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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숨은 경주

교촌한옥마을 최씨가(家)(2)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43호입력 : 2020년 06월 11일
↑↑ 김경애 시인,
경북문화관광해설사
경주사람들, 배불리 먹고 누울 자리 등 따시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는 해학으로 입과 귀에 익은 말, “조천(교촌) 최부자 눈 알(아래)로 보인다” 이렇듯 멀지 않는 이웃인 최씨가다. 신라궁궐터 옆 마을, 남천을 내다보는 천혜의 환경에 둘러싸여있다. 양 사방 유서 깊은 자취로 더욱더 돋보이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선비가옥이다. 과객들 붐비던 그 시절 연상되듯 고색창연한 고택 주위로 관광객 발길 여전하다. 긴 세월 양반집의 원형을 보존하고 명부의 격조와 품격을 갖춘 역사의 산실이다.


원래는 99칸이었으나 1972년 사랑채가 불에 타 소실되었다.
2006년 큰 사랑채는 복원되었고, 작은 사랑채는 주춧돌만 남아 있다.
경주 내남면에서 터를 이루다가 ‘최언경’(1743~1804) 대에 교동으로 이주해 터전을 굳혔다.
건축당시 향교 유림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 뜻을 수용하여 향교보다 2단계 낮게 터를 깎아내고 집을 지었다.

소통과 화합으로 지역민과 더불어 나아가는 삶의 겸손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1700년대 건립 된 조선한옥의 솟을대문은 그 당시 향교유림들의 반대에 부딪쳐 원하는 취지에 맞게 지어졌다.
기존의 솟을대문 구조와는 달리 화려하지 않으며 평범함이 수수한 솟을대문 형식이다.

1970년대 필자 학창시절 서부리에서 노서동으로 굵은 대들보 한옥지어 이사했다.
아버지의 삼천리호자전거 바빴던 오남매 크던 집, 골기와 솟을대문 형식이었다. 문간채방 구조배치를 빼고 보면 최씨고택 솟을대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에 복원한 최씨고택 큰 사랑채는 명문집안의 역사를 대물림 하고 있다. 구한말 의병장 신돌석, 면암 최익현, 그리고 방문당시 스웨덴의 왕세자였던 구스타프 국왕, 의친왕 이강공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손님들이 머물렀다.

작은 사랑채는 1972년 11월, 불에 탄 흔적들로 주춧돌만 흩어져 있다.
그 당시 화재뉴스를 듣고 이모가 거쳐하던 마을이라 놀란 가슴 궁금증이 컸다.
겨울방학에서야 비로소 현장을 둘러보고 안타까움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안채는 남향의 ㅁ자 형태로 지어진 주인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생활공간이다. 붉은 벽돌 둘러친 마당 장독대로 큼직한 항아리들 장맛솜씨 담고 있는 듯하다.

행랑마당, 사랑마당, 안마당, 고방마당, 작업마당, 사당마당 등 6개 마당을 중심으로 각 건물이 배치되었다고 보면 된다.
고방마당 동편엔 정면 5칸, 측면 2칸, 현존하는 전통 한옥의 곳간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건물이 있다. 쌀700~800석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다.
국가와 민족을 살피는 애민정신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후하게 대접했다. 흉년이면 이웃들에게 나눔과 배품의 문을 활짝 열었던 곳간이다.

그 곳간에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자료가 발견되었다.
편지와 공문서, 명함, 서책 등 수 만 가지 경주의 보물급 문서들이다. 주요한 기록유산과 학술적 문서들이 큰 궤짝 세 개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다.

『동경통지』는 1933년 ‘최 준’이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던 ‘정인보’ ‘최남선’의 자문을 받아 집필했다. 목판본 14권 7책 중, 영남대학에 기증하고 남은 5권의 초고 원고도 나왔다. 독립운동관련자료, 경주국채보상운동문서 등, 보존된 무더기 귀중한 문서자료 발견은 최씨가의 명성을 더 실감하게 하는 세간 사람들의 관심사다.

발견문서 중 필자를 포함한 친정오빠, 남동생 4남1녀 모교인 <월성초등> 기사를 보면, 『경주시사』 제7편 교육 편에 경주월성초등학교연혁이 1927년이다.
개교식 당일 연설문이 수록돼 있는 새로운 문서기록에 ‘1911년 월성여학교 (월성초등학교전신) 설립자 ’최 준’이 경주군청 주사(오경수 전)에게 보낸 개교식 안내초청장’이 발견됐다. 16년을 앞당기는 월성초등학교의 설립자로 ‘최 준’선생을 다시 재조명돼야할 과제로 남았다.

계림·월성·황남, 경주시내권 초등학교 설립일자를 보면, 계림초등 1907년. 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 만화책에 등장하는 황남초등학교는 1940년이다.

우연한 기회에 창고를 열어 경주 최부잣집 정신의 보고(寶庫) 문서를 대거 발견한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최창호이사는 “위대한 건축물이나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전국 어디서나 많이 볼 수 있지만, 지난해(2019년 여름) 창고에서 발견한 기록유산들은 진정한 최부잣집의 정신적 보물입니다. 조선후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직 해제되지 않는 22~33년 전의 서류와 귀중한 문서만 해도 만 점이 넘습니다. 최부잣집을 더 알려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유물로서 이런 소중한 자료인 경주 자산을 제대로 조명해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우선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해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라고 소명을 토로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임시정부 땐 주석 김구에게 군자금을 보냈다. 광복 후에는 인재양성을 위해 계림대학과, 전 재산을 기증해 현 영남대학을 설립했다. 300년 최부잣집 부의 명성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한 나눔의 봉사정신이다.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는 삶의 철학으로 민족운동의 뜻을 펼친 최씨가, 훌륭한 가문의 영광이 실감된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43호입력 : 2020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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