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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로 변한 아들
경주신문 기자 /  1345호입력 : 2018년 06월 15일
 |  | | | ↑↑ 박성철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 | ⓒ (주)경주신문사 |
애들이 갑자기 조용하면, 어디가 아프거나 뭔가 심각한(?) 일을 꾸미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아까부터 이 방 저 방을 콩콩거리던 아들 녀석이 어째 조용하다. ‘엄마, 나 여기 있어’ 하고 녀석의 위치를 잘도 말해주던 발뒤꿈치 소리도 어느새 끊겼다. 긴장감을 부르는 조용함이다. 걱정이 된 건 아빠만이 아니었다. 설거지를 하던 엄마도, 방에서 작업 중이던 아빠도 동시에 아들 방으로 달려간다. 둘 다 뭘 보더라도 놀라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듯 심호흡을 하며 조심스레 문손잡이를 잡는다.
“와하하하…. 역시”,
“뭐~야, 이게?”
상반된 반응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방 안은 전쟁터였다. 두루마리 휴지와 티슈가 사방에 널려져 있었다. “피슝~”하고 입으로 내는 총소리는 간간히 들리는데 녀석이 안 보인다. 저 휴지더미 사이로 조그만 손이 들락날락 거린다. 녀석의 손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들려 있었고 발에는 빈 각티슈 통이 신겨져 있었다. 뒹굴고 있던 수많은 화장지와 티슈들을 보니 녀석은 지구에 침공한 나쁜 외계인과 싸움 중이었던 모양이다.
이 광경에 두 가지 격한 반응이 동시에 튀어나온 거다. 아빠는 자기 어릴 적 말썽꾸러기 같은 모습을 보았을 테고, 엄마는 치워야 할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본 모양이다. 애 엄마를 세속적이라고 폄하할 의도는 없다. 크든 작든 남자들이란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부르는데는 도가 텄다. 아들 녀석은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뒤돌아서는 엄마를 향해 휴지폭탄을 던진다. 험상궂게 변한 엄마 외계인의 얼굴을 보고는 결국 투항한다.
사람은 세상을 자기 식으로 본다. 있는 그대로 보지를 않는다. 배가 고프면 비누(soap)라고 읽을 걸 기어이 스프(soup)라고 읽는다. 길에서 우연히 남의 개를 만졌다면 배고픈 것[soup]보다는 먼저 손을 좀 씻었으면[soap] 하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만지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고(?) 현장에 들이닥친 애 엄마는 그때 하필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을 뿐이다. 설거지 중이었으니까 마음속에 뭔가를 치우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만 가득했을 것이다. 당연히 아들 녀석보다는 쓰레기가 더 도드라져 보였을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우리 손에 청소기를 들고 있었다면 쓰레기가, 염주가 들려 있었다면 장난꾸러기 선재동자가 보였을 거라는 사실이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화엄경』이라는 불교 경전(經典)에 등장하는 꼬마로 53명의 큰 스승님의 도움으로 어른[成佛]이 된다는 이야기 주인공이다.
꼬마부처보다 더 중요한 쓰레기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손이나 머릿속에 무엇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오징어가 외계인도 되는 것처럼 휴지 사이로 멀쩡한 아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인식(認識)이 우리를, 그리고 세상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사실 장난꾸러기 아들 녀석은 잘못이 없다. 하루 종일 만지작대고 울며 토라지다 또 낄낄거리는 게 아이들이니까. 세상을 알아가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유희하는 인간(Homo Ludens)이라고 정의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세상을 놀면서 배운다.
두루마리 휴지 몇 통으로 외계인을 지구로부터 지킨 녀석도 이젠 제법 컸다. 자고 있는 녀석 머리가 저기 있는데 발이 여기 쏙 나와 있는 게 신기하다. 그 귀엽던 선재동자가 요즘 들어 부쩍 말을 안 듣는다. 주위에서는 이제 사춘기가 시작되었다고 겁을 준다. 그렇다고 애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어른일 공산이 크다.
이참에 아빠 손에 뭐가 쥐어져 있는지 더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아이도 그렇고 아빠도 계속 자라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
경주신문 기자 / 1345호 입력 : 2018년 0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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