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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의 업적을 기린 노잠 손여두선생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57호입력 : 2020년 09월 24일

↑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경주 양좌촌 출신의 노잠(魯岑) 손여두(孫汝斗,1643~1713)는 생전에 동강서원(東江書院)을 창건해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을 제향한 인물로. 조부 손종도(孫宗道) – 부친 손현(孫鉉)의 가계를 이룬다. 어려서부터 총기가 있어 이른 새벽 사당에 나아가 종일 책을 읽었고, 평생 경전에 뜻을 두었다. 평생을 선대의 업적과 가업의 충실함을 계승하는데 모자란 물자와 경영을 위해 노력하였고, 󰡔경절공실기(景節公實紀)󰡕 1책과 󰡔영모록(永慕錄)󰡕 1책을 편수하고 보첩(譜牒)을 정비했다.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1653~1733)이 지은 묘지명에 그의 행적이 소상히 적혀있다.

증조부 사헌부감찰 증통정대부 호조참의 손등(孫登) - 조부 계성군 손사성(孫士晟) - 부친 양민공 손소(孫昭)의 가업을 이은 우재선생은 회재 이언적의 어릴 적 스승으로 유명하며, 훌륭한 목민관의 자질로 상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전하는 󰡔우재선생실기(愚齋先生實記)󰡕의 체제와 목록은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1738~1816)의 󰡔입재선생문집(立齋先生文集)󰡕권28,「景節公愚齋孫先生實紀序」에, “상권은 年譜·誌碣·輓詞·丹密生祠·涑水․東江書院의 事蹟과 상량문 등 글이 있고. 하권은 國朝寶鑑·中廟實錄·權冲齋日記·東平尉의 聞見錄·神道碑銘·廟宇上樑文·濯淸樓記·請額疏 등이 수록되어있다. 선생의 생몰과 벼슬이력 및 생애 등 후학에게 고신될만 한 것을 대략 갖추었다”언급한다. 현재는 첫머리에 정종로(1815)와 허전의 서문·목록·세계도 및 연보가 수록되어있으며, 끝에 후학 이만수(1904)와 이병호(1905)의 발문이 들어있다.

우재학(愚齋學)의 근간이 되는 󰡔우재선생실기(愚齋先生實記)󰡕는 6세손 손여두가 글을 모으고, 1815년 9대손 손윤구와 종손 손성덕 등이 수집․초간했으며, 후에 일부가 증보되어 1905년에 중간되어 전한다. 우재 손중돈 사후 초기에는 사적을 전하고 맡을만한 인물이 없었지만, 훗날 6대손인 손여두가 선생의 유집을 만들기 위해 연보와 자료를 수집하는 대단한 열성이 있었다. 이후 7대손 그의 아들 손시완 그리고 8세손 손맹걸, 9대손 손국제;손윤구, 10대손 손성덕에 이르기까지 우재선생의 유집을 만들고 보존하는 데 후손들이 오랜 시간과 공을 들였고, 실기의 편찬과 간행의 노력 가운데에는 결정적으로 손여두가 그 중심에 있었다.

매호(梅湖) 손덕승(孫德升,1659~1725)은 「동강서원기」에서 손중돈 사후 문집이 바로 제작되지 못한 이유로, “처자와 손자들은 어렸으니, 문적(文蹟)이 흩어져 떨어지고 전함이 없은 것은 이런 연유가 아닌가 싶다”라 설명하였다.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손여두 사후 18년 뒤(1741)에 아들 손시완이 찾아온 것에 대해 상주 백성들을 위해 애쓴 우재 손중돈을 기리는 마음으로 흔쾌히 우재선생 연보부록의 글을 적는다. 그 글에는 손시완이 부친 손여두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우재선생실기󰡕 편찬 의도를 밝혀 놓았다.
󰡔우재집󰡕에 실린 1741년(영조17)에 지어진 권상일의 「실기서문」은 다음과 같다.

경절공 연보부록 권발(景節公 年譜附錄 卷跋) - 권상일
처사 손여두가 독서하는 여가에 성심으로 추원감모(追遠感慕)하여 집에 있는 문자와 타처에서 나온 글을 수집하여 연보(年譜) 한 질을 만들고, 제문과 만사 등을 부록하여 밀암(密庵) 李栽(1657~1730)에게 왕복하면서 교정하여 동강서원에 감춰둔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금년 겨울에 그 아들 손시완(孫是梡)이 발섭하여 멀리 나에게 찾아와서 그 일의 전말을 적어서 장차 새긴다고 하였다. 나는 감히 감당할 수가 없으나 엎드려 생각하건대 선생은 일찍이 우리 상주고을에 목사로 오시어 성북에 유애비(遺愛碑)가 있고, 단구에 제사지내는 곳이 있으니, 이 실기가 한 서원에만 사사롭게 소장되지 않고 세상에 널리 반포되어 오래된 실적으로 하여금 사라지지 않도록 한다면, 한갓 후학의 다행일 뿐 아니라 실로 우리 상주(尙州) 백성들의 큰 다행이 아니겠는가? 끝까지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책 끝에 써서 돌려보낸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57호입력 : 2020년 0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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