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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숨결 그대로 담겨있는 옛 다리… 옛 건축 예술의 한 단면 (上)-현존하는 최고의 실물 사천왕사지 석교 & 조선후기 축조된 오릉 북편 교량

사천왕사지엔 동·서석교 2개소, 최소 11개 교각의 오릉 교량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27호입력 : 2020년 02월 20일
↑↑ 사천왕사지 동·서석교 전경.

 경주 시가지는 동쪽을 제외한 3면이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경주는 북쪽에 북천(알천), 남쪽에 남천(문천)이 있으며, 서편에 남북으로 흐르는 형산강이 이 두 강과 합류하고 있는데 시가지 외곽으로 벗어나려면 이들 하천을 건너야 한다.

이들 하천에는 예로부터 많은 교량이 있었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고 지금도 서천에 5개소, 북천에 9개소, 남천에 7개소의 교량이 있다.

우리의 옛 다리는 기능성을 중시한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 남아 있는 다리의 흔적과 구조를 관찰하면 당시 건축 예술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오랜 경험에 의한 건축술을 다리를 세울 때 응용했던 우리 선조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요로(要路)에는 다리 대신 임시로 배를 연결하여 건넌 후, 바로 해체했던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는 고래로부터 우리나라가 외적의 침입을 자주 받았던 것에서 예민하게 작용 할 수밖에 없었던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옛 교량지들은 언제 생겼으며 어떤 모양일까. 어디에서 발견되고 있을까.

발굴된 교량지 중 오릉북편 교량지와 사천왕사지 남쪽 석교지, 월성해자 북편 발천 교량지, 동부사적지대 석교지 등에 대해, 경주지역 교량지와 관련한 발굴조사보고서들에 전적으로 근거해 (上)·(下)편으로 나눠 구성해보았다. 이들 중 이번호에서는 (上)편으로 오릉북편 교량지와 사천왕사지 남쪽 석교지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제공한 ‘경주 오릉 북편 교량지 발굴조사 보고서(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2)’와 ‘사천왕사Ⅲ - 회랑외곽 발굴조사보고서(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4)’를 바탕으로 인용하고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 오릉 남쪽 교대지 노출 광경.

-기록상 남천에는 춘양교(일정교), 월정교, 귀교, 유교, 효불효교 등 8여 개소 다리 있어...오릉북편 남천 교량지는 현 문천교와 오릉교 중간에서 강물 방향이 북으로 굽이치는 곳

옛 문헌기록에 나타난 교량은 금교(金橋,(송교(松橋)), 귀교(鬼橋), 유교(楡橋), 춘양교(春陽橋, 일정교(日精橋)), 월정교(月淨橋,(月精橋)), 누교(樓橋), 대교(大橋), 굴연천교(掘淵川橋), 신원교(神元橋), 남정교(南亭橋), 효불효교(孝不孝橋, 칠성교(七星橋)) 등으로 대부분 남천과 서천에 위치했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남천에 많은 교량을 가설했던 것이다. 당시인들이 남천을 통행한 것은 인력과 재화의 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신라왕실의 발생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인 나정, 오릉과 군사적으로는 남산신성이 있는 거점이며 불교신앙의 중요한 중심지인 남산이 바로 남천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릉 북편의 남천에 마련되었던 다리는 조선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다리가 연결되는 도로는 경주와 언양 간을 잇는 관도(官途)로서 주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천에는 춘양교(春陽橋, 일정교(日精橋)), 월정교(月淨橋), 귀교(鬼橋), 유교(楡橋), 효불효교(孝不孝橋) 등 8여 개소에 이른다. 이 중 정확한 명칭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는 일정교지(日精橋址)와 월정교지(月精橋址)에 불과하다. 조선시대에 건립되었던 다리의 명칭과 실제 유지(遺址)를 찾아 낼 수 있는 지역이 거의 한정되어 있는 여건에서, 2002년 조사한 오릉북편 다리는 조선시대의 것이지만 전통기법이 그대로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한다.

남천에 산재하고 있는 여러 교량지 가운데 발굴조사를 실시해 그 규모가 밝혀진 옛 교량지는 일정교지와 월정교지, 월정교지 하류 목교지, 오릉 북편 하천의 밑바닥 부분인 하상(河床)에 석재가 노출된 오릉 북편 교량지가 있다. 이중 월정교지 및 하류 목교지는 1985년에 발굴조사가 이뤄져 교량유구에 대한 양상이 어느 정도 밝혀졌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오릉 북편 교량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1999년 11월 착수해 2000년 5월까지 현장조사를 마무리한 바 있다. 교량지의 정확한 위치는 현 문천교와 오릉교의 중간지점에서 강물의 방향이 약간 북으로 굽이치는 곳이며 문천교 하류(서쪽)로 약 150m 떨어진 지점이다. 탑정동, 사정동, 황남동의 경계지점이다.

↑↑ 오릉 북편 포석유구 전경.

-최소 11개의 교각으로 만들어졌고 조선후기 축조된 남정교지(南亭橋址)로 보는 것이 타당

오릉북편 교량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이들 교량 유구들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하천의 밑바닥 부분인 하상(河床)이 하천흐름에 의해 바닥이 침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각 주변으로 가공된 큼직한 장대석 등 여러가지 석재로 넓게 깔았던 것과 포석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교량 하중을 받을 수 있는 방형 또는 원형의 넓은 지반석을 포석보다 약간 높게 놓았음이 확인되었다. 교각은 수압을 적게 받을 수 있는 구조 즉, 주형(舟形, 배 모양)으로 쌓거나 모로 세웠다. 교각은 지반석(地盤石)과 지주석(支柱石)으로 구성된 독립기초형식으로 세워서 하나의 교각을 구성하고 있다. 최소 11개의 교각으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교량 규모는 길이 30m, 너비 3m내외, 높이 약 2m로 추정하고 있다. 이같은 교각 구조로 보아 당시 남천은 유량이 상당히 많았으며 유속 또한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오릉 북편 유구 노출 전경.

오릉 북편 교량지는 규모로는 같은 하천의 상류에 있는 월정교에 비해 길이는 ½에 불과하고 높이 또한 ½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량임을 알 수 있고 교량의 축조 방법과 사용된 부재의 형태도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두 교량은 규모로 보아 동시대에 공존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따라서 오릉 북편 교량지는 신라시대 교량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이곳에 다리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최초 가설된 교량 유지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이 다리는 경주 중심이 읍성으로 옮긴 이후 경주에서 남쪽 언양방면으로 통하는 관도상에 놓인 다리였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 다리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대교에 이은 남정교지(南亭橋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 교대지 노출 전경.

-교량 석재들은 인근 전 흥륜사나 전 천관사 등 폐사찰에서 옮겨와 축조하는데 사용했을듯

교량에 사용하였던 석재는 월정교지의 부재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거나 같은 교량용 석재도 많이 출토되었지만 교량부재와 전혀 관련없는 건축부재와 석탑 옥개석, 연화대석, 계단석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석재들은 인근에 있던 전 흥륜사나 전 천관사 등 폐사된 사찰에서 옮겨와 다리를 축조하는데 사용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교량의 축조시기는 포석을 깔면서 유입된 옹기편으로 볼 때 조선시대 후기로 추정한다. 또한 이 교량지는 경주에서 언양방면으로 통하는 간선도로였으므로 현존하는 유구보다 앞선 시기에도 다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앞선 시기에 축조된 교량유구는 그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고 한다.

↑↑ 사천왕사지 서석교 전경.

-신라호국사찰 사천왕사지 남쪽 석교지, 입구 쪽 출입시설인 동·서석교(돌다리) 2개소

경주 낭산 기슭에 위치한 사천왕사(679년에 창건, 사적 제8호)는 신라 호국불교의 대표적 사찰 중 하나다. 사천왕사는 고신라에서 통일대로 넘어오는 초창기의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다. 사천왕사의 유적 배치, 창건 유물 등이 고신라와 통일 초기의 과도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당시 사찰유적과 유물 등은 매우 중요하다. 2006년 4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방치된 신라 옛 사찰 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사천왕사지 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발굴조사 결과, 금당지, 목탑지, 강당지와 부속건물지, 회랑지와 익랑지, 중문지, 귀부와 석교 등의 유구를 확인함으로써 사천왕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들 유구 중 사천왕사 중심 영역의 남쪽에 해당되는 유적에서 발굴된 입구 쪽의 출입시설인 석교(돌다리) 2기는 중심 유구다. 사천왕사지 석교는 동쪽 귀부(龜趺,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북편 배수로를 서쪽으로 확장시켜 가는 조사과정에서 동석교의 귀틀석 일부가 드러났다. 석교는 가람배치 남북중심선에 대칭되는 동·서석교 2개소였다. 금당지 중심에서 남쪽으로 86.5m, 중문지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40m지점에서 석교 아래에 놓여진 동·서귀부 북쪽의 배수로를 건널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 사천왕사지 서석교 북편 출토 보상화문전.

-사천왕사지 석교...지금까지 통일신라에서 확인된 바 없는 독특한 형식의 석교로 현존하는 최고의 실물 석교 

석교는 평교형식으로 귀틀석, 청판석, 엄지기둥(교량에 있어서 난간의 일부로 입구의 끝에 세운 기둥)으로 구성된 소형(너비 290cm, 길이 120cm)이며 약간의 반원의 모습이다. 1매의 석재로 만들어진 귀틀석이 가운데와 양 끝에 위치하고 3개 2조의 청판석이 조합되어 1개소의 다리를 구성하고 있다. 가운데 부분은 약간의 아치 형태로 크게 만들어져 있으며 양단은 편평한 모습이다.

동·서 석교 귀틀석 남·북 모서리에는 원형의 구멍자리가 있어 기둥을 안정적으로 꽂기 위한 방형의 홈이 추가적으로 나 있다. 난간의 형태를 하기 때문에 좀 더 안정적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동일한 석재 제작 기술을 사용해 사천왕사 건물의 기와류, 전돌 등과 더불어 예술적 건물을 건축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각 석교의 북쪽으로는 보상화문전과 무문전이 깔려 보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외곽에는 무문전을 세로로 세워서 마무리 했다. 서석교 상부에서는 비석편 1점이 출토되었다. 석교 아래에 놓인 동서 방향의 배수로는 폭 60cm, 잔존 길이 57.6m이다. 석렬은 대부분 1단이나 일부 2단까지 남아있는 것도 있다. 특히 동·서 귀부 지대석과 인접하고 있는 배수로 내부에서는 귀부 비각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특히 사천왕사지에서 확인된 석교는 지금까지 통일신라에서 확인된 바 없는 독특한 형식의 석교로서 불국사 연화교·칠보교, 청운교·백운교와 함께 현존하는 최고의 실물 석교로 평가하고 있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27호입력 : 2020년 0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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