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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궁원지(新羅 宮苑池)-구황동원지는 곡지계(曲池係)

왕경 경관의 일부 궁원지<宮苑池>… 구황동원지는 분황사 사원지 아닌 궁원지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16호입력 : 2019년 11월 28일
↑↑ 사적 제549호 구황동원지 전경.

신라 왕경은 40여 년간 지속적인 발굴을 통해 도시의 형성과 변천, 구조에 관한 자료들이 점차 축적되어 가고 있다. 왕경에 속한 궁, 특히 그 궁에 속한 궁원지(宮苑池) 또한 발굴의 진행과 함께 점차 증가해 왕경 중심부 뿐 아니라 외곽지역에서도 속속 대규모 궁원지가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 원지 유적으로는 신라인들의 발달된 미의식이 작용한 월지와 용강동원지를 들 수 있고 그 외 국립경주박물관 부지 내 원지, 월성해자, 구황동원지 등으로 약 5개 유적 10여 기 정도에 이른다.

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궁원지 자료 모두를 합한 것보다 많지만 지금까지도 월지와 용강동원지를 제외한 나머지 유적은 궁원지로서 분명히 인식되지 않고 있는 편이다. 신라 궁원지에 대한 조명은 구조와 성격이 분명한 월지에만 집중되었을 뿐, 상호 간 비교 연구를 통한 계통성과 구조의 파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 구황동원지가 ‘사원지(寺苑池)’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 육각형 건물지.

그렇다면 원지(苑池)는 무엇일까. 원지는 정원과 못을 아울러 이르는 것으로 정원 안에 있는 못을 뜻한다. 원지는 궁원지와 사찰의 사원지, 민가원지, 산성(성) 원지 등이 있으며 이들은 곡지계(曲池係) 비대칭이며 섬, 정원석, 석가산 등을 갖춤)와 방지계(方池係, 단순하며 대칭을 이룸)로 나눌 수 있다.

아직 시작 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신라 궁원지 연구에 있어 ‘신라 궁원지 유적의 현황과 구황동 원지의 성격’에 대해 심도있게 밝혀놓은 이가 있다. 특히 구황동원지에 대해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궁원지임을 밝힌 (재)화랑문화재연구원 오승연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특히, 구황동원지에 대해 1999년~2002년까지 4년여 원지를 처음 찾아내고 원지 발굴을 마무리했던 이다. 실질적 구황동원지 발굴을 한 오 원장은 분황사와 구황동원지가 사적지로 지정되기까지 결정적인 학술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본 기사는 오 원장과의 인터뷰와 그의 논문 ‘新羅 宮苑池 -구황동원지의 성격을 중심으로-(2011년)’에서 글과 사진을 인용 발췌해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 구황동원지가 ‘궁원지(宮苑池)’ 임을 증명하는 소도 북편의 정원석들.

-궁원지… 궁에 속한 원지, 주로 월지에 관한 연구 대다수

궁원지는 유휴, 제의 등의 기능을 목적으로 조성된 궁에 속한 원지다. 오 원장은 지금까지 신라 궁원지의 연구는 규모와 의장, 출토유물 면에서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월지에 관한 것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주로 조경학적 측면에서 다루어져 왔을 뿐 고고학적 연구 성과는 미약한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전제했다. 그는 현재까지 발굴을 통해 확인된 신라 원지 유적 중 ‘궁원지로서 대상의 설정과 정확한 구조의 파악’을 시도했다.

그 결과 신라의 삼국 통일과 함께 축조된 월성해자 석축부는 지금까지 ‘석축해자’로 명명되고 있으나 구조와 입지의 특성상 원지임이 분명하므로 ‘월성 외곽 석축 원지’라는 새로운 명칭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국립경주박물관 부지 내 원지는 지금까지 남쪽의 조산과 세트를 이루는 남궁의 곡지계 궁원지로만 추정되었으나, 그 위치가 월성 외곽 석축 원지의 연장선상에 있고 구조적으로도 유사한 것으로 파악되므로 ‘월성 외곽 석축 원지’의 일부인 것으로 재해석 하는 성과를 도출해냈다.

↑↑ 신라 궁원지에 대한 연구가 구조와 성격이 분명한 ‘월지(月池)’에 집중돼있다(월지 전경).

특히 구황동원지는 한때 분황사의 사원지로 보는 견해가 있었으나 전체적인 공간 배치, 경관 구성요소의 선택, 관련된 궁의 입지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궁원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 구황동원지 육각형 건물지 주혈 내부 기와 유물 출토.

구황동원지를 궁원지로 보는 근거들로, 공간 배치에서 기존의 주장과 달리 의도적으로 원장을 둘러 분황사와 분리된 독립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점, 사원지에서는 전혀 채택되지 않는 섬ㆍ석가산ㆍ정원석 등의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는 점, 평면 형태에서도 사원지에서 나타나지 않는 곡지계 원지가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사원지로서의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오히려 경관 구성요소와 평면 형태가 대표적 궁원지인 월지, 용강동원지의 그것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아 궁원지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구황동원지의 축대 남쪽은 2차 원지 축조시기의 통방구조이므로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이궁의 존재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힘을 싣고 있다.

오 원장의 이러한 추론이 타당한 것이라면 구황동원지는 분황사와 황룡사 사이에 존재한 이궁의 북쪽에 위치한 후원지가 되는 것이다. 그 이궁은 아마도 삼국유사에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용궁(龍宮)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구황동원지 유적.

-기존 견해의 오류...‘구황동원지는 분황사에 인접해있는 사원지(寺苑池)’

구황동원지에 좀 더 상세하게 살표보자. 구황동원지는 황룡사지와 관련한 전시관 건립 부지로 선정돼 1999년 시굴조사를 하던 중 통일신라 시대의 석축, 담장, 우물 등의 유적을 확인하고 2004년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원지 유적이다. 유적은 황룡사지의 북쪽, 분황사지의 동쪽에 위치하며 보문호에서 서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북천(알천)이 서북쪽으로 곡류하는 지점의 남안에 해당한다. 구황동 원지는 중심부에 크고 작은 인공섬 2개가 있고 그 주위에 입수로와 배수로, 건물지, 담장, 축대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구황동원지는 동궁과 월지, 용강동 원지에 이어 원지의 조성연대, 규모, 내부구조 등을 확인한 신라왕경 원지 유적으로 희소성이 있다.

↑↑ 구황동원지 북편 원장(苑牆).

그런데 구황동원지의 성격에 대한 기존의 발굴보고서에서는 모두 구황동원지를 서쪽에 인접한 분황사의 사원지(寺苑池)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 견해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축대와 배수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축대를 조성해 상단과 하단을 구분함으로써 축대 하단의 새로운 용지를 확보하고 그것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효율적인 방안을 선택했던 점이다.

이에 대해 오 원장은 축대 및 배수로는 왕경 전체 운영을 위한 시설의 일부분이지 분황사, 구황동원지 등 국지적인 범위에 한정된 개념의 시설물이 아니라는 점을 반박한 바 있다. 또 육각형 유구의 발견은 현재까지 한국에서는 확인된 사례가 없는 특이한 구조의 시설물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 유구가 제의 또는 의례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되는 점을 들어 구조적으로 유사한 구황동원지 육각형 유구도 그와 같은 기능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 의례의 주체는 인접한 분황사일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또 불교 관련 유물(판불)이 출토되었으므로 사원지라는 주장이었다.

↑↑ 2004년 경남 산청에서 시굴 조사시 지도위원에게 설명하고 있는 오승연 원장.

-“신라의 원지 가운데 외곽 경계를 이루는 원장(苑牆) 또는 궁장이 확인된 예는 월지와 구황동원지 두 곳 뿐, 의도된 공간 배치를 갖춘 곡지계 궁원지”

이에 대해 오승연 원장은 구황동원지의 궁원지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원지의 전체적인 공간 배치와 경관 구성요소의 채용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원지의 사용 주체가 되는 궁의 존재 여부는 성격 규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겠으나, 대규모 건물의 흔적은 지형 삭평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았다며 다만 유구의 부분적인 존재와 중복관계를 통해 그 가능성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우선, 구황동원지는 축대 하단부 전체를 담장으로 둘러 인접한 서북쪽 건물지군뿐 아니라 그 외 축대 하단 어디서도 내부가 노출되지 않는 구조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의 원지 가운데 그 외곽 경계를 이루는 원장 또는 궁장이 확인된 예는 월지와 구황동원지 두 곳 뿐이라는 것이다. 구황동원지의 원장(苑牆)은 이웃한 분황사와의 공간 분리를 뜻하는 것이며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독립 공간을 형성하며, 원지 남쪽의 축대 상부에서만 내부로의 조망이 가능하도록 정확히 의도된 공간 배치를 갖춘 곡지계 궁원지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 구황동원지 출토 수막새.

또한 구황동원지의 경관 구성요소 중 고대 사원지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곡지계 정원석과 섬, 석가산(石假山)등의 발견을 꼽았다. 사원지에서 이 세 구성요소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원지가 방지계 원지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궁원지와 사원지는 사상적 배경과 계통이 다르기 때문에 구조와 입지에서 분명한 차이를 나타낸다. 즉 궁원지에서는 입지와 관계 없이 곡지계와 방지계가 공존했지만, 사원지에서는 사찰의 주 출입구에 조성된 방지계 원지만 확인되는 것이다. 또 구황동원지가 궁원지일 것이라는 주장에서 가장 큰 과제는 ‘이 원지가 소속된 궁은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문제였다고 한다. 구황동원지의 발굴에서 그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황룡사와 분황사 사이는 최대 폭 150m 이내의 좁은 공간임을 감안한다면 여러 개의 궁이 존재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삼국유사의 황룡사와 분황사 사이에 존재했다는 기록에 나타난 ‘용궁’이 구황동원지 남쪽의 궁을 지칭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황동원지가 궁원지임을 여러 근거를 제시하며 설명했다. 

↑↑ 구황동원지 출토 ‘芬王’ 명 토기.
“궁원지 자체가 가지는 구조와 사상적 배경을 떠나 왕경이라는 거대 경관의 일부분으로서 궁원지는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는가도 연구해야 할 부분”일 것이라는 오 원장의 발굴 이력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소속돼 발굴 현장에 투입된 이후부터 25년째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원, (재)경남문화재연구원, (재)동서종합문화재연구원을 거쳐 2014년부터는 (재)화랑문화재연구원을 이끌고 있다. 1999년~2002년 구황동원지 발굴, 2015년~현재까지 경주 남산 천룡사지 주변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발굴, 현재 경산 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 개설공사부지 내 유적발굴조사 등 다수의 발굴에 참여했으며 현재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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