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18-12-12 오전 11:13:1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칼럼 > 경주논단

‘보릿고개 고고학’은 이제 더 이상 없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43호입력 : 2018년 05월 31일
↑↑ 강봉원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 박물관장
ⓒ (주)경주신문사
1960년대 이맘때는 보릿고개였다. 전년에 추수한 양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영글지 않았다. 보릿고개를 넘는 길은 가파르고 험준했다. 사람들은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뜯고, 쑥으로 죽을 끓이며 연명했다. 허기진 아이들은 진달래, 감꽃, 아카시아 꽃을 따먹으러 쏘다녔다.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먹어야 했다. 사람들은 항상 굶주려 있었다. 그래서 문화재는 물론이고 고고학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스마트폰에 열중인 학생들은 보릿고개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른다. 그만큼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이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3월 중순, 덕동댐에 갔다. 그동안 날이 가물어 댐의 수위가 낮아져서, 신라시대 무덤과 부장품들이 지표에 노출되어 있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무덤은 훼손되어 있었고 깨진 토기 편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덕동댐의 수위가 높아지기 전에 이들을 발굴하기 위해 사전조사 차원에서 방문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사이 봄비가 많이 내려 모두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다시 수위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게 언제가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수중발굴조사를 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경주시내 안팎에서는 집을 짓거나 도시가스관, 수도관, 전선지중화 등의 사업을 하기 전에 반드시 매장문화재를 조사해야 한다. 반드시 조사를 받은 후에야 공사가 진행된다. 덕동댐을 축조하기 전에는 왜 이 무덤들을 조사 하지 않았는가. 덕동댐은 1975년 2월에 착공하여 1977년 5월에 완공되었다. 당시는 형편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먹을 것이 귀한 시기였다. 문화재에 대해서는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 때, 댐공사 전에 발굴조사를 해야 한다고 오늘날 고고학자들처럼 떠들었다면 어디 잡혀가서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재조사를 하면 공사기간이 늦춰지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낭비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보릿고개 시절에 이뤄진 허술한 문화재 조사를 ‘보릿고개 고고학’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소홀히 이뤄진 문화재조사는 경부고속도로, 안동댐 등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의 국책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에 걸쳐 문화재발굴조사를 한 곳은 경주 방내리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안동댐 공사를 하기 전에도 문화재조사를 했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안동댐과 관련해 ‘보릿고개 고고학’에 대한 일화가 또 있다. 필자가 1981년 대학 박물관에 학예연구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학생이 필자를 찾아와 말했다. 그의 집은 안동댐 근처인데 모든 집집마다 토기 한 접(100개)씩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지역 주민들이 안동댐에 굴러다니는 많은 토기들을 수집한 것이다. 얼마 전 덕동댐에서 일어난 상황과 유사했다. 댐공사로 인해 본격적인 문화재발굴조사는 1980년대 초 충주댐 수몰지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필자를 포함한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수몰예정지구 내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대대적인 조사였음에도 미비한 점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각종 철도공사와 고속도로 및 일반국도 건설·확장 공사, 대형 아파트 단지와 경기장은 물론이고 작은 집 한 채를 짓더라도 문화재조사를 먼저 받아야한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큰 가치도 없는 문화재를 찾는다고 지나친 예산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한다. 과연 가치가 없는가? 우리가 문화재의 중요성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시기에, 유럽과 미국, 특히 일본이 얼마나 많은 문화재를 반출해 갔는가. 과거 헐값에 팔려나갔던 그 문화재들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지금 문화재의 가치를 몰라보고 함부로 다루어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고고학이 성장한 배경에는 정치·경제·사회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문화적 소양이 배양되었고, 문화재와 고고학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혹자는 문화재 조사를 공사 시행에 걸림돌로 여기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갖고 있다. 고고학의 성장은 나라의 품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고학은 박물관에 전시할 화려한 유물만을 발굴하는 학문이 아니다. 하찮아 보이는 작은 토기나 기와, 자기편에서도 가치를 찾고 그것을 만들었던 과거 우리 조상들을 이해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그게 고고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보릿고개 시절, 먹고 사는 걱정 때문에 문화재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보릿고개 고고학’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보릿고개 시절을 잊게 될 만큼 사회가 발전하고 고고학이 성장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43호입력 : 2018년 05월 31일
- Copyrights ⓒ(주)경주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Tags : 보릿고개 문화재
 
경주오디세이
경주라이프
경주의 풍광,우리의 기억들
포토뉴스
경주사람들
사설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34,563
오늘 방문자 수 : 19,546
총 방문자 수 : 476,972,204
상호: (주)경주신문사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69 / 발행인·편집인 : 손동우 / 발행인 : 정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동우
mail: gjnews21@hanmail.net / Tel: 054-746-0040 / Fax : 054-746-004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024
Copyright ⓒ (주)경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