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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마스크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46호입력 : 2020년 07월 02일
↑↑ 박성철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미 대통령 트럼프가 드디어 마스크를 썼다고 대서특필인 세상이다. 그만큼 트럼프가 세계 최강의 파워맨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서양의 마스크 혐오(嫌惡) 문화가 놓여 있다.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마스크는 정상인이 아닌 환자용(用)이라는 잘못된 믿음은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그 참담한 결과는 굳이 입에 올릴 필요도 없을 정도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아주 단순한 행위가 ‘나는 당신과 달리 병이 있어요!’ 라는 잠재적 분리 의식을 자극한다면 인간은 코로나와 더불어 문화사적 이분법과도 힘든 싸움을 해야 할 운명이다.

영화 〈또 다른 지구(Another Earth(2011))〉에는 우주에 닿은 최초의 러시아 우주비행사 이야기가 나온다. 거대한 우주선 안 유일한 인간이었지만 그가 지낼 곳은 너무나 협소했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일상을 누리곤 했다. 바로 우주선 유리 너머 파란색 지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맨 눈으로 지구를 바라본 첫 번째 우주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틱.. 틱.. 틱 갑자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시보드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소음이 어디에서 나는지 그 진원지를 찾으려고 아무리 노력해 보았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몇 시간이 지나자 소음은 이제 고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주 한복판 그것도 비좁은 우주선 안 이 조그만 소리는, 최초의 지구인의 이성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기를 25일째, 황패해질 대로 황패해진 그는 드디어 결심을 한다. ‘이 소음을 없앨 유일한 방법은 이 소음과 사랑에 빠지는 수밖에 없겠다’고 말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상상했다. ‘그래, 이젠 받아들이자. 이건 소음이 아니라 노래야...’ 아름다운 소음(!)을 배경 음악으로 깔고 저 파란 지구를 즐기는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격주로 집에서 온라인 수업 중인 중학생 아들 녀석은 수학 문제를 풀 때면 꼭 노래를 흥얼댄다. 요즘 곧잘 따라 부르는 힙합에서 아빠는 뭐 이런 노래를 듣냐고 퉁을 주던 7~80년대 팝송 리듬에 이르기까지 부르고 또 흥얼댄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을 없애고자 스스로 내는 백색소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 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시에 도형 문제를 푸는 아들도 이해가 안 되지만 그 소리 때문에 이 방에서 책의 같은 줄을 읽고 또 읽고 있는 나도 이해가 안 된다. 분리와 소통의 문제로 누구는 즐기는데 누구는 벗어나려고 버둥댄다. ‘거부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겨라’는 어느 광고 문구를 본 적도 있는데...

여기 유명한 화두(話頭)가 있다. 제자 하나가 스승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점검해 달란다. 스승은 그 제자가 서있는 땅 주변으로 동그라미를 하나 크게 그린다. 그리고는 동그라미 안에 있는 제자에게 말한다. “그 안에 있어도 한 방 맞을 것이요, 그 밖을 나와도 한 방 맞을 것이다. 자,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入也打 不入也打)” 노승(老僧)은 바른 법의 상징인 주장자(拄杖子)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는 여차하면 내리칠 기세로 제자를 노려본다.

원을 벗어나자니 주장자 한 방을 맞을 것이고 그렇다고 원 안에 그냥 서있자니 역시 맞는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제자는 어떻게 타개할까? 그는 공부의 무르익음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화두는 난센스(non sense)가 아니다. ‘올바른’ 문제는 그 ‘올바른’ 답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화두는 질문과 대답 형태로 올바른 진리를 간단(間斷) 없이 이어온 불교식 공부법이다.

서두가 길었다. 자, 화두 점검에 들어간 제자는 과연 법의 릴레이에 동참할 수 있을까? 제자는 스승의 동그라미를 지워버리고는 씨익 웃는다. 스승 손에 든 주장자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순간이다. 사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놓인 동그란 선은 구별이다. 주장자를 든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분리다. 그 이분법을 지워버림으로써 스승과 제자는 참다운 법으로 동일해진다. 구별하고 나누는 것은 온전함을 해(害)할 뿐이니까. 주장자 든 스승의 짓궂은 장난에 제자는 예의를 갖추어 응대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도 동시에 타방도 지키는 마스크를 잘 쓴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46호입력 : 2020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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