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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샘 신라 토기 그림은 흉노 후예임을 과시하던 장례행사!!

향가식 해법으로 바라본 토기 문양의 재미있는 해석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11호입력 : 2019년 10월 24일
↑↑ 지난 16일 공개된 신라행렬도가 새겨진 토기 복원 전개도.

↑↑ 김영회
향가연구가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이 묻힌 경주 쪽샘지구 발굴현장에서 신라시대의 토기가 출토됐다. 토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그림은 지난 10월 17일자 언론에 공개되었다. 향가를 연구하는 필자는 그림의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향가 제작법에 의해 설명이 가능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림들은 향가 문화를 있는 그대로 그려놓은 그림이었다. 향가 제작법을 토기 그림에 적용해 그림이 가진 의미를 풀어보겠다.

최초의 향가는 <서동요>다. 진평왕 때 만들어졌다. 진평왕은 서기 579~632년 재위했다. 토기의 그림은 1500여 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서기 500년 대 만들어진 토기다. 즉 향가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토기도 만들어졌다. 시기상으로 어긋나지 않는다.

그림을 보면 행렬 맨 앞에 기마무인이 가고 있다. 이 기마무인은 흉노의 왕으로 분장한 사람일 수 있다. 흉노족은 기마 유목민족이었다. 흉노는 신라와 관계가 깊다. 흉노의 일파가 경주에 이주해 신라의 헤게모니를 잡았다는 여러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신라 향가와 고려향가에는 ‘돌(頓)’이라는 글자가 나오고 있다. 신라향가는 <원가>이고, 고려향가는 <보개회향가> 등 6개의 향가에 출현한다. 25편에 불과한 향가에서 이 정도라면 엄청난 양으로 보아야 한다.

돌(頓)이라는 글자의 사전 상 뜻은 ‘흉노왕의 이름 돌’이다. 흉노의 왕 중에서 ‘돌(頓)’이라 는 글자를 쓰고 있는 왕은 ‘묵돌(冒頓)’이다. ‘돌(頓)’은 향가의 보언(報言)으로써 ‘묵돌’을 특정해 가리키고 있다. 향가의 작자가 향가를 연출하는 이에게 ‘묵돌왕’을 나오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글자였다. 그림의 행렬 맨 앞에 서있는 기마무인이 흉노족의 왕 ‘묵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기원전 202년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자신을 공격해오자, ‘백등산’이라는 곳에 7일간 포위하여 ‘유방’을 죽음 직전까지로 몰아 넣었다. ‘유방’은 겨우 도망친 뒤 ‘묵돌’ 형제의 맹약을 맺는 처지가 되어야 했다. ‘묵돌’ 동시대의 중국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화신이었고, 흉노족에게는 전설의 영웅이었을 것이다. 흉노족의 위대한 왕을 알고 있었을 신라인들은 그로 분장한 기병장수를 맨 앞에 세워 무력시위를 벌이도록 하였다. 흉노의 왕은 아마도 자신의 후손이었을 망인이 나가는 길을 앞에서 열어 주었다.

‘묵돌’의 뒤를 이어 3명의 춤추는 사람이 나온다.  남자 2명, 여자 1명이다. 여자가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신라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했을 것이다. 삼국사기 잡지(雜誌)에는 춤추는 이들을 무척(舞尺)이라고 했다.

이들의 독특한 춤사위 모습은 ‘노를 젓고 있는 동작’과 흡사하다. 우리 향가와 일본의 만엽집을 막론하고 보언(報言)으로 ‘노젓는 소리 애(乃)’라는 글자가 많이 나온다. 무척(舞尺)들의 자세가 노젓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본다면 행렬 아래 있는 기하학적 문양은 물결일 것이다.

영혼이 배에 타고 물을 건너가고 있다. 행렬 윗부분의 기하학적 문양은 별이다. 망자의 영혼은 별 빛 아래 배를 타고 이승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망인은 뱃사공이 부르는 노젓는 소리를 이별가 삼아 가까운 가족들과 헤어진 다음, 저 멀리 저승으로 나서고 있다. 신라인의 내세관을 보여준다.

또한 귀인의 앞에서 춤을 추는 문화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처용가> 이야기에 따르면 길을 가던 헌강왕 앞에 동해 용왕이 아들 7명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토기 그림에는 주인공 앞에 6명이 있다. 헌강왕 앞에서 ‘처용’의 일행이 행하던 무용극과 비교해 볼 때 장면이 흡사함은 물론이고, 규모까지도 비슷하다.

특히 일본 만엽집 89번에는 서기 700년대 ‘헨바이’라는 장례의식이 나온다. 헨바이(反閇, へんばい)는 귀인이 외출 등을 할 때 陰陽師(おんようじ)가 행한 주법(呪法) 으로서, 주술문을 외며 춤을 추며 특이하게 발을 내딛는 걸음걸이다. 이는 사기(邪気)를 물리치고 정기(正気)를 불러와, 행복을 빌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한반도에서 건너간 장례풍습일 것이니 그림의 무용 장면은 일본 헨바이(反閇, へんばい) 문화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 활을 쏘는 두 사람이 나온다. 향가에 의(矣)라는 보언(報言)이 나온다. 의(矣)라는 글자를 보면 화살촉 모양의 삼각형(厶, 마늘 모) 아래 ‘화살 시(矢)’라는 글자가 놓여 있다. 사전은 화살 모양을 본뜬 문자로 풀이하고 있다. ‘화살을 쏘는 동작을 하라’고 지시하는 문자다. 활을 쏘아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이다. 제물로 바치겠다는 뜻일 것이다. 특이한 점은 활의 방향이 행렬의 진행 방향과 거꾸로라는 것이다. 무언가 의식을 치르고 있고, 그 의식에 담긴 의미가 있었기에 망인 쪽을 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물로는 말, 개, 멧돼지, 사슴이 나오고 있다. 말은 향가에도 나온다. 신라향가에는 <처용가>에 나오고, 고려향가에는 <예경제불가> 등 3곳에 나온다. 그러나 개와 멧돼지, 사슴은 신라와 고려향가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향가 연구 방향 하나가 제시되고 있다.

맨 마지막에 망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말을 타고 있다. 망인 역시 기마인물이다. 토기의 그림은 말을 탄 망인의 영혼 앞에서 기마 무사가 무력시위로써 길을 열고, 무희들이 나와 사기(邪氣)를 물리치거나 저승으로 인도하는 모습의 춤을 추고, 화살을 쏘아 제수를 마련하고 있다.

장례의식을 형상화한 것이다. 당시 신라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고대인들의 떠들썩한 장례 행사가 그려져 있는 것이 토기의 그림이다. 그러한 문화는 향가에 녹아들어 있고, 토기에도 그림으로 스며 들었다. 토기의 그림은 신라 문화의 한 단면을 정확히 포착해 사진처럼 찍어놓은 작품이다.

신라사회에서 흉노의 위치를 설명하는 작품을 실물로 보게 되어 반갑다. 흉노왕 ‘묵돌’은 장례를 치르고 있는 집단(왕족)이 그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고, 자신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매개체였고, 자기집단 외의 신라인들에게 자신들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과시하던 인물이었다.

향가가 신라의 문화를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특히 향가 제작법이 유물까지 해독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 향가 연구자로서 의미심장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향가 제작법으로 그림을 풀었지만, 역으로 토기의 그림이 향가 제작법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11호입력 : 2019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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