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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렬 교수의 논어묵상22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98호입력 : 2019년 07월 11일
↑↑ 안병렬 교수
22.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자왈 관중지기소재라. 혹왈관중검호아? 왈 관중유삼귀하며 관사불섭하니 언득검이리오? 然則 管仲知禮乎? 연즉 관중지례호아?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왈 방군수색문하니 관씨역수색문하며 방군위양군지호하여 유반점하니 관씨역유반점이라. 관씨이례면 숙부지례리오?


<주석>
管仲 :성은 관, 이름은 夷吾. 제나라의 대부. 제나라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게 하였다.
器小 : 국량이 좁고 얕다. 器識이 협소하다.
三歸 : 包咸이 말하기를 세 성의 여자에게 장가감이라고 하였다. 朱熹가 말하기를 삼귀는 臺의 이름이라고 하였다. 兪樾의 <群經評議>에서 말하기를 집에 세 곳이 있다. 오늘날 三座公館이라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攝 :兼職이다. 邦君 :한 나라의 군주이다.
樹塞門 :문에다 병풍을 치고 안과 밖을 차단하는 것이다. 樹는 병풍을 새우는 것이다. 塞은 遮蔽이다.
好 :友好이다. 反坫 :坫은 흙을 쌓아 만든다. 옛날 두 임금이 서로 만남에 주인이 술을 부어 손님에게 드리면 마신 뒤에 빈 잔을 坫上에 놓는다. 이를 反坫이라 한다.

<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의 그릇이 작도다. 어떤 이가 물었다. 관중은 검소하였습니까? 관중은 세 개의 공관을 가졌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한 일만 시키고 겸직시키지 않았다. 이런데 어찌 검소하였다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이 궁궐의 문 앞에다 병풍을 세우니 관중도 자기 집 문 앞에다 병풍을 세웠다. 임금이 두 나라의 우호를 위하여 잔치할 때 正堂 양 옆에다 술잔을 놓는 坫을 만드니 관중 또한 자기 집에다 이와 같이 坫을 만들었다. 만약에 관중더러 예를 안다고 하면 누가 예를 모르겠는가?

<묵상>
먼저 본문의 내용을 잘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공자 당시 관중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공자는 조금 부정적이었다. 공자의 왕도 정치적 처지에서 보면 관중의 폐도 정치는 맞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라고 한들 공자의 이상에서는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자는 자기의 생각을 바로 말하는 것이다. 관중의 그릇이 작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좀 더 큰, 그리고 더 이상적인 정치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관중의 그릇이 작았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들은 혹자는 그래도 관중은 검소하지 않았느냐고 항변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아주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다. 그가 세 개의 공관을 가졌고, 또는 다른 해석을 하면 세 여자에게 장가들고 또 한 사람이 여러 사무를 보게 하면 경비가 절약될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데도 검소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자 그래도 관중이 예는 알지 않았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어디까지나 관중을 옹호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단호하였다. 임금이 안채를 안 보이게 하려고 안 채 앞에다 병풍을 치니 관중도 그렇게 하였고 임금이 다른 나라의 임금을 맞아 두 나라의 우호를 다지며 술을 마심에 필요하여 궁궐에다 반점을 두었는데 관중도 자기 집에다 반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는 얼른 보면 검소하다는 앞의 문제와 연관되는 듯 한제 그렇지 않다. 이는 참람한 일이니 검소의 대상이 아니라 예의 문제라는 것이다. 신하로서 있을 수 없는 월권이라는 것이다. 이러고도 예를 안다고 하면 어느 누가 예를 모르는 사란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지없이 관중을 폄하하는 말씀이다. 이에 대하여 혹자는 노나라가 제나라로부터의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렇게 제의 관중을 욕하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공자를 그렇게 단순하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폐도정치를 펼친 관중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관중에 대한 공자의 평가는 이중적이다. 역시 같은 논어인데도 憲問篇에서는 관중을 아주 높게 추켜세웠다. 곧 관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다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관중의 공적은 절대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에게 있어서 관중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조금 더 큰 그릇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스며있는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 능력으로 왕도 정치를 한 번 펼칠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愛憎이 교차되는 것이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98호입력 : 2019년 0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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