말 20필을 바치며 “우리 임금이 남한에 성인이 났다는 말을 들었기에 저를 보내 이를 바칩니다.”라고 말했다.

61년 3월, 거서간이 별세하였다. 사릉에 장사 지냈다. 사릉은 담암사 북쪽에 있다.

【동경잡기】사묘(祠廟).
혁거세묘(赫居世廟) 부의 남쪽 월남리(越南里)에 있다. 조선조 세종11년(1429)에 묘를 세우고, 매년 봄과 가을 둘째 달에 향과 축문과 폐백을 내려 제사하게 했다.

【동경잡기】성모사(聖母祠)
서악(西嶽)의 선도산(仙桃山)에 있다. 성모는 본래 중국 제실(帝室)의 여자로서 이름을 사소(娑蘇)라고 하였다. 일찍이 신선이 되는 술법을 배웠는데, 해동(海東)에 와서 머물면서 오래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드디어 신(神)이 되었다. 전설에 혁거세는 곧 성모가 낳은 이라 한다. 그러므로 중국 사람이 지은 찬(讚)에 『선도성모(仙桃聖母)가 어진 이를 배어서 나라를 창건하였다』고했다. 그러나 이 사당도 지금은 없어졌다.

【삼국사기】5년 정월에 용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나 오른쪽 갈빗대 여아를 출산했다. 할매가 이를 이상히 여겨 데려다 길렀다. 우물이름으로 ‘알영’이라 이름을 지었다. 자라면서 덕스러운 용모를 갖추어 시조가 이를 듣고 그녀를 왕비로 택했다. 행실이 어질고 내조가 훌륭하여 당시 사람들이 두 성인(聖人)이라 일렀다.

오릉 담장 안 동남쪽에는 신라시조왕비 알영정비각이 세워져 있다.
용의 옆구리 갈빗대로 탄생한 새 생명의 신비를 품고 가는 우물이다.
천년을 되비추는 설화 품은 알영정은 장대석(長大石)으로 덮어놨다.
돌을 서로 이어 고정시킬 때 쓰는 나비모양 쇠 박은 흔적이 뚜렷하다.
긴 세월 끄떡없이 바람이 눕힌 돌 뼈대로 알영정 우물속 감추는 품새다.
나비장 끼운 자국 선명히 남아있는 직사각돌기둥 천년장대석,
오래 견딜수록 견고한 돌기둥 쓰임새인 양 알영정 우물뚜껑으로 무겁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59호입력 : 2020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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