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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포르노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57호입력 : 2018년 09월 14일
↑↑ 박성철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 (주)경주신문사
더운 날은 그저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최상의 피서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에 수박을 먹어가며 책이라도 읽는 것이, 어딜 가나 사람으로 붐비는 계곡이나 바다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먹기 좋게 자른 수박에다 죽염을 살살 뿌려먹으면 이 또한 더운 여름을 이기는 별미(別味) 아니겠는가.

여기까진 좋았다. 책을 읽다가 지쳐 텔레비전을 켜보았다. 더운 여름날 어디 가지 말고 TV만 쳐다보라는 건지 죄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관련 방송뿐이다. 여러 명의 연예인들이 아무 집이나 벨을 누른다. 인터폰으로 반응이 있거나 주인이 누군가 하고 문을 살짝 열면 난데없이 ‘밥 좀 달라’는 식이다. 채널을 돌린다. 먹성 좋게 생긴 남자 몇이서 오로지 냉면을 먹기 위해 여섯 군데의 식당을 마치 순례하듯 방문한다. 그날 쓸 재료가 다 떨어졌는지 일찍 문을 닫은 한 군데를 빼고 다섯 곳에서 마치 첫 끼를 먹는 마냥 입 안 가득 냉면을 우물대고 있다.

채널을 돌렸다. 이번에는 외국으로 나가 현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었다. 여권처럼 생긴 데에다 여태 먹은 음식 수만큼 스탬프를 찍어준다.

마치 외국 여행할 때 여권에다 해당 나라 스탬프 찍듯 말이다.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야할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일단 음식을 시킨다. 시간이 없으니 눈을 감고 음미는커녕 그냥 입에다 털어 넣는다.

우리 인간의 진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음식에 관한 것들이 그렇다. 남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보거나 마치 본인이 먹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뇌가 그렇게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가는 실제 다이어트의 한 방법으로 음식을 앞에다 두고 상상하는 훈련을 제안한다. 가령 좋아하는 초콜릿을 잔뜩 먹는 상상을 하는 거다. 황금색 껍질을 천천히 공을 들여 벗기니 오호라, 검은색 초콜릿이 나를 게슴츠레 쳐다본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아주 자세하게 상상하는 거다. 그런 다음 실제 그 초콜릿이 눈앞에 놓여 있다면 어떻게 될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 섭취량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상상으로 이미 많이 먹었으니 배가 부른 것이다.

하지만 연구는 그저 연구일 뿐인 모양이다. 상상만 잘 해도 음식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실제 살을 뺄 수 있다지만 우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푸드 포르노(food porno)’라는 게 그 좋은 예다. 짜장면, 치즈버거나 피자처럼 기름진 고열량 음식을 먹는 방송을 떠올려 보자.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우리의 성욕을 자극하듯, 보기에 먹음직스러우나 몸에는 안 좋은 그런 음식들을 카메라나 음향 도움을 받아 사람들 식욕을 자극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푸드 포르노’의 최강국이다.

점점 더 많은 한국 사람이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11년 음식 먹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세상에 없었던 방송으로 시작된 집단적 관음 행위에 이젠 수백만 명이 기꺼이 동참한다. bj(broadcasting jockey)라고 불리는 이들 ‘프로 먹방러’들의 인기는 유명 연예인 못지않다고 한다.

유명 비제이가 짜장면 곱빼기 세 그릇에 입가심으로 탕수육, 깐풍기, 마파두부까지 먹어치우는 걸 인터넷으로 지켜보고 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푸드 포르노는 배고픔을 증대시킨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을, 더욱 먹음직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식욕이 생기게 마련이다. 한동안 굶은 사람만이 아니라 바로 식사를 마친 사람이라도 눈앞에 까만 초콜릿 케익이나 달디 단 핑크빛 마카롱이 있으면 ‘밥 먹는 배 따로 후식 들어갈 배 따로’라며 포크를 집어 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먹방 프로그램이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을 퍼뜨린다는 데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의뢰인 냉장고에 보관된 식재료를 이용해서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콘셉트의 프로그램만 해도 그렇다. 사실 우리가 시청자의 입장에서 봐서 그렇지 식품영양학 교수의 눈으로 본다면, 여기서 소개되는 다수의 조리법은 도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칼로리가 높거나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안에 비해 지방, 특히 포화지방의 함량이 아주 높고 나트륨 함량도 만만치 않다.

끝으로 육체가 영향을 받으니 이젠 정신의 황폐화가 시작될 차례다. 뇌를 가득 채운 자극적인 음식 이미지는 현실적으로도 그 영향을 미친다. 먹방 프로그램을 본 다음 자극적인 음식에 손이 갈지 야채나 신선한 과일에 손이 갈 지는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57호입력 : 2018년 0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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