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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주변에 세워진 동호정(東湖亭)을 찾아서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90호입력 : 2019년 05월 16일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최근까지 안압지(雁鴨池)로 불린 ‘임해전지(臨海殿址)’는 경주를 대표하는 관광지 가운데 야경이 훌륭한 곳으로, 여러 사료적 고증을 통해 2011년 ‘동궁(東宮)과 월지(月池)’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제7,「문무왕下」에 “14년(674) 2월, 궁궐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었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二月, 宮內穿池造山 種花草 養珍禽奇獸). … 19년(679) 8월, 동궁을 처음으로 짓고 안팎 모든 문의 현판 이름을 정하였다(秋八月 創造東宮 始定內外諸門額號).”며 동궁과 월지에 대해 언급하였고, 1970년대 발굴과정 중 기와에 새겨진 ‘의봉4년(儀鳳四年:679)’그리고 보상화문전(寶相華文塼)에 새겨진 ‘조로2년(調露二年:680)’등 글자가 확인되면서 동궁의 존재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궁궐 안의 월지 주변에 심겨진 꽃과 진기한 동물은 연회 등을 위한 귀한 자리를 빛내는 역할을 하며 신라 때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조선에 와서는 폐허로 묘사되어 문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호고와(好古窩) 류휘문(柳徽文,1773~1832)은 1822년 4월5일부터 5월8일까지 포항·안강·경주·청송 등을 유람하고「남유록」을 남겼는데, “4월 9일.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도 하고 개이기도 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풍영정(風詠亭)을 지나 동쪽으로 안하지(安夏池)에 이르렀는데, 바로 신라시대 태액[太液:한나라 무제(武帝)가 세운 궁원(宮苑) 안의 연못]이다. … 호수는 오랫동안 주인이 없었는데 근래에 최의겸 형제가 그 북쪽에다 정자를 지었다. 잔잔하고 가는 물결은 누대로 가깝게 다가오며, 물가의 해오라기와 숲속의 꾀꼬리가 하늘을 오르내렸다. 이 정자에 가서 오래 기대니, 마음과 눈 모두가 확 틔었다. 정자 뒤에 별도의 구들방이 있고, 물굽이와 산을 등지고 있다. 겨울과 여름 그곳에서 학업을 익혔다. 동북쪽으로 학사장(學士庄)을 지나갔는데, 고운 최치원이 예전에 살던 곳이다.”며 당시 안압지의 풍경과 폐허가 된 안압지 북쪽에 거주하면서 동호정을 짓게 된 연유를 설명하였다.

최의겸은 경주최씨로 의병장 최계종의 후손인 반계(盤溪) 최사득(崔思得,1788~?,자 義兼) 을 말하며, 崔繼宗-崔東老-崔國成-崔昌佑-崔南鳳-崔達行-崔柱勳-崔思得(1788~?)의 계보를 갖는다. 반계선생의 조부 최달행께서 먼저 안압지 주변에 거주하셨고, 정자를 짓고자한 뜻을 훗날 반계선생이 종형제들과 이루고, 1816년 28세의 젊은 나이의 반계는 안강에 사는 구암(懼庵) 이수인(李樹仁,1739~1822)에게 어렵사리 기문을 부탁하였고, 근암(近庵) 최옥(崔鋈,1762~1840)선생이 「동호서사개기축문(東湖書社開基祝文)」과 「동호서사상량문(上樑文)」등을 지으며 서사건립의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신라의 자취가 서린 안압지를 조선의 선비들은 장수(藏修)의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하며 호수 주변에 정자를 짓고 학문을 닦으며 풍류를 읊조렸다. 특히 동호정은 안압지 주변에 세워진 정자로 경주최씨 최사득의 별장으로 활용되었고, 당시 유람객 류휘문·경주부윤 박장복 등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동호서사와 동호정에 올라 안압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시문으로 남겼다. 조선시대 경주부에 상당수의 정자가 곳곳에 세워졌으나, 현재는 민멸되고, 황량한 빈터와 문집을 통한 기록이 전부로 남은 경우가 많다. 어서 빨리 고전자료를 통한 정자의 위치와 건립배경과 소유자 등을 파악하여 경주선비의 문화를 전하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해본다.


동호서사기(東湖書社記) - 구암 이수인

동도의 옛 터에는 명승(名勝)이 많은데, 반월성·포석정·봉황대·첨성대 모두가 명승지다. 그러나 성시(城市)의 시끄러움과 차마(車馬)의 번잡함이 없고, 바로 선비들의 장수처 가운데 합당한 곳이 안압호(鴈鴨湖) 일대가 최고였다. 이 안압호는 부의 동쪽 2~3리쯤에 있고, 중간에는 수묘(數畝)의 네모난 못이 있으며, 예전부터 부초(浮草)의 기이함이 드러났다. 또한 많은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와 모이기에 이름 지어졌고, 그윽하고 고요하여 성시 곁의 산과 숲이 되었다.

이곳은 옛 도읍을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곳이었으나, 못 쓰게 되어 황폐한 터만 남은 것이 거의 천여년이다. 월성 최의겸 군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 호수 곁에 살았고, 일찍이 장소를 가리켜 기이하게 여겼다. 집 한칸을 지어서 아들과 조카의 교육하는 장소로 삼고자하였으나 이루지 못하다가, 세월이 흘러 최의겸에 이르러 선대의 뜻과 같이하고자 종형제와 도모하여 재목을 모으고 병자년(1816) 이곳에 정자를 세웠는데, 얼마 되지 않아 지었다.

거듭 우거진 잡목을 없애고, 네모난 못을 파니, 기이한 형적이 여러 가지 빛깔로 드러나고, 게다가 대나무와 나무 그리고 온갖 꽃들이 호수 주변에 펼쳐지고 산처럼 솟은 섬과 부평초 같이 떠있는 섬이 무산(巫山)의 12경이 되듯 각각 제목이 있었다. 정자가 완공되자, 최의겸 군이 나(이수인)에게 그 일을 기록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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