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1-04-19 오후 06:43:2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숨은 경주

수운정(水雲亭)

중요민속자료 80호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60호입력 : 2018년 10월 12일
↑↑ 윤영희 경북문화관광해설사
ⓒ (주)경주신문사
경주는 천년의 세월동안 한 번도 천도하지 않았던 신라의 수도로 수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기에 현재의 경주로 거듭났다. 최근의 조사에서는 국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올 뿐만 아니라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로 꼽히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10대 고대도시의 하나다. 신라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다.

신라와 고려는 불교국가였지만 좀 더 꼼꼼히 살펴보면 경주에는 유교문화도 산재해 있다. 삼국시대에 이미 유교가 들어왔고 고려시대는 불교국가였지만 행정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관찰사가 있던 경주는 뿌리 깊은 불교문화의 전통위에 수준 높은 유교문화를 꽃피웠다. 

2010년,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독락당, 동강서원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가장 큰 양반마을로 경주 손 씨와 여주 이 씨가 함께 살고 있다. 두 가문의 종갓집은 물론 파종택, 사당, 정자 등 많은 건축물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자, 정사, 누는 휴식을 취하고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거나 공부하고 사색하는 곳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정자는 많은 선비들이 자신의 학문을 닦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이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정자와 정사의 공간은 건물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건물외부로 확장하여 자연을 건물 속으로 끌어들여 주변경관과 더불어 하나가 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마을 내부에는 정자가 10개나 있을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보여 준다. 관가정처럼 살림집과 이어서 짓거나 양졸정처럼 사랑채이면서 정자로 쓰이기도 했지만 적당히 외진 곳에도 지어졌다.

그 중에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수운정을 살펴보자. 양동마을의 많은 정자중에서도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운정은 마을 안에 있지만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양동마을은 ‘물(勿)’자모양의 마을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왼쪽 획인 산줄기 언덕에 있으며 앞에는 안강의 드넓은 들과 경주 가는 길이 멀리 보인다. 마을에서도 외따로 있다 보니 번잡하지 않고 호젓하여 사색하기에는 그저 그만이다. 

수운정은 월성 손 씨 문중의 정자로 우재의 증손인 청허재 손엽(孫曄:1544~1600)이 1582년에 세웠다. ‘수운정’은 물과 같이 맑고 구름같이 헛된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뜻의 ‘수청운허’(水淸雲虛)에서 비롯되었고 나머지 글자를 본인의 호로 삼았다. 자연과 함께하는, 그리고 성리학을 공부하고 사색하는 선비들의 삶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였다. 손 엽은 사마시(지방과거)에 합격했으나 학문에 대한 열정을 삭일 수 없어 벼슬을 마다하고 향리에서 유학자들과 교류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손 엽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부터 3년 동안 겪은 정황을 엮은 용사일기(龍蛇日記)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왜구가 동래부를 함락하고 한양으로 치달을 때 경주 집경전에 모셔져있던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수운정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이후에도 예안에 있는 서당으로 옮겨 봉안한 공로로 집경전 참봉이 되기도 했다. 그 후, 강릉 집경전으로 이전 봉안되었으나 결국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 태조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은 전주의 ‘경기전’에 유일하게 봉안되어 있는 아주 소중한 유적으로 1410년에 제작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어진을 옮겨 화를 면했다.

수운정은 정자와 관리사(행랑채)로 이루어진다. 정자는 정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정자와 ‘ㄱ’자를 이루며 뒤쪽에는 행랑채가 있다. 뒤쪽으로 올라가 마루에 앉아 보면 드넓은 안강들을 옆에 둔 듯 가슴이 시원하다. 특히 방과 마루의 앞에는 계자난간을 둘렀는데 연꽃까지 정교하게 새겨 놓아 아주 격식 있는 정자임을 알 수 있다. 그 자리에 앉아 마루에 걸려 있는 편액인 ‘수운정’ 글씨는 마을 옆을 따라 흐르는 안락천과 닮았다. 50년 전만 해도 배가 드나들며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마을 전체가 자연친화적이지만 글씨마저도 내를 따라 어우러지고 있다. 회재의 추성(秋聲, 가을이 오는 소리)을 이 밤에 읊어보자.

월색금소분외명(月色今宵分外明: 오늘 밤 달은 휘영청 밝고 )
빙란정청이추성(憑欄靜聽已秋聲: 난간에 기대어 귀 기울이니 어느새 가을소리)
상음일곡무인회(商音一曲無人會: 가을노래 한곡조차 같이할 이 없으니)
상상모사모경(上霜毛四五莖: 귀밑에 흰 머리가 몇 가락 더 생겼고나)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60호입력 : 2018년 10월 12일
- Copyrights ⓒ경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INTERVIEW
경주오디세이
경주라이프
포토뉴스
경주인살롱
사회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39,946
오늘 방문자 수 : 46,609
총 방문자 수 : 4,558,614,600
상호: 경주신문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69 / 발행인·편집인 : 손동우 / 발행인 : 정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동우
mail: gjnews21@hanmail.net / Tel: 054-746-0040 / Fax : 054-746-004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024
Copyright ⓒ 경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