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철)을 버리다-유종인

호치키스,
요즘 말로는 스테이플러 철심을 박다가
잘못 박혀서 도로
뽑아낸 철심들이 책상 모퉁이에 모여 있다
좀 삐딱한 수형자처럼
그러나 어딘지
저들만이 감추고 있는 활기(活氣)가,

오래전부터 그렇게 잘못 박히기로 작심한 것처럼
삐딱한, 제가 생각한 곳이 아니면
그 어디에도 뿌리박지 않겠다는
이 철심들은
그저 버려진 깡다구인가 싶지만,

구부러진 철심들을 모아
베란다 밖에 털어버리자
저 깡다구들은 그제야 좋아라! 하고
허공중에서도
어깨춤을 추며 땅으로
내려간다

저거, 저거, 저거, 오래 흙에 파묻혀 살 가난한 철인(鐵人)이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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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은 시인

-스테이플러 철심에서 발견하는 야성의 영혼
왜 있잖은가? 완력에 순응하며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사람. 숨죽이며 살아가는 다수들 가운데서 적당히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 아니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면 절대로 고개를 숙이기를 거부하는 영혼 말이다.
시인은 “스테이플러 철 심을 박다가” 박히기를 거부한 “좀 삐딱한 수형자” 같은 철 심들에게서 “저들만이 감추고 있는 活氣(활기)”를 발견한다. 시인이 ‘깡다구들’이라고 했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잘못 박히기로 작심한”, “제가 생각한 곳이 아니면/그 어디에도 뿌리박지 않겠다는” 영혼들이 아닌가.
그들이 “좋아라! 하고” “어깨춤을 추며” 도달하는 곳은 흙 속이다. 그렇다. 그들은 “오래 흙에 파묻혀 살”아도 외롭지 않을, 의지가 무쇠처럼 강한 철인(鐵人)들이다.
수시로 체제에 순응하며 한 순간을 명멸하는 존재들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적당히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존재를 보는 건 눈물겨운 일이다. 저 삐딱한 철심과 같은 당당한 민초들이, 버려져도 죽지 않고 끝끝내 일어서는 깡다구들이 끝내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백 년 전의 독립운동도 그런 민초들의 힘이 아닐 것인가? 어디 숨어 있다가도 봄이 되면 폭죽처럼 다투어 피어나는 매화와 산수유, 진달래와 목련들도 다 그런 야성의 민초들일 것이다. “잘 못 박혀 뽑아낸 철 심”에서, 여기저기 피어나는 봄꽃들에게서 그런 야성의 영혼들을 생각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