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1-04-16 오후 07:42:53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숨은 경주

독락당<獨樂堂> 1 - 독야청청 향나무 한 그루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45호입력 : 2018년 06월 15일
↑↑ 윤영희 경북문화관광해설사
ⓒ (주)경주신문사
꽃피는 봄을 시샘하듯 하늘은 눈을 뿌렸다. 어릴 적, 잠에서 깨어 눈이 오는 하늘을 바라보면 마치 선녀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어여쁜 시절도 있었다. 소리도 없이 다가와 선물처럼 눈이 내리면 하얀 장독대에 발자국을 찍으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하늘을 느끼곤 했다. 특히 남쪽지방은 귀한 손님처럼 여기던 함박눈이었다.

그 눈길을 헤집고 다가간 독락당! 회재가 쓰다듬었던 손길과 눈길이 보이는 곳, 이제 회재를 만나보자!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향리에 돌아와 1530년대 후반에 지은 살림집으로 조선시대, 자연친화적인 주택으로 첫손에 꼽힌다.

양동마을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독락당은 아는 사람들만 찾는 고즈넉한 집이다. 500년의 세월동안 한결같은, 아직도 선생의 체취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가까이 양동마을에는 선생이 태어나고 평생 아들을 사랑했던 어머님과 형을 우러렀던 동생이 계시던 곳이다. 그런데 왜 이 곳에 집을 지었을까?

회재는 1491년 양동마을 외갓집인 서백당에서 태어났다. 조선시대는 혼인을 하면 보통 여자들은 시집으로 들어가 친정에 몇 번 가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시집에 갇혀 살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남자가 처가에 들어와 사는 것이 낯설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장가가고 시집간다’는 말을 같이 써 왔다.

그 사위가 아주 마음에 드셨는지 장인이신 양민공은 살림집을 지어 주었다. 처가동네로 장가온 아버지, 번(蕃)은 성균관 유생이었던 인재였다. 장가들어 처음 본 아들이 자라나며 하나를 얘기하면 열을 아는 총명한 아들, 아버지 번이 그렇게 귀하게 여기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시집살이가 그러하듯, 처가살이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양동마을은 빼어난 환경에 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최고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한 번씩 드넓은 안강들을 지나 물 많고 산 좋은 옥산으로 나들이 갔다.

당시만 해도 옥산에는 천년고찰인 정혜사가 있었고 도덕산중턱, 절벽아래에 두덕암도 있었다. 비록 스님들이 천민으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학문이 깊고 지혜로운 스님도 계셨겠지... 스님들도 똘망똘망한 어린 회재를 아주 귀하게 여겼을 것이다.

아버지 번(蕃)은 그들과 밤새워 토론하고 인생을 논했던 천생 선비였으리라. 품에서 잠시도 놓고 싶지 않은 어린 아들 적(迪)을 데리고 옥산으로 가서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회재도 아버지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으리라.

당시 독락당 자리에는 작은 초가집도 있었다. 아버지의 안목으로도 자신을 뛰어 넘는 자질을 지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지만 회재가 10살 무렵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느 시절이나 그러하듯 관리들은 현직에 있을 때는 개인적인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에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로 선정되었던 다산 선생(정약용, 1762~1836)도 임금을 잃고 강진으로 유배가 다산초당에서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회재도 아버지와 보냈던 추억이 곳곳에 묻어 있는 곳,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그 마음을 담아 회재는 독락당을 지었다.

세상 모두였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지금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줄 텐데... 그 마음을 독락당으로, 계정으로 형상화되지 않았을까! 아버지, 지금도 내 눈에, 가슴에 선연한 아버지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관어대 너머, 계정에서 보는 자그만 바위에 향나무 한 그루라면! 아버지 회재가 심었는지, 아들 전인이 그리했는지... 아니면 꿈에서도 보고 싶었던 아들회재에게 주는 아버지 번의 선물일까!

청산곡 자옥산 깊은 곳에 초가 한칸 지어두고

반칸은 청풍(淸風)주고 반칸은 명월(明月)주니

청산은 들일 데 없어 둘러두고 보리라


내게도 내 맘처럼 나를 잘 알아주는 학창시절 친구가 있다. 가까이 살아서 서로의 집도 수시로 드나들던... 그 친구와 요즘은 더러 만나 밤새 이야기를 한다.

특히 울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그렇게 부러웠단다. 그 이유를 이제야 들을 수가 있었다. 당시의 아버지로는 드물게 딸인 나를 그렇게 예뻐하더란다. 무뚝뚝하고 엄하고 표현하지 않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다가 울 아버지를 보니 ‘눈에서 꿀이 흘렀지!’라며 당시를 추억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에게 말을 놓고 아버지를 놀려먹던 철없는 막내딸이었다. 야단맞을 때만 ‘예’하던... 그래서인지 편찮으신 엄마 아버지, 나랑 같이 있고 싶다던 말에 망설이지도 않고 나는 우리 집으로 모셨다. 힘도 들었지만 그게 또 나의 힘이었다. 문득 엄마아버지가 보고 싶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45호입력 : 2018년 06월 15일
- Copyrights ⓒ경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Tags : 독락당 문화관광해설사 향나무 나무
 
INTERVIEW
경주오디세이
경주라이프
포토뉴스
경주인살롱
사회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39,946
오늘 방문자 수 : 43,883
총 방문자 수 : 4,558,611,874
상호: 경주신문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69 / 발행인·편집인 : 손동우 / 발행인 : 정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동우
mail: gjnews21@hanmail.net / Tel: 054-746-0040 / Fax : 054-746-004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024
Copyright ⓒ 경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