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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주 지역 유기(遊記), 총체적 집성된 19편 (下)

조선시대 경주 유기<遊記> , 상당한 기록성으로 경주문화자원 발굴에 중요한 자료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357호입력 : 2018년 09월 14일
조선시대 경주 유기<遊記> , 상당한 기록성으로 경주문화자원 발굴에 중요한 자료
옛날 글로서만 남기는 건 안타까운 일 현대화하고 드러내 다양하게 응용해야

↑↑ 조선시대 자연과 문화유적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근대 경주 문화유적. 신라 원성왕릉 문인석과 무인석

‘(경주유람에서)동해의 빼어난 형상과 신선이 사는 곳의 기이한 경치를 다 찾아보고 돌아와서, 평소에 쌓아왔던 소망을 얻지 못함이 없었다. 아! 나와 같은 자는 배우지 않아 멋대로 굴고, 당세에 명성을 도적질하여 분수에 맞지 않는 임무를 넘치게 받았었다. 오늘 이후로 또 다른 지방을 유람한 것을 적게 되었으니, 어찌 내 인생 가운데 하나의 큰 행운이 아니겠는가?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의 경주 유람의 예찬 글 중에서.

‘말에서 내렸다. 자하문 앞에는 큰 돌계단이 있는데 규모가 매우 기이하고 장대하였으며 계단에 다다르니 2층으로 가로의 길이는 15척이었다. 중략..., 계단이 끝나는 곳은 돌을 펴놓아 마치 다리(남북으로 넓이가 6척이고, 동서 길이는 계단의 가로길이와 같다)같았고 그 아래는 텅 비어있어 홍예를 만들어 사람들이 왕래하게 하였으니 ‘백운교’라고 불렀다. 여기에 이르러 계단의 좌우로 각각 몇 칸은 모두 석벽으로, 높이는 백운교의 상면과 나란하였다’ 하략. 
-당주(鐺洲) 박종(朴琮, 1735~1793) 동경유록(東京遊錄) 중에서.

이렇듯, 박종은 대웅전에서 자하문을 통해 내려오면서 청운교, 백운교 순서가 되며 불국사에 대한 이모저모에 대해 상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이번호는 ‘조선시대 경주 지역 유기(遊記), 총체적 집성된 19편’ 중 마지막(下)편으로 경주유기 연구에 대한 가치를 조명해보고 관련전문가를 통해 유기에 담긴 자료로서의 활용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들어보았다. 특히 경주에 대해 의미있는 글들을 많이 남긴 이로, 경주에서 반드시 드러나야 하는 인물인 박종에 대해 다시 한 번 짚어보았다. 

이번호 역시 오상욱 경북고전번역연구원 원장(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강사)의 ‘조선시대 경주지역 유람과 遊記의 특징 고찰(동방한문학회 제71집)’과 인터뷰를 통해 구성했음을 밝힌다.

↑↑ 조선시대 자연과 문화유적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근대 경주 문화유적. 서출지 이요당, 서악리 고분군

-경주지역 대변하는 체계적이면서도 지침서격인 유기, 향유되면서 점차 발전
상하편에서 밝힌 것처럼 유객들은 경주라는 공간에 대해 서로 다른 목적으로 경주를 유람하면서도 찬란했던 신라 천년의 고도와 아름다운 산수를 회상하고 선현의 사당을 참배하며 조선 유학의 도통연원을 찾았으며, 많은 사찰과 암자를 찾아 융성했던 불교의 성지로 인식했다는 점으로 다시 요약할 수 있다.

오 원장은 “특히 경주지역을 대변하는 체계적이면서 지침서격인 유기로서 절목화·일정별·항목별 등 다양한 글쓰기방식이 활용되고 향유되면서 점차 발전했습니다. 다분히 객관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 글쓰기 방식을 활용한 조선후기 유기의 보편적 서술방식이 표면화되었던 것이지요. 또한 경주지역 유람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았고 역사적, 문화적, 문화재 관련에도 중요한 사료 역할을 하며 경주지역 유기의 확대와 보편화 등 타인의 유기작품 양상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앞선 유람자의 길을 답습하며 보편적 유람의 장소로 경주가 알려진 것이며 훗날 유객의 효율적인 유람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경주유기의 특징이자 의미가 된다고 덧붙여 말했다.

↑↑ 조선시대 경주지역 유기작품들이 기록된 문집들. 믁암선생문집-유관록, 수종재집-남유일기

-당주(鐺洲) 박종(朴琮) 경주에서 반드시 재조명 돼야,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정확하게 구분해 명명
오 원장은 특히, 박종은 경주에서 유기 연구가 더 진행될만한 인물이라면서 그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박종이 쓴 불국사에 대한 유기는 이미 번역돼 있어서 현재 문화해설사들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경주에 오기 전 치밀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온 그의 문집 중 절반 정도가 유기입니다. 경주에 가장 오래 머물고 유기를 쓴 인물이었고 그가 쓴 ‘동경유록’의 서술방식은 기존 기행문학의 장점을 활용해서 작성된 유기였습니다. 항목별 서술과 일정별 서술을 병행해 기록한 것이 특징인데 신라의 고도 경주에 대한 인문지리적, 문화재적 실상을 상세히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가히, 유기의 완성체라 할 수 있지요. 특히 문화재의 위치 및 당시 건축양식의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높고 여행의 느낌을 주관적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공간을 객관적 기록으로 남긴 것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 오상욱 원장

“동경유록은 경주 시내권과 안강권 그리고 남산과 불국사권의 문화재에 대한 유람기록을 담고 있으며 경주를 대표하는 유록중의 하나로 지방문화를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됩니다. 특히 유록에 등장하는 인산서원은 현재 존재하지는 않지만 18세기 경주 남산 주변에 위치했다는 위치정보 수록과 안강에 있었던 정혜사의 존재확인, 고종(古鍾, 봉덕사의 옛 종으로 현재 정확한 명칭은 성덕대왕신종), 또 유록에 나타난 신라와 조선의 건축물 등 경주의 문화유적에 대해 고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신라십무’와 함께 현존하는 불국사 유기 관련 작품 가운데 상세설명이 돋보이고 있습니다”면서 몇 해 전까지도 논란이 되었던 ‘청운교’와 ‘백운교’ 등에 대해 정확하게 구분해 명명하고 있어 문화재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강조했다.

↑↑ 조선시대 경주지역 유기작품들이 기록된 문집들. 연재선생문집-유교남기, 졸옹집-계림록, 간재집-동경유록

-“유기는 지방문화자원 발굴에 중요한 자료 될 것”, “신라십무는 상당한 기록성 가지므로 활용할 가치 충분”
한편, 경주 유기 활용 방안에 대해 경주대 관광레저학과 김규호 교수는 “경주 유기 번역의 결과물을 관광콘텐츠화하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기 속에 명백한 기록으로 남아있는 여러 문화적, 역사적 콘텐츠들이 복원 혹은 재현이 가능하다면 지방문화자원 발굴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나아가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내다봤다. 

명백한 콘텐츠일 경우 좀 더 연구해서 문화재청 지원을 유도해 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서 김 교수는 경주시가 의지를 가지고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아 문화재로 지정되고 복원한 예로 두산명주를 꼽았다. 

특히, “신라십무 등을 재현한다면 안동의 탈춤처럼 중요하고 의미있는 복원이 될 것이며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전망했다.

또, 김성혜 경주문화원부원장(동국대 한국음악과 외래교수)은 경주유기에 기록된 신라십무에는 조선시대 춤이 많이 포함돼있다고 추정했다. 당시 경주를 찾은 박종은 신라고도이므로 이 춤을 ‘신라십무’로 명명했을 수도 있었다고 추측하면서 10가지 춤 중 정확히 신라의 춤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처용무, 황창무 정도라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아박무, 향발무 정도가 신라적 요소를 가질것이라고 말하면서 박종이 본 신라십무는 경주 이외에도 진주, 한양, 성천 등 관아소속의 기녀들이 춘 춤이라는 것이 무용계의 중론이라는 것.

“하지만 이러한 한계는 있지만 박종이 기록한 신라십무는 상당한 기록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활용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지역성은 확실하니까요. 이 기록에 근거하면서도 가장 신라적 색채가 선명한 황창무, 처용무 등은 재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안무를 해낼 인적 자원이 필요합니다”며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 외에 아박무, 향발무 등은 고고학적 자료가 있으므로 이론적으로 보강하는 등 신라적 색채가 확실한 춤부터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조선시대 경주지역 유기작품들이 기록된 문집들. 퇴우당집-호고와집, 호고와집-남유록

-“기존의 백과사전적 자료만으로 경주 드러내지 말고 계속 발견되는 연구 자료들에 관심 가져 경주 문화 더욱 다양하게 알려졌으면”
“저희는 자료를 찾아 원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자료수집을 하고 번역을 하고 열심히 연구를 해도 ‘묻히면 그만’ 이라고 말하는 오 원장의 작업은 외로워보였다. 누구도 잘 알아주지 않는 상황과 열악한 재정지원아래 진행되는 연구들이지만 언젠가 ‘쓰여져 빛이 나서’ 경주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지고 달라지기를 바란다는 그였다. 특히 경주 관련 유기연구를 통해 조선인이 신라의 유적과 당시 경주를 둘러보면서 바라본 관점과 현대인이 경주를 바라보는 관점을 비교해 경주의 문화관광에 ‘쓰임’이 되기를 간곡히 바랐다. 

“경주 관련 자료연구이므로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콘텐츠 활용이나 기념품 제작 등 경주와 연관된 방향으로 유기가 활용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유기를 통해 여행코스 개발 등 지역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강조할 수도 있고 문화재 해설판 안내문에도 추가적으로 설명을 보탤수도 있겠지요. 기존의 백과사전적 자료만으로 경주를 드러내지 말고 계속 발견되는 연구 자료들에 관심을 가지고 관계자들이 협력을 해 경주 문화가 더욱 다양하게 알려질 수 있는 근거로써의 자료들이니까요” 

“관광산업화 시대에 당시 경주유기를 바탕으로 분석해 오늘날 경주를 찾는 그들에게 제공할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단지 옛날 글로써만 남겨두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글을 현대화시켜 드러날 수 있도록 향유하고 서로 읽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경주지역학 가운데 유기문학의 개괄 연구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더 많은 자료를 발굴해서 보다 심도있고 폭넓은 경주유기 연구를 할 것입니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357호입력 : 2018년 0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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