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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의 과거와 현재 공존하는 감포리(甘浦里) 골목-‘달라서 아름답다’… 개항 100년 영화와 애환 곳곳에 녹아있어

감포골목서만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콘텐츠 널려있어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33호입력 : 2020년 04월 02일
↑↑ 감포고등학교 아래 어느 주택에서 내려다 본 감포항구 전경.

삶의 편린들과 생활의 군더더기들이 여과없이 노출돼있는 감포 골목길 속살은 비릿했지만 어떤 동네의 골목보다 자원이 풍부했다. 좁은 화단과 화분에 심은 꽃들은 제철을 만났고 봄 햇살을 거침없이 흡수하는 빨래들에선 행복한 포만감이 묻어났다. 아무렇게나 쌓아둔 생선 담는 나무상자들, 말리기위해 줄지어 널어 둔 가자미, 대형고무통에서 삭히고있는 젓갈통들은 감포 골목에서만 볼 수 있는 프레임이다. 어수선하지만 정겨운...,

감포는 판장의 뒤쪽 마을이 감포읍의 중심이 된다. ‘판장(板牆)’은 1937년 감포읍의 중심부로 동해안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하역해 위판하는 어판장이 있었다. 예전 어판장을 개발할 때 모랫벌에 소나무 기둥을 박고 널빤지를 걸쳤으므로 판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감포 ‘사대이’ 끝을 감포1리, ‘사무골’·‘떡돌밭’을 감포2리, ‘감포’·‘판장’을 감포3리, ‘대안’·‘고대안’·‘부산맛지’를 감포4리, ‘후리자리’를 감포5리라 했다고 한다. 현재는 도로명으로 각각 감포로길, 감포안길, 감포항구길, 사무골길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감포1리는 사당골, 사대끝으로 전동고개를 벗어나 ‘거마장’, ‘소바짐(어원미상)’을 지나 사대끝부터 시작된다. 감포2리는 사무골, 거랑골로 읍내 육거리를 중심으로 서편에 위치한다. 감포3리는 구한말 일인들의 집단주거지였다. 개항과 동시에 일인들이 도래하면서 현재의 시가지 부근 토지와 주거지를 고가에 매입하기 시작했다.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를 팔았고 황무지나 다름없던 지금의 대안 부근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곳은 감포의 판도를 바꾼 현장이었다. 감포 4리는 감포내항을 둘러싼 지형인 고대안 분지에서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대안(坮安, 大安)이다. 감포 5리는 오류1리 선창으로 가는 길목에 감포초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감포 읍내는 감포항을 주변으로 감포1~3리 마을회관, 감포공설시장, 감포읍행정복지센터, 감포초등학교, 경주수협, 감포농협, 감포신협, 경주감포우체국, 감포제일교회, 감포해국길 등으로 이뤄져있다. 이들 외곽으로는 오대아파트, 자연과사람 아파트, 남호비취타운 아파트, 해원푸른빌라 등이 들어서있고 다시 그 주변으로 바다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는 여러 펜션들이 듬성듬성 들어서있다. 이번호에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안포리와 전동리 일부를 병합해 감포리로 명명된 감포읍내 골목일부(감포 1~3리)를 스케치해보았다.

↑↑ 감포안길 해국길의 제일 좁은 골목. 감포에서도 보기 드문 골목이다.

-골목의 원형...가파르고 작은 골목 ‘감포해국길’, 감포 포구의 과거와 현재 공존하는 골목

읍내 대로변은 감포로다. 사라지고 있는 골목의 원형이 될 만한 공간이 감포2리, 3리 일대에 남아있다. 항구 맞은편 활어위판장에서 출발하고 5일장이 서는 감포상설시장과 바로 인접해 있는 골목으로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크고 작은 적산가옥과 그들이 운영했던 술집과 여관, 목욕탕, 젓갈창고 등이 남아있는 감포해국길이다. 이 골목은 일제강점기 감포의 명동으로 불려질 만큼 북적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식 주택이 들어섰고 일본식 주택과 한옥, 서민형 주택 등 다양한 양식의 집들이 어울려 독특한 골목의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볼거리가 많다. 감포 포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남기는 곳이다.

한편, 감포 안길 해국길의 제일 좁은 골목의 폭은 채 1미터도 안된다. 감포에서도 이 길은 보기 드문 길이다. 비라도 올라치면 우산도 둘이 나란히 쓰고 다니지 못한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은 거의 이사를 갔고 지금은 세입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릇가게 하는 사람, 어판장 중매인, 배 타는 선원, 과외하는 작은 집, 간판 하는 사람, 홀로 사는 할머니가 살고 있다. 이 골목 대부분의 집의 창들은 동쪽을 향해 나 있다. 집들 앞쪽으로는 높은 집이 없어 바다가 환하게 보였다고. 그러나 지금은 이 작은 집들 바로 맞은편으로 큰 건물이 착공돼 공사 중이었다. 다닥다닥 연이어있는 작은 집들은 이제 햇살 한 줌 들어오지 않는 환경으로 변해버렸다.

한편, 감포3리를 중심으로 하는 옛 번화가 거리인 감포안길에도(감포제일교회 앞 거리)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시가지로 도로 양쪽으로는 2층 목조가옥형태의 적산가옥들이 줄지어 있었다. 호수다방, 동조사진관, 항구다방, 옛골식당, 제일낚시점 등의 낮고 허름한 간판들을 달고 감포읍민의 생의 터전으로 존재했으나 현재는 도로 확장으로 일부 적산가옥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수 년 전 보다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구룡포의 적산가옥은 리모델링을 해서 자원화하고 있지만 감포의 적산가옥은 현재까지는 거의 그대로여서 난개발이나 어설픈 보수보다는 한편으로 보면 잘됐다 싶어요” 어느 주민의 말이다.

↑↑ 카페 아르볼.

-감포제일교회 포토존 계단 바로 옆, 사진가 최선호씨가 꾸리는 카페 ‘아르볼(Arbol)’

감포제일교회를 중점으로 좁은 골목벽에 그려진 수많은 해국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낡고 허름한 담장과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 동네 언덕배기의 감포제일교회 포토존이라 표시된 계단 바로 옆에는 지난해 ‘아르볼(Arbol)’이라는 카페가 들어섰다. 경주에서 가장 작고 낮은 이 카페는 사진가 최선호 씨가 꾸린다. 이 작은 공간에서의 햇살 한 줌,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미풍 한 자락은 우리에게 ‘작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내공 짙은 주인장의 아우라로 우려내는 커피 한 잔은 진하고 더욱 향기로울 수 밖에.

↑↑ 감포 골목에서만 볼 수 있는 젓갈통.

-생생하다! 생선 담는 나무상자와 젓갈통 놓여져 있는 감포 골목길

감포상설시장 뒤편 골목으로 올라본다. 이 골목 뿐 만 아니라 감포 골목길에서 만난 이들은 토박이들이 대부분이다. 허물어진 옛 방앗간을 시작으로 감포로 4길과 5길인 골목은 제법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높은 지대로 오를수록 아파트나 빌라 형태의 주거공간이 나타났고 그 아래에는 옛 주택과 작거나 혹은 큰 집들이 낮고 작게 배치돼있다. 오래 전 지은 집들로 보이는 주택들을 지나자 언덕배기에 지은 아파트가 나타난다.

이 아파트엔 대부분 봉길리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살고 있다고 하며 이들 고지대에 있는 아파트들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자랑한다고. 아파트를 지나자 너른 밭엔 거름을 뿌리고 감자 등 곡물들이 한창 자라고 있었다. 군데군데 텃밭에는 봄작물과 풀들이 지천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간혹 주인이 떠난 빈집은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처연하고.

시장에서 40년간 떡을 팔았다고 하는 한 할머니는 “젊은이들의 유입은 거의 없어요. 감포도 인구 감소로 거의 입주자 없이 비어있는 아파트도 있어. 예전 바다에 고기가 많이 날 때는 사람들이 많았지”라고 한다.

감포 골목들에는 거의 집집마다 젓갈통이 놓여져 있었다. 주로 멸치젓이라 하며 대형 고무통에 비닐을 씌우고 밀봉해 삭힌다고 한다. 어업에 종사하지 않은 이들은 사서 담글 정도며 먹고 남는 것은 팔기도 한다.

감포로 7길 의용소방대 대장 집이라고 하는 집 마당에는 구조용 보트 한 대가 눈길을 끌었다. 새삼 이곳이 감포바닷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구조할 상황이 발생하면 이 보트도 소방대와 함께 출동한다고 했다.

↑↑ 적산 가옥과 일반 주택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던 한옥.

-적산 가옥과 일반 주택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한옥 한 채

“당시 감포 부자였던 원래 집주인이 이 집을 짓는 데만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감포2리 사무골길에서 1930년대 지어져 90년 시간이 켜켜이 쌓인 한 옥 한 채를 발견했다. 골기와 지붕을 고스란히 이고 있었고 솟을대문도 팔작지붕이어서 대문의 유려함만 보아도 충분히 이 집의 품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래된 한옥의 장점만이 잘 보존된 집이었다. 한 눈에도 주인이 정성껏 손질한 집임을 짐작할 수 있는 이 한옥은 목재가 뿜어낼 수 있는 최상의 자연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집 가꾸기를 좋아하는 주인의 손길에 오래도록 보답하는 듯했다. 음전한 듯 독립된 두 채의 한옥은 기와지붕을 맞대고 기역자로 나눠져 있었다. 이 집에는 옛 들창문을 비롯해 유난히 창호와 문들이 많았다. 특히 원형 그대로인 창호들은 정감이 넘쳤다. 대들보와 서까래의 굵고 단단한 아름다움은 탁월했다. 적산 가옥과 일반 주택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집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 주택에서도 가자미를 말린다.

-“힘들고 답답했던 사람들이 바람쐬러 이곳 감포바다로 오고 있어요”

해풍때문이었을까. 감포2리 사무골길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작고 낮은 집들이 많았다. ‘당시 어떻게 다 살았을까’ 싶은 집들은 애틋했다. 골목에서 만난 주민들은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마을의 속사정까지 잘 알고있는 토박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감포상설시장에 들러 40년째 건어물을 다루고 있는 부부를 만났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대구 등지에서 우리 시장에 많이 왔어요. 코로나19로 손님이 많이 찾지 않지만 요즘도 주말엔 이 시장이 활기를 띄는 편입니다” 다소 의외였다.

“요즘 나정·오류 해수욕장, 바다공원 등 감포 바닷가나 해수욕장 주변엔 차 세울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힘들고 답답했던 사람들이 바람쐬러 이곳 감포바다로 오고 있어요. 그들이 이곳 시장으로 다녀가곤 한답니다”

감포골목에서 만나는 많은 것들은 내륙의 경주시내와는 이질적이었다. ‘달라서 아름다운’ 감포 골목여행은 그래서 달콤했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33호입력 : 2020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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