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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가 낳은 걸출한 천재시인 이경록을 기록하다-불꽃처럼 시를 피워올렸던… 지금도 현대성과 치열성에서 ‘탁월’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 현대 시사(詩史)에 우뚝 남을 시인이 되셨을 분”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334호입력 : 2018년 0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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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록 시비 제막과 이경록 시인 추모의 밤 팜플렛. |
| 흑백사진 속 이경록 시인(1948~1977)은 여전히 건장하고 젊다. 손으로 직접 쓴 원고의 원본은 이미 오래전 빛이 바래졌지만 시인의 일찍 쓰러진 청춘과 시업(詩業)을 다 펼치지 못한 정한이 손에 잡히는 듯 했다. 가지런하고 정갈한 글씨체로 써내려간 육필원고에는 잠을 쪼개면서까지 각고면려했을 시에 대한 열정과 현실감각과 뼈아픈 시대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도 했다.
한데, 어찌 시인은 그리 황망하게 일찍 눈을 감았을까..., 강동면 다산2리 출신으로 경주가 낳은 순박한 천재시인이었던 이경록은 29년 3개월간 지상에 오롯이 머물렀다. 자신의 즉음을 목도한 시인은 생전 시집을 내지 못했을만큼 이승에서의 삶은 짧디 짧았다. 홀로 남은 아내는 만삭의 몸이었고 유고시집 ‘이 식물원을 위하여’, ‘그대 나를 위해 쉼표가 되어다오’, ‘나는 너와 결혼하겠다’등이 시인이 떠난 후 발간되었다.
이경록 시인의 체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경주에서 살고 있는 시인의 아내(이수인 여사, 69)를 만난 날은 봄비가 쏟아졌다.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생애를 살면서 불꽃처럼 시를 피워 올렸던 시인의 유고 시집과 사진 자료, 육필원고들을 선뜻 제공해주신 이수인 여사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에서 소설을 지도하고 있는 이채형 교수와의 인터뷰, 정호승 시인과의 전화 인터뷰도 소중했다.
우리가 한 시인과 시인이 남긴 시를 기억하는 일은 어쩌면 축복이겠다. 그것도 경주가 배출한 걸출한 시인임에랴. 그가 남긴 시들은 그렇게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남아 때로 찾아오는 불면의 시간을 함께 할 것이다. 뛰어난 시를 썼음에도 요절했다는 이유로 묻히고 잊혀져가는 시인이 되고 만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시는 죽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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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록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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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고교 시절 시적 재능 탁월해 전국 백일장 석권, 천재성은 이미 고교 시절 입증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은 ‘마침내 한 개의 마침표가 된 시인-이경록 론’에서 “이경록은 이미 경주고등학교 재학시절 부터 충남대 전국고교생백일장 장원으로 뽑히고 건국대 고교생현상문예 시가 당선되는 등 문명(文名)을 떨쳤다. 대전대와 미국 오스틴대 공동주최 고교생 작품 공모 당선, 충청일보 신춘문예 학생부 시 당선 등 고교 졸업 후 대학 입학 전에는 신라문화제에서 시 장원을 했다. 장원이 아닌 입상도 부지기수 였을테니 이경록의 천재성은 이미 고교 시절 입증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천재시인 이라고 표현했다”고 했다.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에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시인도 정치적 억압이 자심하던 유신시대엔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의도가 뚜렷한 시를 여러 편 썼다”고도 했다.
“시인은 혈기왕성한 한창때 문득 찾아온 병마와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면서 죽는 순간까지 시를 쓰겠다. 마침내 한 개의 마침표가 되겠다고 결의한다. 겨우 6개월의 투병, 이 짧은 기간 중에 쓴 시들 가운데 수작이 많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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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록 시인의 육필 원고. 시인의 이름이 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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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선고 받고 죽음의 그림자 다가와도 끝까지 시 쓰고자 몸부림
‘시에 죽고 시에 살다(새움, 우대식 씀)’에서 우대식 시인이 쓴 이경록 시인에 관한 글에서 이경록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보다 자세하게 드려다 볼 수 있었다.
‘그에게 시는 모든 한계상황을 뛰어넘는 삶의 주관자였다. 시에 대한 그의 숭배는 종교적인 모럴과도 같았다. 그의 문학적 고뇌의 씨앗은 이미 오래전부터 배태됐음을 알 수 있다.
1976년 4월에 박정남, 이기철, 이동순, 이태수, 이하석, 정호승 시인 등과 ‘자유시’동인을 결성했다. 그 면면은 가히 대구를 넘어 한국 시단의 중진 시인들로 동인이 구성된 셈이었다. 만약에 이 시인이 살아 있었더라면 그도 역시 한국 시의 중심에 서 있었을 것이다. 이경록 시인의 시는 지금 읽어도 치열성과 현대성의 정도에서 탁월한 느낌을 받는다. 알게 모르게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그의 시는 성경의 외경처럼 읽혀왔다. 이하석 시인은 ‘시 정신의 측면에서 극도로 자신을 몰고 갔던 시인이며 한창 평가를 받으려는 찰나에 세상을 떠났다’라고 했다. 이경록 시인이 떠난 지 2년 6개월 되는 1979년 9월, 유고 시집 ‘이 식물원을 위하여’를 발행한다. 살아남은 자들이 이경록을 잊지 않고 남겨두고 싶은 강한 욕망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경록은 1967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고 생활이 어려워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다가 2년 뒤 군에 입대하고 1972년 제대한 후 경주에서 임시교사로 있었다. 같은 학교의 이수인 교사를 알기 시작한다. 그들의 사랑은 이경록 시인에게는 치유의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생활의 고통을 치유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수인 여사와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이 만남 속에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기쁨을 누린다. 당선작 ‘달팽이’는 맹목적인 현대인의 삶을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1974년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생활의 터를 잡는다. 이 시인은 학교를 가고 이수인 여사는 단칸방에서 과외로 시인의 뒷바라지를 한다. 이 시인은 아내와 함께 잠들었지만 새벽에는 늘 깨어 있었다고 한다.
‘이 식물원을 위하여’라는 연작은 그의 독특한 시세계를 유갑없이 보여주는 수작들이다. 이 시인의 시는 현실에서 일정한 거리를 취한 듯 보이지만 늘 현실의 핵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작을 씌기 위해 남산식물원과 창경원으로 몇 번이나 답사를 다녀왔다.
그의 시적 안목은 이렇듯 냉철하고도 복합적인 인식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 시의 연작을 쓰던 시기는 짧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였다. 이 무렵 김현 선생으로부터 이 연작이 너무 신선하다는 격려를 받고 ‘겨울 바다’ 연작을 부탁받는다. 이수인 여사는 시인은 겨울바다 연작을 쓰려고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한다. 한국 시 최고의 감별사 김현 선생의 평가는 그를 시에 더욱 매진하게 했을 터이다. 그러나, 1976년 말경 숨이 차고 어지러운 증상을 느낀 시인은 백혈병 선고를 받는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시작(時作) 초기부터 늘 죽음의 연기를 피워 올리던 시편들은 시인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개월간의 투병 생활이 이어지고 차도가 있으면 경주로 내려오기도 하고 다시 입원을 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낸다.
이 여사는 “김현 선생으로부터 청탁받은 겨울바다 연작을 쓰기 위해 바다에 꼭 가보고 싶어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계속 시를 쓰려고 하셨지요. 결국 해운대까지 다녀왔으나 바로 돌아가셨습니다”고 했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시를 쓰고자 몸부림쳤던 것이다. 1977년은 그가 대학을 졸업한 해이자 타계한 해다. 음력 2월 25일(4월 14일) 이었다. 두 달 뒤 유복자가 태어났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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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혼여행에서 이수인 여사와 함게 단란한 한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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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를 쓸 수만 있으면 손가락 하나 잘라도 되겠다”
‘그대 며칠 전 팔백 리 밖 阿火(아화) 안말에서 띄워 보낸/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오늘 아침 동남풍과 함께 닿아 내/ 몸의 숨구멍을 타고 흘러들어오다. 흘러들어와 그 말의/ 숨결이 내 심장의 피를 덥히며 온몸을 흐르다. 팔백 리 밖 사/람아, 그대 사랑한다는 말의 하늘길로 또 내말을 보낸다.// 오늘밤 금강이나 추풍령 상공에서 내 말은 사랑한다, 사/ 랑한다고 소리치며 떠 헤매 가리라.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 나라의 사랑하는 마음들아, 한 마디씩 씨 받아 팔 괴고/ 잠들어라.//’-‘사랑가1’전문.
시인이 타계하고 홀로 유복자를 키우면서 시인의 시업을 알리고 있는 이수인 여사는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속의 시인을 호명했다. 1977년 시인이 타계하고 바로 경주로 내려온 이 여사는 시인이 작고하자 8개월 만삭의 몸으로 실신해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을 만큼 슬픔과 아픔이 깊었다고 한다.
“올해로 작고 하신지 42년입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그이의 모든 자료를 분류해서 간직하고 있습니다. 시인도 아끼고 저도 소중하게 여기는 시가 있지요. 바로 ‘소금’이라는 시입니다. 그리고 연작시 ‘이 식물원을 위하여’도 좋아했습니다. 이 시를 쓸 때 둘이서 많이 다녔었지요. 그 사람은 시 쓰는데 목숨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김수영 시인이었고요. 김수영 시인을 뛰어넘는 시인을 꿈꾸었지요 (웃음)”라고 하면서 이미 작품을 발표하고서도 고치기를 반복하는 등 늘 완벽을 기한 시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목월 선생과 미당 서정주, 구상 선생의 애제자이기도 해서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 좋은 시를 쓸 수만 있으면 손가락 하나 잘라도 되겠다고 한 일화도 있었구요. 그만큼 열정적으로 시를 썼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글을 썼으니 그이를 알리는 행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섣불리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이경록 백일장’ 등이 마련된다면 저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싶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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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중앙대 문예창작과 친구들과의 모습. <우>황성공원에 있는 이경록 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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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세계 발아할 무렵 타계, “인간과 사물의 본질에 대한 추구와 탐구 깊었다”
동향인이면서 서라벌예대 문창과 입학 동기였던 이채형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는 이경록 시인을 이렇게 추억했다.
“이경록 시인은 과묵한 편이었다. 고교 시절 시적 재능이 탁월해 전국 백일장을 거의 석권했다. 1967년 서라벌예대 입학 면접시 상장을 두루마리처럼 펼칠 정도였다.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197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1974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통해서였다. 아직도 시 쓰는 이들은 이경록 시인을 거론하기도 하고 뛰어난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편, 이 시인에 있어서 부인의 존재는 정신적 뮤즈였을뿐만 아니라 절대적 지지자요, 헌신적인 후원자였다”면서 안타까운 것은 시 세계가 막 발아할 무렵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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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이 타계한 후 발간된 시집과 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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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유시 동인이었던 정호승 시인은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이 시인은 인간과 자연, 사물의 본질에 대한 추구와 탐구가 깊으셨던 분이었다.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 현대 시사에 우뚝 남을 시인이 되셨을 분이라 아쉬움이 크다”고 전해왔다.
한편 이경록 시비는 1985년 11월, 중앙대학 문예창작과 시절 함께 활동했던 ‘자유시 동인(박해수, 이기철, 이동순, 이태수, 정호승 등)’의 발의로 경주중 24회 동기회, 경주고 15회 동기들이 추진해 1986년 1월, 경주시 시유지였던 진현동의 ‘우정의 동산’에 건립됐다. 시비는 천편일률적 외형이 아니라 좌우 비대칭이면서 하늘로 비상하는 새의 형상이다. 시비에는 ‘사랑가· 1’이 새겨져 있으며 2015년 시비는 황성공원으로 옮겨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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