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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와 월성 등지의 고식기와 기준으로 편년 재정립 필요

황룡사, 여러번의 재건과 가람 배치 변화 겪어-창건 기와 유추하는 것은 상당한 주의 필요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349호입력 : 2018년 07월 12일
↑↑ 황룡사 출토 고식기와 종류.

황룡사는 여러모로 신라 최대최고의 사찰이었다. 황룡사 이후 신라에서 규모와 기능의 측면상 그에 비견할만한 사찰이 다시는 세워지지 않았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창건돼 고려 고종 25년(1238)에 전소될 때까지 685년간 법등이 이어져 온 사찰로서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를 통해 그간의 변화양상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황룡사에 대한 발굴 조사는 1962년에 사적지정을 위해 1차 조사가 이뤄졌고 1976년 비로소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이 조사는 8년간 진행되면서 황룡사의 가람 배치를 비롯해 시기적 변천과 출토유물에 대한 해석을 가능케 했다.

동시에 방대한 양의 연구 자료가 제공됐다. 이 8년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고고학적 결과치인 기와들은 출토 위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 자료라 볼 수 있다고 한다. 동아시아 기와 연구에 조예가 깊은 기와 전문가 양종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최근의 한 발표에서 ‘출토 기와 중 가장 많은 것은 창건 기와’라는 절대 다수의 논리를 황룡사 기와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면서 새롭게 5개소의 황룡사 기와밀집구역도 확인해내 주목을 끌었다.

양 주무관은 ‘황룡사 출토 고식기와 검토’ 라는 발표문에서 황룡사 기와를 비롯해 월성 등지의 고식기와를 기준으로 편년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문제제기 한 것이다. 본 기사는 양종현 주무관의 발표문에서 발췌하고 설명과 전화 인터뷰를 곁들이면서 황룡사 출토 고식기와에 대해 알아보았다.

-황룡사 출토 고식기와는 수키와, 암키와, 수막새, 사래기와, 귀면와, 치미, 기타기와 등 7종
양종현 주무관은 통일신라 이전을 ‘고신라’라고 한다면 이 시기에 해당하는 기와 즉, 통일신라 이전의 기와를 ‘고식기와’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황룡사에서는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3만2643점의 다종다양한 기와와 전돌이 출토됐다. 고식기와는 크게 수키와, 암키와, 수막새, 사래기와, 귀면와, 치미, 기타기와 등 7종류로 구분된다.

수막새는 단판연화문, 복엽연화문, 유문단판연화문, 귀면문수막새로 구분되며 단판연화문수막새는 다시 세부 문양에 따라 분류되는데 활판계, 협판계, 첨형 등으로 나뉘며 복엽연화문수막새의 복엽은 연잎이 두 장으로 이뤄진 것을 말한다. 유문단판연화문수막새는 단판연화문의 연잎에 원문, 인동문 등 별도의 문양을 추가한 것이다. 이외에도 귀면문수막새가 있다.

연화문연목와는 건물 지붕을 받치는 구조물 중 하나인 연목의 끝을 장식하는 기와이며 사래기와, 당초문마루끝장식기와, 귀면와, 치미 등이 있다. 이중 황룡사 고식치미는 신라시대 치미로 대형치미와 석재치미 두 점인데 석재치미는 그 존재 자체가 잘 알려져있지 않았었다. 이 석재치미는 경주 기림사 석재치미와 함께 남한지역에서 확인된 보기드문 사례라고 한다.

-황룡사 출토 고식기와 제작기법 45가지 존재했었다
↑↑ 황룡사는 1탑 1금당식 가람에서 1탑 3금당식 가람으로 바뀌면서 건물이 늘어났다.
양 주무관은 수막새를 제작하는 접합 기법과 가공 기법에 따라 45가지가 존재했다고 했다. 제작기법은 문양시문기법(와범의 재료에 따라 중조기법, 2차 가공기법, 부조, 조각)과 접합기법 등으로 나눈다. 문양시문기법의 특징으로는 첫째 목재 와범(瓦笵, 기와를 만들때 쓰이는 틀)의 존재인데 일부 수막새의 문양면에 목질흔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것에 연유한다. 또 일부에 포목흔이 관찰돼 이를 통해 와법과 소지의 분리를 위한 방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수막새 완성 단계에서 포목흔을 지우기 위한 정면이 이뤄졌고 정면 방법으로 빗질을 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둘째는 와범에 소지(素地)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황룡사 출토 신라고식수막새는 거의 대부분 판형소지를 충전해 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접합기법에서 접합은 성형이 완료된 막새에 평기와를 부착하는 것이고 접합기법은 부착하는 방법을 말한다. 고식수막새에서 확인되는 접합기법은 수키와를 막새에 접합하는 방법에 따라 분류된다.
수키와의 선단이 주연의 일부가 되도록 접합하는 기법과 주연부와 수키와 선단을 일부 깎아내어 접합하는 기법이 각 유형의 고식 수막새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됐다. 양 주무관은 이 공통점은 고구려와 백제,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함께 나타나므로 일반적으로 유행했던 기법인지에 대해 공간과 시간적 해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룡사 폐와무지로 기존에 확인된 6곳 이외, 새롭게 5개소 기와밀집구역 확인

황룡사 출토 고식기와 분포도<상단도표 참조>를 통해 보다시피, 황룡사 출토 고식수막새는 경내 거의 전역에서 확인된다. 특히 일부 폐와무지(廢瓦穴, 못쓰는 기와가 모인 곳)로 밝혀진 부분에서는 기와가 밀집된 양상으로 출토됐다. 폐와무지는 강당 북동쪽으로 연접해 두 군데가 확인되었고 서금당 전면에 세 곳 등이 확인됐다. 양종현 주무관은 폐와무지로 기존에 확인된 6곳 이외에도, 이번에 새롭게 5개소의 기와밀집구역을 확인해 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렇듯, 기와가 밀집돼 출토되는 양상은 건물이 조영되기 이전에 이미 매몰된 경우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건물의 조영시기와 비교해 출토 기와의 하한연대를 추정하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될 것으로 피력했다.

-황룡사 출토 기와의 편년 방법
다른 유물과 마찬가지로 기와의 제작시기를 유추하는 기와편년 방법으로는 문자기와에 의한 연대 측정 확정, 기록과의 관계에 의한 편년(역사서, 금석문, 목간), 문양분류에 따른 순서배열 등의 방법이 채택되고 있다. 먼저 문자에 의한 제작시기 확정은 기와를 타날(打捺, 기와를 만들 때 와통에 점토를 감고 표면을 두드려 고르는 도구)할 때 사용하는 고판(叩板, 방망이)에 새겨진 문자가 기와에 전사(傳寫, 서로 돌려가며 베껴 씀)되어 남아있는 내용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기와제작 또는 건물의 축조 연대를 포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제작 연대와 직접 관련이 있는 자료가 되며 편년에 결정적 자료가 된다. 기록과의 관계에 의한 편년은 역사서, 금석문, 목간 등에 남아있는 기록을 바탕으로 기와가 사용된 시기를 유추하는 것이다. 창건, 중건, 수리 등에서 건물에 기와이기를 했던 기록과 연대를 비교해 당시의 유구와 유물을 편년하는 방법이다. 또 문양분류에 따른 순서배열법도 있다.

↑↑ 1 황룡사 복원 모형도. 2 문양시문기법 조각 치미. 3 의봉사년개토(679년)’라는 문자에 의한 제작시기가 확정된 기와.

-절대 다수의 논리 한계...‘출토 기와 중 가장 많은 것이 창건 기와’라는 논리 지적

양종현 주무관은 창건 기와를 추정하는 작업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창건 기와를 유추하는 것은 해당 유적 및 유구의 초기 유물을 파악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창건 기와를 파악하는 대부분의 방법은 대다수가 채택하고 있는 절대다수의 논리 즉, 빈도속성의 편년법이다. 이 논리는 1950년대 일본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가 주로 썼던 것으로 수막새와 암막새의 조합을 통해 절대 다수의 기와를 창건 기와로 간주하는 것이다.

즉 출토 기와 중 가장 많은 것이 창건 기와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우에하라 마히토가 몇 가지 지적을 한 바 있다. 나가오카큐의 대극전과 조당원의 발굴 조사 결과 이전 시기의 나니와노미야의 기와를 천도와 함께 조영한 나가오카큐에서 재사용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양 주무관은 “즉, 특정 기와가 절대 다수를 점하더라도 유적의 창건 시기와 그 기와의 제작시기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면서 “다수의 건물에 사용됐던 기와가 한 건물에 재사용된 경우와 반대의 경우에도 이 논리는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황룡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황룡사는 여러번의 재건과 중수, 수리 등을 거치는가 하면, 가람 배치의 변화도 있었고 이 과정들 속에서 다량의 기와가 번조되고 사용됐을 것이며 현재 이들 중에서 창건 기와를 유추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결국 절대다수의 논리에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문양, 수량, 제작기법, 출토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학적 편년해야
↑↑ 귀면문 수막새.
다시 말해 황룡사는 1탑 1금당식 가람에서 1탑 3금당식 가람으로 바뀌면서 건물이 늘어났다. 건물이 늘어난 것은 건물의 수가 늘어난 것과 건물의 면적이 늘어났다는 것의 두 가지 경우다. 어느 경우든 건물에 소요되는 기와의 수량은 늘어난 면적에 비례해 당연히 증가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전 가람 즉 창건가람에 사용된 기와의 수량보다는 재건된 가람에 사용된 수량이 전보다 많아졌기 때문에 ‘출토 기와 중 가장 많은 것은 창건 기와’라는 절대 다수의 논리를 황룡사 기와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이에 양 주무관은 창건 기와 혹은 기와의 제작시기 편년을 합리적으로 유추하는 방법으로써 문양, 수량, 제작기법, 출토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차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여러 차례 검토와 검증을 거치면서 하한년대를 끌어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창건 시기에 근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출토 상황 및 출토 정보는 단일 유적의 해석 뿐 아니라 이것이 기초가 되어 상대편년의 자료로 활용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양 주무관은 “고식기와와 통일기와시기도 마찬가지긴 한데 선학(先學)을 비판할 목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편년이 시대적 편견으로 면밀하게 다뤄지지 못한 것, 예를 들어 경험에 의한 추정이 아니라 출토될때의 위치나 정보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편년을 하자는 것입니다. 차제에 황룡사 기와를 비롯해 월성 등지의 고식기와를 기준으로 편년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문제제기 한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349호입력 : 2018년 0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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