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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이 절터를 지키고 있는 마동 삼층석탑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01호입력 : 2019년 08월 01일

↑하성찬 시민전문기자
중복과 대서를 지나 입추와 말복을 앞두고 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연일 밤잠을 설칠 정도로 열대야가 계속된다.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서유럽도 기록적인 폭염으로 지난 주에는 최고 42.6도를 기록하여 아프리카보다 더 덥다고 아우성이다. 지구 온난화가 초래한 폭염으로 당분간 이런 날씨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가이아(Gai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여신)가 ‘무자비하게 환경을 파괴한 인류에 대해 보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동 삼층석탑을 찾아 집을 나섰다.

시내에서 보문단지를 지나 보불로를 따라가다가 불국로와 만나는 삼거리 전 70여m에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기 직전 우측으로 빠져나와 지하 통로를 지나면 마동 탑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을 따라 가면 탑마을 회관이 있다. 오른쪽은 코오롱호텔 제3주차장이다. 회관을 지나 탑마을 한정식 식당 갈림길에서 10시 방향 좌측으로 250m쯤 올라가면 삼층석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탑마을 표지석 아래에는 『경주풍물지리지』와 비슷한 내용으로 이 마을의 유래를 기록해 두었다.

“이 마을은 원래는 용동(龍洞)이라고 하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마을에 잦은 참상이 발생하여 마을 사람들이 원님에게 고하니, 원님이 갇혀있던 용이 천리 길을 달리는 말처럼 승천(昇天)하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마동(馬洞)이라 고쳐 지어준 후 지금까지 마동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갓거랑, 구장터, 뒷마을, 못안마을, 탑마을, 정자마을, 부믓골 등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마동 삼층석탑이 있는 이곳은 탑마을이라 한다”

탑 앞에는 승용차 1-2대 정도는 주차할 수가 있다. 탑 주위는 꽤 넓다. 탑 주위에 쇠울타리를 하고 그 주위는 옥수수 밭이다. 탑에 이르기 전 200여m 지점에 마동 104-8번지 유적지를 발굴 조사했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안내판이 있다.

“이곳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2010년 6월29일부터 2010년 11월22일까지 발국조사(조사면적 782㎡)를 실시한 결과 통일신라 건물지 3동, 담장지 2기와 고려시대 건물지 1동 등의 유구와 유물이 확인된 유적입니다. 확인된 건물지와 출토유물은 북동쪽에 인접한 마동사지 삼층석탑과 시기적으로 유사하고 관련성이 높은 곳으로 판단되어 보존조치된 유적입니다”

이 유적지와 석탑 주위의 넓은 밭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기록이 『불국사 고금역대기』에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선조 26년(1593) 5월 왜구 수십 명이 불국사의 웅대하고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둘러보다가 지장전에 무기가 감추어진 것을 보고 승려 8명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당시 장수사지에 머물고 있는 담화(曇華)대사가 달려왔을 때 이미 불국사는 2000여간의 건물을 화마가 삼킨 뒤였다.

불국사에 있던 왜병을 대적하려면 상당수의 스님들이 동원되었을 터이니 장수사가 작은 사찰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삼층석탑이 있는 이 절터는 『삼국유사』 「효선」편 ‘대성효이세부모신문왕대(大城孝二世父母神文王代)’조에 나오는 장수사(長壽寺)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불국사와 석굴암을 건립한 김대성이 청년 시절 사냥을 좋아하여 토함산에서 곰 한 마리를 잡았다. 그날 밤 산 밑의 마을에서 유숙하였는데, 꿈에 낮에 잡힌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나타나 자신을 잡아먹겠다고 덤볐다. 이에 대성이 용서를 빌었더니 곰이 자기의 영혼을 위해 절을 짓고 명복을 빌어 달라고 하였다. 곰의 요구로 절을 세우겠다고 약속을 하고 잠을 깼는데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후부터 대성은 사냥을 하지 않게 되었고, 또한 꿈을 꾸었던 자리에는 몽성사(夢成寺)를, 곰을 잡았던 곳에는 웅수사(熊壽寺)라고도 불리는 장수사(長壽寺)를 지었다.

마동삼층석탑이 있는 이곳 외에도 진현동 일대에 다수의 절터가 확인되고 있으나, 불국사와의 거리가 불과 600m 정도이고,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장수사지로 추정하고 있다.

외로이 절터를 지키고 있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이 석탑은 높이는 5.4m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옥개석을 올렸는데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다.

상·하층 기단 면석에는 4면에 우주와 탱주가 각각 2개씩 새겨져 있고, 기단 위층 받침돌 위에는 활 모양과 각진 모양의 2단 몸돌 굄이 있다. 지붕돌의 받침 수는 각 층 모두 5단이며, 처마와 처마가 맞닿은 전각(轉角) 모서리와 아랫면에는 풍경을 달아매기 위해서 뚫은 구멍이 각각 7개씩 1조(組)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아무런 장식이나 꾸밈이 없어서 소박하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 석탑은 8세기 후반 불국사 석가탑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912호로 지정되어있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01호입력 : 2019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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