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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골목은 살아있다. 골목이 희망이다(6) 인왕동 골목에서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삶의 흔적과 지층 켜켜이 퇴적한 인왕동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385호입력 : 2019년 04월 11일
‘도시를 훌륭하게 완성하는 것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을 담아낼 수 있어야 성공적인 도시다’ 건축사 유현준 교수의 말이다. 빨래가 펄럭이며 널려있는 도심에서의 동네가 몇이나 될까. 봄바람에 펄럭이는 가족들의 빨래에는 푸릇푸릇한 향수가 일렁인다. 인왕동 마당과 골목에는 그런 풍경이 아직 많았다.
인왕동은 1931년 경주읍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경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경주시 인왕동이 되었다. 인왕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월성동 관할하에 있다. 현재 인왕동 거리는 양정로, 원화로, 첨성로 등으로 이뤄져있다. 문화재로는 경주 석빙고, 경주 월성, 경주 인왕리 고분군, 경주 동궁과 월지, 경주 첨성대 등이 있다. 공공기관 및 시설로는 월성동 주민센터, 국립경주박물관 등이 있으며 교육기관으로는 선덕여자중학교, 선덕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인왕동 고분군 동네의 골목은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없지만 고립된 섬처럼 아직도 몇 채가 남아있다. 연탄재가 나와 있는 작은 집 풍경에서는 30~40년전 골목의 흔했던 풍경도 떠오른다. 황남동 고분군과 인왕동 고분군을 사이로 두고 끝없이 이어졌을 골목길은 단절되고 지금은 그 골목길의 흔적만 겨우 남아있지만, 가로지르는 철길에서 만난 노을빛이 투영되는 인왕동의 저녁 풍경은 쓸쓸했지만 아름다웠다. 이 철로에서의 기차의 경적소리와 굉음을 듣는 날도 머지 않아서 더욱 그랬을까.
다닥다닥 이어져 있는 집들을 따라 골목길을 걷다보면 갑자기 ‘뚝’ 끊겨 있고 잔디가 깔린 고분군의 공터가 돌연 나타나 당황스럽다. 그 공터를 빽빽하게 채우고 아웅다웅 살아갔을, 이주하지 않고 혹은 이주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시민들은 이곳 고도 경주의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이리라. 연속성이 사라진 골목길에는 예전 복작거렸을 골목길의 온기와 함께 따스한 삶의 향기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인왕동 고분군에선 골목 연속성 사라져
첨성로는 작은 샛골목들 잘 살아있어


-경주 대릉원 일원 인왕동 고분군이 있는 인왕동
사적 제512호 경주 인왕동 고분군은 월성의 북쪽에 있으며 경주 중심부 평야 지역에 남아있는 고분군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한다. 경주역 동쪽의 대부분이 도굴되거나 파괴된 고분 23기(제19∼27호분, 제147∼150호분 및 새로 발견한 10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고분 부장품으로는 토기, 장신구, 마구류와 은제환두대도, 투겁창 등 무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인왕동 일대에는 신라 고분이 많이 남아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몇 기 밖에 남지 않았다. 인왕동 고분군은 황남동,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의 대형 고분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편이라고 한다.

-“이 고분군에는 예전에 전부 집들이었어요. 일제강점기 철로 설치로 인왕동 고분들의 흙을 대량으로 채취해 갔어요” “이 작은 집을 팔고서는 변변한 전세도 못 얻으니 이러고 살고 있을 수 밖에요”
이 동네 고분군에는 몇 몇 성치 않은 고분들 사이로 잔디가 깔려있고 듬성듬성 민가들이 그 사이로 몇 채 남아있다. 한 고분 위로 오르니 나즈막하지만 고분으로 보이는 볼록한 능선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고분들도 있었다.

고분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고분을 바로 연접해있는 집에 살고 있는 주인은 이 동네서 6대를 살아왔다고 한다. 아직 철거하지 않은 주택들은 개인의 의지가 완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곳을 떠나지 않은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주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터줏대감인 마을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이 고분군에는 예전에 전부 집들이었어요. 좋은 한옥들도 많았죠. 여기를 떠나 용강, 현곡 등으로 이주했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 아래가 전부 무덤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동네 한 주민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대릉원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황남동 고분군과 이곳을 도로와 철로로 가로질러 잘라 놓은 상황입니다. 또 기차역 철길을 조성할 당시, 대규모 흙이 필요했고 당시 가까운 동네였던 이곳 인왕동 고분들의 흙을 대량으로 채취해 갔다고 해요. 현재의 봉분들도 당시 채취한 이후 봉분이 아주 작아져버린 상황이지요”라고 했다.

한편, 이 곳 고분군 동네에 수상하게 들어선 거대한 주택은 이질적이었다. 기존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이주한 터였는데 이곳에 허가가 버젓이 나서 신축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한 주민이 푸념을 한다.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집들은 뜯겨 나가고 작은 집에서 살고 있는 어르신들은 자녀들따라 타지로 떠나 버리거나 적은 보상비에 아파트 한 채도 마련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 비워놓고서는 엄청나게 큰 개인의 집을 대궐같이 지어서 건축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경주시가 허가 내주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한 할머니가 석양녘에 집 근처 텃밭에서 강낭콩 씨앗을 심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점차 이주하기 시작했지요. 지금도 당장 이 인근 네 채를 이주하라고 합니다. 이 작은 집을 팔고서는 변변한 전세도 못 얻으니 이러고 살고 있을 수 밖에요”

-월성동 주민센터에서 첨성대와 월성이 마주보이는 첨성로로 이르는 골목은 여러 갈래의 작은 샛골목 있어

인왕동에서 여전히 골목이 그나마 남아있는 곳은 첨성대와 월성에 인접한 첨성로 일대 뿐이었다. 선덕여고 맞은편 골목길과 선덕여고 쪽은 뚝뚝 끊겨 있는 상태였다. 첨성로 ‘고도맷돌 순두부’ 옆길 골목에서도 이내 철거된 공터에 임시 마련한 주차장이 이어진다. 

인왕동 고분군에서 철길을 지나 마주하고 있는 인왕동의 경계는 ‘카페 737’부터 첨성로 구로쌈밥 안쪽, 국립경주박물관까지의 구역 정도라고 한다. 월성동 주민센터에서 첨성대와 월성이 마주 보이는 첨성로로 이르는 골목은 여러 갈래의 작은 샛골목이 있다. 이곳 원화로 작은 골목에서 정원이 아주 예쁘게 꾸며진 작은 기와집을 만난다. 월성동 주민센터 바로 옆에는 카페 ‘커피 볶는 마노’가 있다. 원두가 좋은 집으로 이름이 나 있고 감성이 풍부한 카페다. 이곳에서는 커피 수강도 같이 한다. 이어 ‘별마루 공방’이 있고 골목길로 접어들면 한옥의 정취를 잘 살려내 불고기 정식과 수제 떡갈비로 유명한 ‘화림정 한정식’집이 있다.

-‘인왕동 답다’...‘송화슈퍼’, ‘명화사’, ‘뻥 튀기’, ‘골동품 경매 부스’// ‘젊고 신선하다’... ‘빵 다방’, ‘하나 상점’, ‘차차랑’

고분군 바로 앞 동네에는 최근 주변을 정비하고 개업한 지 보름째인 ‘빵 다방’이 거대한 한옥지붕을 이고 손님을 기다린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불고기 베이크, 치킨 베이크를 기본으로 다른 빵들의 메뉴를 구상하고 있었다. 연하게 내린 커피와 치킨 베이크 한 조각을 먹으니 브런치 치고는 든든했다.

구멍가게 ‘송화슈퍼’는 선덕여고 옆 비탈진 집들 사이로 5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동네 구멍가게다. 1968년 선덕여중이 신축이전하자 집을 짓고 가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오래된 기와를 이고 초록색 어닝(차양막)을 이고 있는 이 노포(老鋪)는 오밀조밀 군것질 거리와 생필품이 가지런히 손님을 기다린다.
그 맞은편에는 골동품을 팔고 경매를 하고 있는 ‘명화사’가 오랜 시간 전부터 이 자리에 있어왔다. 명화사에는 수집가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들어 시장을 만든다. 복작복작 재밌고 오래되고 진귀한 물건들이 넘쳐나는 이곳은 경주 골동품 경매의 원조다. 

한편, 이 인근에 지난해부터 경주시가 마련한 골동품 경매부스들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골동품 경매가 이뤄진다. 명화사가 있는 양정로 거리에는 ‘뻥 튀기’ 라는 간판을 단 가게도 있어 구수한 향수를 자극한다. 공중전화 부스가 새로 단장한 모습으로 이 가게 앞에 버스 승강장과 함께 있어 더욱 정겹다. ‘이 동네 답다’라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지난해 새로 생긴 ‘하나 상점’ 또한 이 거리와 잘 어울리고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러블리한 잡화점인 이곳에선 꽃과 관련한 악세사리, 소품 등을 다루며 있으며 경주를 상징하는 기념품들과 스탬프를 활용한 엽서, 에코백도 있는 가게다. 이 가게 바로 옆에 ‘차차랑’이라는 작은 도예공방이 들어섰다. 이 공방은 게스트하우스로도 기능하고 있다고 했다.

인왕동 거리와 골목에선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흔적으로 인한 지층이 층층이 남아있다. 고대의 삶의 현장에서 오늘을 사는 경주인들이 한 발 비켜 양보하고 살아가는 듯한 그런 동네였다. 그 선량하고 인정스런 주민들이 경주를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해결책을 세워 주민들의 작은 바람도 존중하면서 그 역사의 지층을 잘 살릴 수 있기를 바랄뿐이었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385호입력 : 2019년 0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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