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0-02-14 오후 06:59:50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하성찬 전 교장의 경주이야기

민족 최고의 석조미술품, 석굴암<8>

주실 입구에 범천과 제석천이 있다.
하성찬 시민전문 기자 / 1423호입력 : 2020년 01월 16일
↑하성찬 시민전문기자
원형의 주실에 들어서면 바로 양쪽 벽에 본존상을 향한 자세로 조각되어 있는 범천과 제석천을 만나게 된다. 이 상은 우리나라 불교 조각에서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존상은 아니나, 그 조형적 우수성과 함께 불교 교리의 정수(精髓)를 함축한 고도의 상징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불교에서 욕계 6천의 둘째 천이 도리천(忉利天)이다. ‘도리’는 33의 음사(音寫)이며 삼십삼천(三十三天)으로 의역한다.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의 정상에 있으며 제석천[帝釋天 : Indra]의 천궁(天宮)이 있다. 사방에 봉우리가 있으며, 그 봉우리마다 8천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과 합하여 33천이 된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 뻘인 환인(桓因)이 제석천을 가리킨다고 주를 달아두었다.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할 당시는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이니 불교가 전래된 이후 우리의 건국신화가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범천[梵天 : Brahmā]은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3천 중 제일 높은 곳에 거주하며, 제석천과 함께 불교에 수용되어 호법수호신(護法守護神)이 되었다. 천계의 위계상 제석천보다도 높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석천만큼 친숙하지 않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신이 깨달은 바가 너무 심오해서 중생들에게 법을 설해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을 염려해 설법을 주저했다. 이때 제석천이 법을 설해 줄 것을 청했지만 부처님은 거절했다. 다음으로 범천이 세 번에 걸쳐 간곡하게 설법해 줄 것을 청하자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했다고 한다.

↑↑ 주실 입구에서 본존상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이 제석천상이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범천과 제석천상은 우리나라 불교 조각에서 그리 흔한 존상은 아니다. 석굴암의 범천과 제석천상은 그 조형적 우수성과 함께 불교 교리의 정수를 함축한 고도의 상징성으로 인해 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주실 입구에서 본존상을 바라보았을 때 범천상은 왼쪽에, 제석천상은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
두 상 모두 머리 뒤로 위쪽은 넓고 아래는 좁은 형태의 두광[파기광(簸箕光) : 파기는 체질할 때 쓰는 농기구인 키]를 둘렀고, 발 밑에는 부처와 보살상의 연꽃 대좌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격이 낮은 타원형의 대좌[구유(氍毹) : 양탄자 즉 털로 짠 모직물] 위에 서 있다. 조화군[朝霞裙 : 북인도 지방의 순백색 비단으로 짠 하의(下衣)]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둘렀으며, 오른손에 불자[拂子 : 삼이나 짐승의 털을 묶어서 자루의 한쪽 끝에 매어 단 기구로 번뇌와 장애를 물리치는 표지]를 든 모습도 거의 같다.

그런데 왼쪽의 범천상은 왼손에 정병을 쥔 반면, 오른쪽의 제석천상은 왼손에 금강저를 잡고 있다. 반측면관으로 처리된 신체에서는 원근감과 사실감이 느껴지며, 부드러운 천의의 표현이 섬세한 회화작품을 보는 듯하다.

범천과 제석천상의 파기광,구유좌,조하군은 석굴암 조각상이 인도적인 원류를 충실히 따랐을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 문화의 국제적인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석굴암의 이 범천, 제석천상 형상과 일치하는 경전이 『다라니집경』이다. 이 경전은 인도의 아지구다[阿地瞿多, Atigupta]가 654년 무렵 중국에 와서 번역하였다. 이 책의 권3 ‘반야화상법’ 중에 수록된 범천, 제석천을 그리는 설명문을 보면 손에 든 물건의 종류, 자세, 옷의 종류 등이 석굴암의 이 두 상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아마도 석굴암의 범천, 제석천상은 『다라니집경』의 묘사를 근거로 상을 조성한 것으로 보여진다. 밀교 계통의 이 경전에는 다양한 불교 존상의 제작법을 수록하고 있어 고대 동아시아에서 불교 도상의 모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범천과 제석천은 전실의 팔부중이나 연도의 사천왕과 격이 비슷한 신중(神衆)임에도 왜 예외적으로 성소에 해당되는 원형의 주실 안쪽에 들어와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 두 신중이 주실 입구 좌우에 위치하여 단순히 공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각종 경전과 불화 등에서 부처님의 설법에 참여하기도 한다. 석굴암에서도 이들이 본존상의 권속인 동시에 설법회를 구성하는 청중의 일부로 인식했을 것이다. 또 『화엄경』 권7의 제3 ‘도리천궁회’에서도 범천과 제석천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하여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엄의 교리와 신앙 측면에서도 범천과 제석천은 매우 중요시되어 보살에 버금가는 지위로 격상되는 경우도 있다.
하성찬 시민전문 기자 / 1423호입력 : 2020년 01월 16일
- Copyrights ⓒ경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INTERVIEW
문화·행사
금요연재
포토뉴스
형산강! 물길따라, 이야기따라
사설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36,947
오늘 방문자 수 : 9,258
총 방문자 수 : 2,286,970,563
상호: 경주신문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69 / 발행인·편집인 : 손동우 / 발행인 : 정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동우
mail: gjnews21@hanmail.net / Tel: 054-746-0040 / Fax : 054-746-004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024
Copyright ⓒ 경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