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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녀와 비형랑(上)

진지왕의 혼백과 랑을 나눈 도화녀, 그의 아들 비형랑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38호입력 : 2018년 04월 26일
진지왕은 신라 제24대 진흥왕의 둘째 아들이다. 진지왕이라는 이름은 생소할지라도 그 아버지 되는 진흥왕은 신라사에서 익숙한 이름이다.

또 그 손자는 최초의 진골왕으로 알려진 무열왕이니 정작 본인보다는 조상과 후손으로 하여 유명한 인물이다. 삼국유사에서도 <도화녀와 비형랑>, <미륵선화 미시랑과 진자사>조에 두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니 비교적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지왕의 아버지 진흥왕은 스스로를 인도의 아쇼카왕에 비견할 정도로 비슷한 길을 걸었던 6세기 동아시아의 어지러운 국제정세를 잘 이용하여 통일 이후보다 더 영토를 넓혔던 신라 제24대 왕이다.
그는 스스로를 전륜성왕으로 자부했다. 전륜성왕은 부처님의 정법으로 세상을 평온하게 다스려 장차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올 수 있는 기반을 닦는 왕이다. 전륜성왕이 그 기반을 닦을 때 땅을 평탄하게 만들고 방해가 되는 암석과 산악을 깨뜨리는 등의 일을 돕는 보기(寶器)를 금, 은, 동, 철륜이라고 한다.

진흥왕은 두 아들의 이름도 동륜과 철륜으로 지을 정도로 불교에 깊이 심취하여 있었다.
물론 단순한 심취가 아니라 주변국들을 통합하여 신라의 이름을 만대에 전하려는 데 그 깊은 뜻이 있었다. 그런데 왕위를 계승하게 될 큰 아들 동륜이 태자로 책봉된 지 6년 만에 죽어버렸다. 동륜이 죽을 때 동륜에게는 다섯 살 난 아들 백정이 있었다. 진흥왕이 하세할 때는 아홉 살이었다. 진흥왕 자신이 일곱 살에 즉위했던 것을 미루어 보면 장손 백정이 왕위를 이을 수도 있었겠지만 미처 태자책봉을 하지 않은 채여서 왕위는 둘째 아들인 철륜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즉위 4년 만에 철륜은 백정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나라사람들이 철륜을 폐위시킨 까닭을 ‘정란황음’이라고 했다. 왕으로서 정사를 돌보는 것은 뒷전이고 色을 밝히기만 했다는 이야기다.

사량부 민가에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더란다. 사람들은 여인을 도화녀라 불렀다. 왕이 궁으로 불러 관계하고자 하나 도화녀는 지아비가 있는 몸이라며 왕의 명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왕의 분부만 받들면 배고픔과 모든 구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서녀의 신분이 아닌가. 이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또 아무 때나 오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여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제왕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할 절개였다.

“지아비가 없다면 어떠하냐?”
“그러면 될 수 있습니다”
“알았노라. 돌아가라”

여인은 돌아갔다. 그뿐이었다. 왕은 도화녀를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이 해에 왕은 폐위되어 세상을 떠났는데 그 이년 뒤에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다. 남편이 죽고 난 슬픔에서 겨우 벗어난 도화녀에게 왕의 혼백이 찾아왔더란다. 혼백은 이레를 머물고 떠났는데 그 뒤 여인은 열 달이 지나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이름을 여인은 비형이라 지었다.

듣고 보니 자신의 사촌 동생이라, 진평왕은 비형을 궁궐로 불러들여 집사의 벼슬을 내렸다. 낮 동안은 맡은 일에 충실했지만 밤만 되면 비형은 월성을 날아 넘어 황천언덕으로 가서 무리들과 놀았다. 이상하게 여긴 왕은 어쩌나 보자고 신원사 앞개울에 다리를 놓으라고 명령했는데 비형은 무리들과 하룻밤 사이에 돌로 다리를 놓아 왕은 물론이고 온 나라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귀신다리라고 불렀다.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튼튼한 다리를 만들다니, 그야말로 귀신같은 솜씨라는 뜻이었다. 유사에서 전하는 이야기는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이것뿐이다.

이처럼 철륜은 정란황음은커녕 민가의 서녀의 절개도 지켜줄 만큼 자애롭고 지혜로운 왕이었다. 혼백으로 도화녀를 찾아갔을 때도 그녀의 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나서야 합환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돌아가신 뒤 시호(諡號)도 진실로 지혜로운 왕이라는 뜻으로 진지왕인데 정란황음이라니, 뭔가 앞뒤가 어긋난다. 앞뒤가 어긋나는 이 이야기,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신라 사람들이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래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진흥왕의 하세는 갑작스러웠다. 마흔 셋이라는 나이는 죽음을 예견하기에는 확실히 느닷없는 나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아들의 죽음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동륜이 죽은 뒤 아직 태자를 정하지 않을 만큼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후사에 대해서 이렇다 할 언질도 없던 터였으므로 왕실은 바로 혼란의 도가니에 휩싸이고 말았다. 선왕의 신료였던 거칠부가 재빨리 왕실을 장악하고 차자인 철륜을 왕의 자리로 밀어 올렸다.
지증왕 때부터 왕비를 배출한 모량부의 박씨 세력도 힘을 모아주었다.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모두 왕비족이 박씨이며 철륜도 처가가 박씨족이다. 한편 왕실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영험의 가람, 흥륜사의 중 진자는 선왕의 하세와 철륜의 즉위에 따른 혼란과 불안을 거두고 용화세계를 펼쳐 줄 미륵부처님이 하생하시기를 빌고 또 빌었다. 덕분이었던지 동륜계, 즉 동륜의 아들 백정과 백정의 어머니 만호부인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이 조용했다.

철륜은 일단 거칠부에게 내정 전반을 맡겼다. 그리고 이듬해 쳐들어온 백제군을 막아내고 그 접경인 영동 이산에 내리서성을 쌓았다. 신궁을 참배하고 죄수들을 너그럽게 사면해주고 중국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자신의 등극을 알리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정순채 경북문화관광해설사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38호입력 : 2018년 0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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