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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의 유연재 그리고 강동마을의 유연정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 1408호입력 : 2019년 10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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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 경주에서 유연정(悠然亭)이라 검색하면 강동면 왕신리에 위치한 유연정이 등장하는데, 이곳은 안동권씨 권행(權幸)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운곡서원(雲谷書院) 공간으로, 아름드리 고목 은행나무가 우뚝하고, 맑은 물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에 여강이씨의 사연이 얽힌 유연정이 자리한다. 처마에는 을사년(1965) 오천 정석호(鄭錫祜)가 지은 「유연정기」가 걸려있다.
‘유연’은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시에서 뜻을 취하였고,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후학들은 성현이 전하는 좋은 글귀와 자신이 추구하는 수신의 경지를 담아 ‘유연’이라는 명칭을 널리 애용하였고, 양동마을의 우려(愚廬) 이원효(李源斅,1883~1946) 역시 유연정을 짓고 세속을 벗어난 선인(仙人)의 삶을 누리고자 하였다.
우려선생은 회재의 후손으로 증조부 이능완(李能完)-조부 유연재(悠然齋) 이화구(李華久)-부친 죽인(竹人) 이석희(李錫熹) 가계를 구성하며, ‘유연’명칭이 우려선생의 조부인 유연재 이화구에게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이화구가 강동면의 밀곡사(密谷寺)와 운곡서원에 얽힌 송사를 해결해주며 현재의 유연정 터를 확보하였고, 1811년 수양의 공간으로 조그만 정자를 지었다고 전한다.
오늘날 양동마을 무첨당을 오르다 보면 고풍스런 ‘우향다옥’ 식당이 나타난다. 후손인 이지휴선생이 거처하고 있으며, 처마에는 ‘유연재(悠然齋)’세 글자가 선명하게 보존돼있다. 암서(巖棲) 조긍섭(曺兢燮,1873~1933)은 양동마을을 찾아 우려선생을 만났고, 처마에 걸린 ‘유연정’현판을 보았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현재 ‘우향다옥’처마에는 유연정이 아닌 유연재 현판이 남아있으니, 글의 기록과 건물의 보존에 빠진 부분이 있을까 걱정이다.
암서(巖棲) 조긍섭(曺兢燮,1873~1933)은 경남 창녕군 고암면 원촌리 출신으로, 남명학을 기반으로 영남학맥을 계승하였고, 말년에 비슬산 서쪽 현풍(玄風)의 쌍계서당(雙溪書堂)에서 강학과 저술에 힘썼다. 특히 유람을 통해 많은 문인들과 교유하며 기록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조긍섭과 이원효는 편지를 통해 안부를 물었고, 만남 이후 유연정기를 남겼다.
유연정기(悠然亭記)
나는 이원효[자 명여(明汝)]군과 친분이 있었다. 내(이긍섭)가 양동(良洞)에 이르러 명여의 집을 방문하면서 처마에 걸린 ‘유연정(悠然亭)’세 글자를 보았는데, 필의(筆意)가 고아(古雅)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그의 조부께서 스스로 이름 짓고 손수 쓴 것임을 물어서 알았다. 그로 인해 명여가 나에게 기문을 청하고 조부에 대한 행장을 내어 보이며, “양동은 수백 가구가 복잡한 골짝 사이에 섞여서 이른바 남산(南山)을 가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곳이지만, 저희 집처럼 가장 바르게 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이곳은 조부께서 유독 도연명(陶淵明)의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어 들고,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시구가 마음에 들어 재(齋)의 이름을 딴 곳입니다”라 말했다. 나는 “산은 보기 어렵지 않으나, 유연한 정취가 있기는 어려우니, 유연이라는 것은 의도하지 않고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라 말하였다.
바야흐로 진(晉)·송(宋) 시대 동안 이름난 선비들 가운데 산을 본 이가 많았다. 도연명보다 먼저 산을 본 사람 가운데 왕자유(王子猷:왕휘지)가 있었는데, 남의 참군(參軍)이 돼 도모하면서도 일을 처리할 줄 모르고, 다만 홀(笏)을 괴고 서산의 상쾌한 기운을 보는 것을 고상한 정취로 삼았다. 도연명과 같은 시대에 산을 본 사람으로는 사강락(謝康樂:사영운)이 있었는데, 찬탈한 조정에서 벼슬하고 산을 유람하는 것을 일로 삼아 사람들이 자기를 도적으로 의심하게 했다.
무릇 사강락이 본 것은 보았지만 유연한 정취가 없었고, 왕자유가 본 것은 겉으로는 유연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실제 유연하지 않음이 있었다. 왜 그런가 하면? 명리(名利)에 얽매여 스스로를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연명 같은 경우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꺾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와서는 단사표음(簞食瓢飮)의 가난한 생활을 달게 여겼고, 산에 대해서는 산을 보려고 의도하지 않고 산을 보았다. 이것이 곧 진정한 이른바 ‘유연’이고, 당시의 여러 사람들이 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화구 공의 행장을 읽어보니 실로 기록할 만한 것이 많았는데, 공이 말년에 한 관직의 직함을 얻게 되자 자기 몸에 오물(汚物)이 닿은 듯 몹시 슬퍼하였고, 신주(神主)에 관직의 직함을 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아! 공이 명리(名利)를 달가워하지 않은 것은 진실로 도연명에 가까웠고, 왕자유·사강락 두 사람의 경우는 족히 말할 것이 없으니, 멀리 산을 바라보는 정취는 공이 아니면 누가 해당되겠는가?
공은 문원(文元:회재 이언적)선생의 후예요, 우리 영남의 큰 집안이 되니, 진나라의 왕자유와 사강락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고, 명리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마도 선조이신 회재선생의 유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후손들은 더욱 마땅히 선생의 도덕적 정취를 생각하고 고산(高山)의 앙모를 이룬다면, 도연명이 보았던 것과 같이 어찌 안 될 것이며, 또 말하기에 부족한 것이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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