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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숨은 경주

탑이 있는 풍경

감은사를 찾아서<1>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53호입력 : 2018년 08월 17일
↑↑ 김경애 경북문화관광해설사
추령재를 넘는다.

살집 많은 산등성이 곧게 쪼개 골 타놓은 골짜기엔 바람의 무늬도 높낮이 없이 짜여지는지 봉우리 닿을 듯 걸터앉은 뭉개구름 사이로 하늘빛이 창창하다.

골 깊은 산새의 풍광에 홀려 길을 터면 동해 바닷바람 코끝에 닿고, 다시금 가르마 같은 흙길로 좁혀들면 가뭇없는 세월의 부대낌에 덩그러니 남은 동, 서 삼층쌍탑이 두 팔 활짝 벌려 갖은 손 다 펴 반갑게 길손을 맞는다.

감은사(感恩寺,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의 1)

30대 문무왕(이름 법민, 태종무열왕의 맏아들 어머니는 김유신의 누이 문희)이 삼국통일 대업을 이루었으나 동해구를 통해 왜병들이 침입해 오자 왕은 죽어서도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하에 절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31대 신문왕(이름 정명, 문무왕의 맏아들) 2년(682) 부왕의 뜻을 받들어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에서 창건한 호국사찰 기록이 【삼국사기, 유사】에 전해진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효심으로 이룩한 감은사지 *“폐사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후기 정조(正祖, 1776~1800) 초에 편찬된 【범우고(凡愚攷)】에 폐사 기록이 있고,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유물로 보아 조선시대까지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무대왕은 평소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죽은 후에 호국의 대용(大龍)이 되어 불법을 받들어 나라를 수호하려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한통합, 전쟁 없는 한민족의 얼을 역사 중심에 굳건히 세우고 평화의 도약을 다졌지만 동해구로 출몰하는 왜구들을 안심하지 못해 죽어서도 오직 나라를 수호하기 위한 일념을 불태운 참으로 위대한 왕.

‘가을 칠월 일일에 왕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문무라 하고 유언에 따라 동해구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다. 속전(俗傳)에 왕이 용으로 화하였다 하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 한다.’

거대한 서사시의 감동으로 묵상의 혼불을 당기게 되는 【삼국사기】 문무왕 유언,

“과인은 국운이 어지럽고 전쟁하는 시대를 당하여 서쪽을 토벌하고 북쪽을 정벌하여 강토를 평정하고, 반역하는 자는 물리치고 화해를 원하는 자와 손을 잡아 마침내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두루 편안하게 하였다. 위로는 선조의 교훈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오랜 숙원을 갚아주었고, 전쟁 중에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널리 상을 주고, 안팍으로 관직을 고루 나누어 주었으며, 병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어 백성들이 태평세월을 누리게 하였다. 또 납세를 줄이고 부역을 가볍게 하니 집집마다 넉넉해지고 사람마다 풍족해져서 백성은 안정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어졌으며, 창고에는 곡식이 산처럼 쌓이고 감옥은 텅비어 풀이 무성해졌으니, 어두운 곳이나 밝은 곳이나 조상들께 부끄러움이 없었으며, 벼슬아치와 백성들에게도 짐 진 것이 없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어려운 고생을 무릅쓰다가 드디어 고치기 힘든 병에 걸리고, 정치와 교화를 위하여 걱정하고 애쓰다가 병이 중하게 되었다. 운명이 다하면 이름만 남는 것은 고금에 한결같은 법칙이니 홀연히 죽음의 길로 되돌아 간 듯 무슨 여한이 있으랴, 태자는 일찍부터 덕을 쌓아 오래도록 동궁의 자리에 있으니, 위로는 여러 재상으로부터 아래로는 뭇 관료들에 이르기까지 가는 사람을 잘 보내는 의리를 어기지 말고 있는 사람을 잘 섬기는 예절을 잊지 말라. 그리고 나라의 임금은 잠시라도 비워 놓을 수 없으니 태자는 곧 내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세월이 가면 산과 계곡도 변하고 세대도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 저 오왕(吳王)의 북산 무덤에서 어찌 금향로의 광채를 볼 수 있으며, 위왕(魏王)의 서릉을 바라봄도 세월이 흐르면 오직 동작의 이름만 듣게 되는 것이다. 그 옛날 나라를 다스리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 흙무덤이 되어 나무꾼과 목동들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여우와 토끼들은 그 곁에 구멍을 뚫고 사니, 부질없이 죽은 사람의 일에 많은 경비를 들여 재물을 낭비하는 것은 역사서의 비방거리가 되고, 헛되이 백성들을 고되게 하는 노동의 수고로움만 클 뿐 영혼을 평안한 안식으로 이끌지 못 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고 아픔이 그지없으니 이와 같은 것들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임종 후 열흘이 되면 고문(庫門)바깥 뜰에서 불교 의식에 따라 화장하라. 상복(喪服)의 차림새는 정해진 규정에 따르되, 장례 절차는 철저히 검소하고 간소하게 하라. 변방의 성읍(城邑)을 지키는 일과 요새 및 주와 군의 과세를 부과하는 일에서 요긴한 것이 아니면 잘 살펴서 모두 폐지 할 것이며, 율령(律令)과 격식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즉시 고치고 바꿔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막론하고 나라 전체에 이 뜻을 백성에게 알게 할 것이며, 주관하는 다음 왕이 이를 시행하라”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53호입력 : 2018년 0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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