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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토함산 석탈해 사당터서 ‘제사 관련 건물지’ 발견

신라·고려시대 유물도 다량 출토
이상욱 기자 / lsw8621@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03일
↑↑ 석탈해 사당터에서 출토된 철제마.

경주 토함산 인근 석탈해 사당터에서 제사 관련 건물 유적과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경주시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이곳 유적을 긴급 발굴 조사한 결과 사당지와 관련된 건물지 2동과 통일신라시대 암막새, 평기와, 고려시대 명문기와, 청자, 분청사기, 철제마, 청동방울, 토제마 등 유물을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발굴조사는 문화재청 2020년 긴급 발굴조사 사업의 하나로 지난 9월부터 진행됐다.

‘삼국유사’에는 680년 문무왕 대에 석탈해의 뼈로 소상(塑像)을 만들어 토함산에 동악신으로 모시고 국사를 끊이지 않고 지냈다고 전한다.

이번에 확인된 건물터는 고려후기에 마지막으로 중건된 건물의 흔적이다.
중심 건물터는 동서 2칸, 남북 1칸으로 기반층 상부에 황갈색 점토로 대지를 평탄하게 고른 뒤 조성됐다.
중심 건물지의 서편에는 토석축으로 벽체를 만든 1칸의 부속 건물터도 확인됐다.

↑↑ 토제마/경주시 제공.

건물지에는 철제마, 토제마를 비롯해 청동방울, 통일신라시대 암막새편, 평기와, 고려시대 명문기와, 해무리굽 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 등이 출토됐다.
청자와 분청사기는 화로나 잔 받침 등 제사와 관련된 기종이 많다.

기와 중에는 ‘癸巳年 分施主 尹山 崔字 李堅(계사년 분시주 윤신 최자 이견)’이라는 글자가 찍힌 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됐다. 이 기와는 불국사 성보박물관부지의 발굴에서도 다수 확인된 바 있다.

시주자 중 한 명인 이견(李堅 ? -1360)은 고려 후기 무인이다.
1350년 종2품인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임명됐고, 1360년 홍건적 침입 당시 함종전투에서 전사한 인물로 추정된다.

이 명문기와는 고려 후기 몽고족 침입 이후 계사년(1353)에 불국사와 함께 탈해 사당도 중건됐음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 등 지리지와 여러 문집들의 기록에서도 탈해 사당은 조선 전기까지 제사가 유지됐던 것으로 전한다.

↑↑ 석탈해 사당터 전경.

경주시 관계자는 “사당터 주변에 조선시대 봉수대 관련 시설이 있고, 넓은 면적에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기와와 토기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며 “이 때문에 사당뿐만 아니라 군사관련 시설도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체계적인 조사와 성격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욱 기자 / lsw8621@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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