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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과 월지 그리고 그 주변의 신라 유적(1)


하성찬 시민전문 기자 / 1630호입력 : 2024년 04월 11일
↑↑ 하성찬 시민전문기자
지금까지 옛 신라의 유적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고갱이라고 할 수 있는 왕성 주변을 남겨두었었다. 아껴둔 것이었다. 이제 월성과 월지를 중심으로 첨성대, 계림, 천관사지, 인용사지, 월정교와 일정교, 재매정 등을 둘러볼 것이다.

왕의 거주지를 왕성이라 한다. 약간의 의미상 차이는 있으나 왕경, 또는 왕도를 같은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신라가 기원전 57년 사로국으로 건국한 이후 고려에 의해 멸망한 935년까지 992년 간 왕성으로 금성, 명활성, 월성, 신월성, 만월성 등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나타난다. 이외에도 궁궐로 대궁, 양궁, 사량궁, 본피궁 등이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왕이 거주한 왕성의 이름이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음에 따라 당시 정치의 중심지가 이동하였고, 그에 따라 도시의 구조도 변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에 보이는 다섯 왕성 중 명활성과 신월성은 그 위치가 명확하나 금성, 월성, 만월성 등에 대해서는 그 위치 등이 명확하지 않다. 박혁거세거서간 21년, ‘서울에 성을 쌓고 금성이라고 불렀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금성은 신라 최초의 궁성이 된다. 따라서 금성은 제5대 파사이사금 22년까지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때까지는 석성이 등장하기 이전임으로 토성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그 유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금성과 월성의 관계에 대해서 도성 안에 태양(陽)을 의미하는 금성(金城)과 달(陰)을 의미하는 월성(月城)을 두어 우주의 음양이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는 신라 기원 전후의 고고학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닌 막연한 추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금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서남산 기슭에 있는 창림사에 궁실을 짓고 혁거세와 알영이 즉위 이전까지 거주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 창림사지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혁거세가 즉위하기 이전이므로 왕궁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며, 또 ‘혁거세 재위 21년 금성을 쌓았다’는 기록만으로는 금성의 위치를 추정하는 근거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는 학계의 의견도 있다. 현재 금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월성, 경주읍성, 읍성과 전랑지 사이, 알천 유역, 첨성대 주변 등으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윤무병은 금성의 서쪽에 시림이 있다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시림을 계림으로 보고 금성을 현 월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방룡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왕경을 왕도·경성·경도·경사·도성·금성이라 칭하고 있어 금성을 정궁이 있던 월성뿐만 아니라 왕도 전체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실제 금성은 소지마립간 22년을 끝으로 기록이 보이지 않고 있다.

금성이 경주읍성 위치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금성의 동남쪽에 월성을 쌓았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근거로 경주읍성이 월성의 서북쪽에 있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 기존의 금성 관련 시설을 활용하여 이를 축조한 것이 경주읍성일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읍성 내의 일부 구역을 발굴 조사한 결과 통일신라 이전으로 올라가는 유물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 설득력이 없다.

또 분황사 북쪽의 알천 유역설이 있는데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에 ‘금성은 경주부 동쪽 4리에 있다[府東四里]’는 기록과 ‘제8대 아달라이사금 7년에 태풍과 홍수로 금성의 북문이 무너졌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근거로 태풍과 홍수의 피해를 입은 지역이라면 알천 즉 북천 주변일 것이라 추정하지만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외에도 이기봉은 『고대 도시 경주의 탄생』에서 첨성대 서쪽 대릉원 남쪽 일대를 금성이 있었던 지역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금성 다음으로 왕성으로 등장하는 월성과 관련하여 『삼국사기』 「잡지」편 ‘지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파사왕 22년 금성의 동남쪽에 성을 쌓았는데 월성 또는 재성이라 불렀다. 둘레는 1023보이다. 신월성 북쪽에는 만월성이 있으며 둘레는 1838보이다. …… 시조 이래 금성에 거처하였는데, 후세에 이르러 두 월성에 거처하는 일이 많았다’

위 사료에서는 월성과 신월성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동일한 왕성으로 보고 있다. 만월성은 월성의 북쪽에 있는 동궁과 월지를 포함하여 천주사지와 첨성대 등을 아우르는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명활성은 신라 왕성이 재정비될 때 일시적으로 왕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자비마립간 18년 춘정월에 왕성을 평지에서 산성인 명활성으로 옮겨 소지마립간 10년 춘정월까지 14년 동안 머물렀던 것이다.

소수 다른 의견도 있지만 신라가 존속한 992년 중 왕이 이 명활성에 머문 14년을 제외한 기간은 월성에서 왕이 거주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곳 월성 주변 지역에는 왕실과 관련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하성찬 시민전문 기자 / 1630호입력 : 2024년 0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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