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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 손중돈선생의 묘지명을 쓴 묵재 홍언필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59호입력 : 2020년 10월 15일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경주 양동마을 출신의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은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의 둘째 아들로, 시호는 경절(景節)이다. ‘우재선생실기’ 연보에 의하면 “22세때 갑진년(1484,성종15) 부친 양민공 손소(孫昭)의 상사를 당하여 흥해군 달전리 도음산에 장사지냈다(점필재선생에게 묘갈명을 받았다. 양민공은 점필재와 함께 거듭 급제하였으며, 마침내 30년 도의지교를 맺었다. 선생도 또한 점필재 문하에 들어가 학업을 청하여 학문의 방법을 얻었다)” 그리고 1790년 ‘조선왕조실록’ 2월 13일(갑자) 기사 “경상도 유생 이술현(李述賢) 등이 상소하기를, 경주의 고 이조판서 경절공 손중돈은 바로 중종년간의 명신입니다. 김종직 문하에 드나들며 공부하였고, 일찍이 과거에 합격하여 한원(翰苑)에서 벼슬을 하였습니다”를 종합해보면 부친 손소와 김종직의 인연으로 우재선생 역시 김종직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어린 회재 이언적은 외삼촌인 우재선생을 따라 배웠고, 손소의 자식 가운데 손중돈의 여동생이 바로 회재선생의 모친이 된다. 회재는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과 묵재(默齋) 홍언필(洪彦弼,1476~1549) 등에게 글을 부탁하였는데, 용재는 손중돈의 묘지명을 지었지만, 『우재선생실기』에만 실려 있고, 『용재집』에는 보이지 않는다. 묵재가 지은 손중돈의 묘지명은 『묵재집』권5, 「잡저」에 「손사재묘지명(孫四宰墓誌銘)」으로 실려 있다. 그리고 여강이씨 족보에 의하면 회재의 부친인 이번(李蕃)의 묘갈명을 묵재가 지었다고 전하나, 비석글 판독의 어려움과 자료정리의 소략으로 현재 그 사실여부를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묵재와 우재는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기묘록 가운데 별과시(別科時)에 천거한 인물로 함께 등재되었고, 좌의정 홍언필·참지 이언적 역시 중종 33년(1538) 8월 19일 『중종실록』 기사에 윤은보 등이 조옥의 조자에 대한 분부가 지당함을 함께 아뢴 적이 있었다. 이를 미뤄보면 모두가 동시대에 벼슬을 지내며 인연이 있었다 짐작한다.

홍언필의 묘지명에는 우재선생의 사승관계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다만 상주목사의 행적과 가계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이 전부이며, 우재의 출생년도(癸卯:癸未)에 관한 기록오류가 확인된다. 묘갈명을 잘 살펴보면 사승관계 및 도통연원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손중돈 묘지명(孫四宰墓誌銘 幷序) - 홍언필
계림 손중돈(孫仲暾)의 자(字)는 태발(泰發)이다. 4대조 손현검(孫玄儉)은 검교중추원부사(檢校中樞院副使)를 지냈고, 검교의 아들 손등(孫登)은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었고, 참의의 아들 손사성(孫士晟)은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고, 참판의 아들 손소(孫昭)는 북쪽을 정벌하러 가는 원수(元帥)의 막료로 들어가 임기응변의 능력을 발휘해 적을 격퇴하여 적개공신(敵愾功臣)이 되었으며, 계천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양민(襄敏)이다. … 양민공은 풍덕류씨(豐德柳氏)에게 장가들어 천순(天順) 계미년(1463)에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20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27세에 과거급제하여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로 들어가 여러 요직을 거쳤으니, 사람들이 ‘계림 손공’이라 하였다. 홍치(弘治) 10년(1497) 노부모를 모시기 위해 양산군수(梁山郡守)로 갔다가 다시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와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냈고, 연산군(燕山君)이 언관(言官)을 죄주어 일망타진할 때 공 역시 붙잡혀 끝내 파직을 당했다. 중종 즉위 원년(1506년)에 상주목사(尙州牧使)에 제수되어, 명성이 있어 임금이 특별히 포상하였다. … 공은 승지를 세 번, 대사헌을 네 번 지냈고, 경상도·전라도·충청도·함경도 네 도(道)의 감사를 지냈다. 가정(嘉靖) 8년(1529) 4월 병에 걸려 관(官)에서 돌아가시니, 향년 67세였다. … 흥해군 달전리 도음산(禱陰山)에 장사지냈다.

공은 천성이 검소하여 사치스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때는 근검절약하여 천장에 비가 새고 자리가 해져 떨어져도 편안하였으며, 공무에 있을 때도 총괄하여 다스리는 일이 주도면밀하게 일이 갖추어졌니, 공의 후임자가 취하여 모범으로 삼았다. 외직에 있을 때는 인자하고 화락하여 별로 하는 일 없어도 은연중에 백성들이 혜택을 입었으니 옛날 어진 관리의 풍모가 있었다. 공무에 있었을 때 공의 모습을 그리고 사당을 세운 적이 있었는데, 그 아끼고 사람함이 이와 같음을 볼 수 있다.

조정에서는 위인(偉人)으로, 집안에서는 장자(長者)로 재상감을 기대하였는데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슬프도다. 공은 처음 남양홍씨(南陽洪氏) 홍흠손(洪欽孫)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1남 3녀를 두었다.

공의 생질 사간(司諫) 이언적이 공을 아비같이 여겨 마음을 다해 일을 돌보고 나(홍언필)에게 묘지명을 부탁하였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59호입력 : 2020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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