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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숨은 경주

제비꽃 간지럼 타는, 태종무열왕릉(3)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51호입력 : 2018년 07월 26일
↑↑ 김경애
경북문화관광해설사
새끼손톱 쬐그만 제비꽃잎 반한 몸짓으로 보랏빛 싸여 굴러가는 능, 천년을 궁글린 쉼의 공간에 마음을 뉘이면 솔숲 사이 번져오는 또 하나의 아득함...... -아득하면 되리라- 박재삼의 詩가 퍼뜩 가물거린다.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역사순방 답사만 다니다가 어느 해 詩동인들과 문학적 영감을 얻을 양, 작정하고 신라의 능을 두루 순례한 적이 있는데 찍은 수십장 사진을 펼쳐보니 더러는 이능저능 분간하기 어려워져 캐 온 詩心마져 놓쳐버린 아쉬운 기억이 있다.
선도산 뻗은 구렁 남쪽 기슭으로 신라의 능묘 가운데 주인공이 확실한 (재위 654~661, 김춘추)태종무열왕릉.

*신라 56왕 중 왕릉으로 전해지는 것은 38기, 삼국사기에 51대 진성여왕은 “12월 을사에 왕이 북궁에서 죽었다. 시호를 진성이라 하고 황산(黃山)에 장사 지냈다” 언양 양산쪽에 능이 전해지고, 56대 경순왕능은 고려태조(太祖) 왕건의 첫째딸 낙랑공주와 다시 혼인해서 신라를 떠난 후 경기도 연천에 모셔져 있다. 36기의 왕능이 경주에 안주하는데 주인공 銘이 확인 된 것은 태종무열왕릉과 안강에 있는 42대 흥덕왕릉 2기다.

火葬의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제30대 문무왕, 제34대 효성왕, 제37대 선덕왕, 제38대 원성왕이, 『삼국유사』 왕력에서는 추가로 제51대 진성여왕, 제52대 효공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이 화장식 장례를 취했다.

*“신라왕릉에 관한 기왕의 연구는 문헌사 뿐만 아니라 고고학과 미술사 분야의 여러 선학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를 시기별로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구전과 문헌 기록으로 전승되고 있던 신라 왕릉의 피장자 진위여부에 대해 현장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던 그 시기는 조선 후기인 18세기 초와 19세기 초로 경주부윤을 지낸 권이진(1668~1734)의 『동경잡기』刊誤(1712년), 화계 유의건(1687~1760)「羅陵眞贋設」(1730년), 박민효(?~1747) 「五陵辨」, 추사 김정희(1786~1856)의 「眞興王陵攷」(1817년)에서이다”

“신라 왕릉의 존재여부 및 위치를 명시한 가장 오래된 사서는 고려시대 간행된 【삼국사기】(1145년)와 【삼국유사】(13세기말~14세기 초)인데 地名, 寺名. 方向,등으로 기록돼 지명도 바뀌고 절도 허물어 사라지고 구분 없는 방향의 한계점에 이르기에 두 문헌은 상호 보완적 위치에 있다”는 이근직 교수의 강의다.

무열왕의 첫째아들 법민은 통일을 완성한 30대 문무왕,

둘째아들 인문은 당나라 유학파인데 그가 쓴 太宗武烈大王芝碑 2행 8자 비문으로 능의 주인공 실명확인이 증명된 셈이다.

국보로 지정된 비석의 소맷돌 계단을 오르면, 주름 또렷한 목을 쭈욱 뻗고, 뒷발 불끈 힘 들어간 자세에, 뿜는 열기인 양 입 주위 붉게 상기 된 채색으로 전진하는 거북모양 귀부와 마주친다. 연꽃무늬 둘러친 화강석 귀부등위 꽂힌 빗돌은 사라지고 비신의 갓머리 장식인 재질 연한 안산암 이수엔 오른쪽 왼쪽 각 세 마리씩 여섯 마리 용이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인 비늘자국을 연출하며 용틀임 당당하게 서로 엉켜있다. 역동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여의주를 꽉 움켜진 발톱 묘사 등 꿈틀거리는 생명체의 입김이 느껴진다. 통일신라시대 석공 예술의 극치를 실감하는 최고의 걸작품을 감상함이 가슴 설렌다.

텅 빈 듯 아득하고 아득한 듯 텅 빈 능의 풍광, 선도산 골 깊은 품이 비추는 자연과 어울려 우뚝한 능선에 업혀 흐드러지는 보랏빛 춤사위, 간지럼 태우는 제비꽃잎에 굴러가는 아득한 낭만의 태종무열왕릉.

오래 전, 책을 읽은 후 사유의 깊이에 닿아 영혼의 위안을 얻었던 강석경 산문집 《능으로 가는 길》중 <5. 고독에 대하여> ‘무열왕릉과 서악고분군’ 끝 문장을 옮겨 본다. “어느날 무열왕릉에 와서 알았네. 내가 왜 인적없는 빈터의 풍경을 사랑했는지를. 그것은 누구에게도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던 내 안의 깊은 뜨락이라는 것을. 고독이란 샘물을 길어올리며 나만이 거닐 수 있는 금단의 정원이라는 것을.”

*이근직 삼국사기 강의
*이근직 저서 『신라왕릉연구』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51호입력 : 2018년 0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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