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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그리고 그 사이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71호입력 : 2018년 12월 27일
↑↑ 박성철 교수
지난 11월 중순, 서울 이수역 가까이 어느 호프집에서 싸움이 있었다. 두 여성이 한 축이고, 다른 한 축은 건너편 테이블에 있던 커플 중 남자, 그리고 이들과 아무런 관련 없는 또 다른 무리의 남성들이다.
이들의 싸움 형식은 지난 수 천 년 동안 있어 왔던 젠더(gender: 성(性) 정체성) 논쟁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고는 있지만, 남녀 서로에 대한 ‘혐오’가 더욱 극대화된 오늘날 우리 자화상 같아 더욱 암담한 문제다. 이 사건을 규탄하는 청원 글에 30만 명이 몰렸다는 게 그 증거이고.
이걸 보고 있자니 문득 뇌가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그리고 제3의 성 포함)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 뇌도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두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누어져 있다. 나누어져 있는 만큼 각각의 역할도 다르다.
가령 좌뇌는 객관적이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분석하고 종합하며, 수학을 풀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계산적인 두뇌다. 반면에 우뇌는 주관적이며 감정적이다. 창의성과 상상력, 그리고 가치관이나 당위성 같은 주관적 사고를 관장한다. 여기서 좌뇌는 여자를 우뇌는 남자라고 생각했다면 그 또한 오산이고 혐오 진영에 동참하는 우를 범하는 아주 위험한 상상이다.
어쨌거나 한쪽이 언어적이라면 다른 쪽은 비언어적이다. 분석적인 이쪽과 직관적인 저쪽은 양립할 수 없다. 어떻게 주관과 객관이, 의식과 무의식이 함께 할 수 있겠냔 말이다.
그래서 우리 뇌에서 뇌량(腦梁)이 중요한 법이다. 한문으로 된 정의도 그렇다.
교량이나 다리로 이어진 뇌라니 달라도 너무 다른 좌·우 뇌가 하나의 다리로 연결된 구조가 바로 우리 두뇌다. 뇌량이 좌·우의 뇌로부터 전해받은 정보를 1초당 수만 번 상호 교류함으로써 하나의 통합된 뇌기능, 즉 머리를 제대로 쓰게 되는 것이다.
다리의 역할이 참으로 대단한 대목이다. 다리는 기본적으로 ‘분리’를 전제로 한다. 섬과 섬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나 육지와 산꼭대기를 이어주는 케이블카 등이 다리 역할이다. 이처럼 분리된 두 공간을 이어주는 다리의 최고봉은 불국사의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다.
어릴 때부터 토함산 꼭대기에 무슨 강이나 바다도 없는데 왜 ‘흰 구름다리’라고 하고 ‘푸른 구름다리’라고 했을까 궁금했었다.
산꼭대기니까 희고 푸른 구름은 이해가 되지만, 계단을 왜 굳이 다리라고 했을까 하는 의심 말이다. 대학에 와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사는 징글징글한 세속과 청정한 불국정토의 구별을 다리[橋]로 환기한다는 건 어쩌면 매우 시(詩)적인 표현이다. 다리는 ‘분리’를 그래서 ‘소통’을 동시에 가능케 한다.

남자는 여자를 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따로 그리고 똑같이’라는 말처럼 
남자 따로, 여자 따로이지만 

똑같이 인류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니까 똑같다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 사이의 뇌량 같은 존재나 역할은 그럼 도대체 뭘까? 지금이야말로 보다 큰 틀에서 남녀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늘 그래 왔겠지만 오늘날 특히 그 메타로직(meta logic: 초(超)논리)에 대한 인지(認知) 요구가 큰 것도 사실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남자는 여자와 다르다. 내 아들도 그런 존재론적 시련(?)이 있었지만 남자는 일정 나이가 되고부터는 절대 여탕엘 갈 수 없고, 여자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와 여자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이처럼 양립할 수 없는 관계를, 남자=여자로 여자=남자로 만드는 메타 로직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인류, 인간 같은 보다 상위 개념의 확립이다. 인류나 유권자라는 개념에서는 여자는 곧 남자가, 남자는 바로 여자가 된다. 가령 오른발·왼발은 서로 다르지만 그 둘의 협업으로 우리 몸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 말이다. 사실 오른발과 왼발이 누가 더 우월하다고 싸우는 게 더 코미디 아닌가?
남자는 여자를 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따로 그리고 똑같이’라는 말처럼 남자 따로, 여자 따로이지만 똑같이 인류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니까 똑같다.
마치 우뇌만 머리가 아니듯 말이다. 이런 인식 변화가 당장 이수역 폭행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제2, 제3의 이수역 사건을 막는 데에는 유일한 근거일 수 있게 우리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71호입력 : 2018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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