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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그들의 경주 우리의 경주’ ...일제치하 경주사회와 경주민의 역정 최초로 총망라

일제강점기 경주에서 ‘경주민’이 지켜낸 민족혼과 경주의 정체성 새롭게 조명해야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387호입력 : 2019년 02월 21일
↑↑ '일제 강점기 그들의 경주 우리의 경주' 저자 최부식 씨
조선총독부 유리건판 사진 154장,
문서 14건 속 경주
동아일보(1920~1940년)
298건 기사와 각종 희귀사진들 수록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경주에서 펼쳐진 독립만세운동은 그동안 국권상실에 경주민들이 통분하고 각성하여 애국계몽운동을 꾸준히 펴왔기에 일거에 많은 인원이 참여했던 것이다.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고문으로 초주검을 당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당시 이원계 고문치사 소문은 경주 지역에 다 퍼졌다. 일제는 반항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본보기로 처벌하고 경주민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그럼에도 경주민들은 항일 의지를 꺾지 않고 광복될때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했다’-본문 ‘경주 의병과 3.1 만세운동’ 중.

“이 책을 경주 선대 어른들과 경주시민들에게 바칩니다. 이제부터라도 신라 이후의 경주 모습, 경주민들의 삶과 역정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일제가 ‘새로 빚어놓은 경주’라는 공간에서 식민시절의 삶을 엮어온 이들이 공유하는 기억과 현장을 기록해야 합니다”
“나라 잃은 설움에도 자존과 자긍심을 세워 살았던 경주인들의 모습을 최대한 되살리고 일제강점기에서 그들이 지켜낸 민족혼과 경주의 정체성을 새롭게 돌아보려는 목적에서 씌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경주시민이 긍지를 가지고 내일을 준비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경주문화원(원장 김윤근)은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에 즈음해 일제치하 경주사회와 경주민의 역정을 총망라한 뜻깊은 책을 발간했다(경주시 지원사업). 최부식 저자가 쓴 ‘일제강점기 그들의 경주 우리의 경주(경주문화원)’가 그것.
23일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있는 최부식 저자(61, 경주문화원 이사, (사)한국문협 포항문인협회 회장, 전 포항mbc 편성제작국장)를 지난한 작업의 산실인 포항 자택에서 만났다. 집필 1년여간 섭렵했을 고서를 비롯한 수많은 서적들과 자료들로 둘러싸인 그는 아직도 최종본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공간의 기류에서조차 힘들었을 그간의 집필과정과 열정이 고스란히 배어 나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대를 살고 견디면서 억압받고 때론 순응한 ‘경주민’이었음을 저자는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일제강점기 경주민들의 고단했지만 자랑스러웠던 삶 속으로 우리를 초대
저자는 ‘경주는 신라, 신라는 경주’라고 전제하면서 신라를 이은 고려 조선은 물론 지금의 경주 모습으로 만들어진 일제치하의 경주에 대한 자료와 연구는 그간 상대적으로 매우 무관심했음을 언급하며 특히, 일제강점기를 살펴야 경주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요지로 저술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책에는 그간 경주에 소개되지 않았던 수백 장의 사진들과 당대 경주사회의 흐름과 경주민의 고단했던 삶의 역정을 낱낱이 증언하는 수백 건의 신문기사와 각종 자료가 실려 있어 선대 경주민의 삶과 경주사회를 생생하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다.
당대의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접근한 저서로, 첫 장부터 새롭게 낱낱이 밝혀지는 경주 근대사는 놀라움의 연속으로 다가오고 숨을 죽이며 책장을 넘기게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 경주인들은 이렇게 훌륭한 조상들을 가졌기에 ‘지금’이 가능했던가. 일찍이 알지 못했던, 경주에서 홀대받던 근대의 경주가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서 그 실체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오늘의 경주, 내일의 경주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서는가하면, 경주 관련 희귀 사진들을 보는 감동과 즐거움은 그의 기록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배경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당대 경주사회 흐름을 낱낱이 밝혀 일인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그 시대를 산 선대 경주민의 모습을 눈앞에 펼쳐 보이도록 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경주민들의 고단했지만 자랑스러웠던 삶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 일제가 만든 일한 병합(강제병탄)을 축하하는 내용의 그림엽서
(사진소장:석굴암 미학연구소 성낙주 소장/ 번역:한국은행 포항본부 김진홍 부국장)


경주민의 시각과 통시적 시각에서 일제강점기 경주 사회 흐름과 경주민의 역정 최초 밝혀
이 책의 주요자료로는, 최초로 공개되는 조선총독부의 유리건판 사진 154장, 총독부 문서 14건(국립중앙박물관 소장)속 경주, 동아일보(1920~1940년) 기사 298건 및 관련 각종 희귀사진과 기타 신문기사, 저자가 엮은 김기조 전 경주문화원장 구술: ‘남기로 싶은 경주 이야기(2017)’,『경주지』(1920년) 및『조선총독부 발간 생활실태조사(7) 경주군』(1934년), 희귀자료 44건, 사진엽서 22장, 각종 지도 15건 및 기타 사진 261장, 경주읍내전도(1798년) 및 경주읍내시가약지도(1931년) 비교 분석표 등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 또한 서구열강과 일본·중국의 정세 속 조선과 경주를 비교시킨 ‘경주중심으로 보는 연표’를 실어 서술의 거증(擧證)과 분석 자료를 배치해 서술에 대한 시각적 이해도를 높이고 당대 상황에 더 접근토록 했다. 경주민의 시각과 통시적인 시각에서 일제강점기의 경주 경제, 교육, 종교, 체육, 문화관광, 감포와 안강을 낱낱이 정리 분석해 경주 사회 흐름과 경주민의 역정을 최초로 밝혔다. 일제치하, 경주의 선대인들은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어떤 저항·항일운동을 펼쳤는지, 일제와 일본인들이 경주상권을 차지하면서 그들의 도시로 만들어가는 과정, 그들이 조선의 기억을 지우고 신라 사적지와 유물을 보호·선양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이 들여온 근대문명인 자동차·기차는 경주민의 삶과 시가지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감포·안강 지역의 연대기 등 총 11개의 장에서 45편의 소제목으로 나눠 총 710 페이지에 걸쳐 일제강점기 경주 근대사를 집대성했다.
↑↑ 경주 서봉총 발굴 현장을 구경하는 사람들. 노서동1926.
(출처:국립중앙박물관)
↑↑ 경주 남자 체격 측정, 1914.
(출처:국립중앙박물관)

3·1독립만세 거사 앞두고 경주 천도교들은 특별수련회 돌입, 안강민들은 시위 통해 동척과 일본인 지주들에 맞서고...,
“일제치하 경주에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요? 일제의 지배에 경주민은 그저 복종, 순응, 묵시적 동의를 하면서 살았을까요? 결코 아니었습니다. 경주민들은 대한제국 말엽부터 의병항쟁을 통해 일제침략에 맞섰고 일제치하에서 최 부잣집 형제들은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펴고 군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로 보내는 한편, 다양한 방법으로 경주사회에 힘을 보탰습니다. 또한 3·1독립만세 거사를 앞두고 경주의 천도교들은 특별수련회에 들어갔으며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경주민들은 활발한 만세운동으로 저항했습니다”
↑↑ 일제가 금관 등의 유물을 경성으로 가져가려하자 이에 격분해 경주의 유력자들이 총독 앞으로 보낸 청원서.조선총독부 문서

또한 일제가 미곡증산을 통한 수탈에 나서기 위해 수리조합 설립에 나서자 수백 명의 안강민들은 시위를 펴면서 동척과 일본인 지주들에 맞섰다고 한다. 일제의 식민지교육에 분노한 어린학생들은 동맹휴학에 나섰고 청년들은 각종 야학운동을 펼치며 경주민의 자각을 촉구하고 계몽운동을 펼쳤다. 금관이 등장하자 경주민들은 금관이 경주에서 떠나가지 않게 반대운동을 펼쳤고 금관고를 지었다. 일제의 첫 ‘신라제’ 개최의도를 간파한 청년들이 축등을 파손시키자 일제는 ‘적색비사사건’이라면서 경주 감포 포항 울산에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키는 철저한 압정을 시행했다. 일본지주의 횡포에 경주민이 검거되자 경주민들은 경주경찰서를 포위하여 석방을 외쳤다. 경주민들은 일제의 폭압에 항의하고, 진정서를 내면서 집단적인 저항도 마다하지 않았다. 경주는 물론 조선인들은 광복이 될 때까지 항일투쟁을 펼쳤다.
↑↑ 불국사 주변 하동 박석골에서 잡은 호랑이
(출처:매일신보 1922년 10월)

경주민들, 일제의 횡포와 농락에 대항하고 삶의 모든 공간에서 싸웠음을 자료들에서 거증
일제와 일본인은 식민지 경주시가지 주요 지점을 차지하고 상권을 확보했으며 시가지 재정비를 하면서 우리의 선대인들이 집단으로 기억하는 조선을 지우고 그들의 도시로 만들어갔다. 신라 왕릉들을 ‘발굴’이라는 미명 아래 마구 파헤쳤으며 경주고적보존회,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설립을 통해 그들의 문명성, 지배의 당위성을 과시했다. 근대문명 자동차·기차 진입으로 유적지 파괴, 경주시가지에 변화가 일어났으며 서천 철교에서 기차가 추락하고 자동차가 뒤집는 사건사고가 빈발했다. 관광지로 변모하기 시작한 경주에는 유흥분위기 또한 일어나면서 경주사회에 심각한 폐해가 발생했다. 근대동력선과 근대어구로 무장한 일본어민은 감포를 비롯한 동해 바다를 그들의 만찬장으로 만들었으며 태풍으로 수백 척의 어선과 어민들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는가 하면 지독한 가뭄에 경주사회와 경주민들은 물가 앙등, 흉년에 시달려 눈물로 호소했다. 일제는 점령지 경주와 경주민들에게 압제와 수탈을 강요해 우리의 선대인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그 시대를 견뎌야만 했다. 그들의 압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경주민들은 교육, 문화예술, 체육, 종교, 경제생활을 엮으면서 피할 수 없는 일상을 일본인들과 섞여 살 수밖에 없었다. 경주민도 일제의 횡포와 농락에 대항했으며 삶의 모든 공간에서 싸웠음을 저자는 여러 자료들에서 거증하고 있다.
↑↑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회에 모인 부인들.동부동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경주시민들에게 이 책이 널리 회자돼 더욱 많이 보급되길 바랍니다”
“처음에는 저도 일반적인 경주밖에 몰랐으나 새로운 자료들이 나올때마다 너무 놀라웠고 반가웠고 기뻤습니다. 물론, 각성되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최대한 경주민의 시각으로 자료들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느 순간서부터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라는 사명감이 들더군요. 삶의 고초들을 생생하게 겼었을, 일상 속에서 저항했던 경주민들의 모습을 알고서 사실 울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너무 무지해서 세계정세를 몰랐던 부분에선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까웠지요”
책 내용에 반론 제기가 있다면 오히려 희망적이겠다는 저자는 시집을 낸 문인으로서, 방송국 편성제작 프로듀서로 여러 다큐를 제작했던 이력 등도 이번 집필에 보이지 않는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출판도 했으니 경주 땅에 나무라도 한 그루 심을까 생각중입니다(웃음). 바람이 있다면 경주시민들에게 이 책이 널리 회자돼 더욱 많이 보급되길 바랍니다. 이 책 발간으로 경주에서의 해방 정국, 한국전쟁 당시, 60~70년대 우리들의 이야기 등도 활발하게 집필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작은 도화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387호입력 : 2019년 0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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