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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 꿈에 부풀다(1)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51호입력 : 2020년 08월 12일
↑↑ 김경애 시인,
경북문화관광해설사
장맛비 질척이던 여름철이 수그러지기도 전에 입추(立秋)가 지나갔다.
범람한 물 사태로 피해를 입은 전국이 물난리 복구로 어수선하다.
세계가 코로나19로 앓는 몸살기 쉬이 가라앉지 않는 시절이다.
‘장미’태풍이 몰고 간 장마전선이 끝을 보여, 시커먼 비구름 벗긴 하늘이 쾌청하다.
두문불출 마음의 문을 닫고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현실, 엇박자 놓는 일상을 단도리치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마스크 낀 걸음들이 조심스럽다.

매미소리 자지러진 해 긴 여름날 무작정 길나서는 여유로움이 피서가 된다. 낡고 닳은 곳을 새 단장한 황남동 옛길 느릿느릿 오래된 골목을 들여다본다. 역병도 기어이 물리칠 혈기 왕성한 청춘의 발길들 빼곡하다. 불타는 태양도 발맞추는 청춘남녀들의 젊은 기백이 꿈으로 뭉친 ‘황리단(皇理團)길’이다.

주소지의 공식 명칭은 포석로, 처음 이 길을 지나던 때는 웨슬레유치원 시절이다.
어린 날 소달구지 타고 포석 살던 큰고모 댁 가든 길 어렴풋이 겹친다.
경주시황남동 포석로 일대를 일컫는 큰길을 중심으로 양옆 골목길 전체를 일컫는다. 골목 구석구석 멋지게 탈바꿈한 변화에 맞게 트렌디한 별칭 ‘황리단길’이다.

경주시가 고풍스런 한옥마을 조성사업에 들어가면서, 기본정비계획과 현황조사를 거친 2012년 말부터 관광객들의 나들이가 시작됐다.
예스러움 접목시킨 전통가옥을 잇댄 상가들은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당당한 몫을 취하고 있다.
황리단길은 천년을 새롭게 돋을새김 하는 소통과 화합의 살아있는 도시로 자리매김한 핫 플레이스다.
역사를 품은 도시에 또 하나 볼거리, 먹거리, 한옥스테이, 자전거대여, 의상대여 입고 즐기는 경주관광 필수코스로 확 뜨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육부 중 황남동 지명의 유래는 알천 양산촌에 속한다. 이씨 성을 가진 집성촌으로 전한다.
고려 땐 황촌이라 불리었는데 임금이 살던 마을을 뜻한다. 황(皇)씨 무덤이라 불린 신라고분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황남동이라 칭했다.

〖경주풍물지리지(慶州風物地理誌)〗
⦾조선시대 경주6방(坊)의 하나로 황남방(皇南坊)이라 부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황남, 쪽샘, 앞중리, 뒷중리, 중리, 선돌백이, 놋전, 남천내, 노동 일부 등의 자연부락을 통틀어 부내면(府內面) 황남리라 고쳐 부름.
⦾1955년 시제(市制) 실시에 의하여 법정동인 황남동으로 부름.
⦾1973년 법정동인 황남동을 행정동인 황남동으로 운영.
작고한 김기문시인 ‘글밭’ 출판사에서 1991년 편찬한 기록이다.

타박타박 느린 걸음으로 훑어가는 황리단길 골목어귀에 황혼이 얹힌다.
견디며 버텨 온 삶의 흔적들이 질박하고 구성진 노래로 흘러든다.

황남떡집, 구,황남목욕탕 골목 선돌(비석)배기길로 들어선다.
고려시대 효자 손시양 정려비각(孫時楊 旌閭碑閣) 앞이다.
오랜 세월 효의 사상을 고취하며 마을을 지키던 유서 깊은 비석이다. 고려 명종 12년(1182)에 세웠으며 높이 2m의 비석으로 보물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모가 돌아가자 각 3년씩 묘소에 움막을 지어놓고 묘를 지켰다. 당시 유수(留守)가 왕에게 아뢰어 집에 정표(旌表)를 내리니 지금의 정려비다. 후면에 5행 130자로 효행 내용과 경위가 새겨져 있다. 노천에 서 있던 것을 1977년 기단을 설치하고 보호 각을 건립하였다.

낯익은 듯 낯설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니 화들짝 추억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강산이 두껍게 변한 세월, 친구 옥이가 퍼뜩 스친 것이다.

홀쭉한 골목길 옥이친구 살던 기와집, 대충 위치만 가물거릴 뿐 꼭 집어지진 않는다. 늘씬한 키에 미모의 유순한 친구 옥이 덕분에, 내성적이고 수줍음 타던 청춘의 그 한 때가 덩달아 아름다웠던 것이다.

도시 전체가 수학여행단,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젊은 청춘들이 딱히 기댈 시설은 별로 없었다.
천년유적지는 학창시절 소풍으로 때웠기에 특별히 젊음을 충전시킬 문화공간에 목말랐던 터다. 70년 중후반 음악다실은 유일하게 청춘의 낭만이 흐르던 장소였다. 왕궁, 본전, 사계절 등 음악다실에서 우정도 여물렸던 것 같다.

문화의 갈증을 음악으로 해소하던 시절이다. D.J(Disc Jockey)에게 쪽지로 신청해서 듣던 음악, 하루라도 멈추면 탈이 날 것 같은 청춘들이었다.

그 날도 단짝 친구들 서울서 온 가수 권태수 남궁옥분이 출연하는 통기타 라이브공연에 들떠있었다. 미니스커트에 긴 통굽부츠로 멋을 낸 우리들은 황남동 옥이내 집 골목어귀 손효자비 앞에서 기다렸다. 옥이 큰오빠는 목수였다. 잘 지은 한옥에 부모님과 한 집에 거처하는 대가족이었다. 그 날은 제삿날이라 음식 장만하는데 올케언니 거들어야하는 눈치를 봐야했다 약속된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가슴 태우다 용케도 빠져나온 옥이친구, 추억으로 확 닿는다.

추억이 뛰어나오는 골목길, 전봇대 가로등 희미하던 손효자비 친구집 외진동네가 사랑과 젊음의 활기가 생동하는 번화가로 훤하게 치장돼 있다.

도전하는 젊음의 꿈을 부풀리며 청춘의 열정 거침없이 쏟는 사업장들이 새롭게 들어선다. 도시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용솟음하는 희망을 읽기에 정감어린 황남동이다.

좁고 비뚤한 골목길을 만지며 노는 자잘한 삶의 여정이 여행의 색다른 묘미가 된다. 오래되어 정겹고 낯익은 풍경들을 현대감각으로 덧댄 보석 같은 ‘황리단길’이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51호입력 : 2020년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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