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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읍 옥산리(玉山里)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입력 : 1999년 12월 02일
옥산은 안강에서 영천방면으로 가다가 도로 우측에 위치한 마을로 옥산서원이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마을이 자옥산(紫玉山) 아래에 펼쳐져 있어 옥산이라 불렀다.

옥산은 회재 이언적선생의 후손들이 주류(약60%)를 이루고 있다. 독락당과 계정일대와 그 안쪽의 민내, 외뚜들이 1리를 이루고, 옥산서원이 있는 서원마을, 섬촌, 새장리, 뒷골이 2리를 형성하고 있고, 그 아래 중보마을이 3리, 도로변에 있는 삼거리가 4리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 주민 이지성씨(2리 이장)에 따르면 "신라시대 약500년간은 수원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설씨들의 집성촌으로 약500년을 지냈으며 조선시대에 와서 회재선생이 이마을에 들어오면서 지금까지 약500년간 이씨들의 집성촌이 되었다."고하여 신라때 대찰로 알려진 정혜사가 있었던 곳으로 깊은 역사를 지닌 마을이라고 말했다.

옥산은 북에 해발 702m의 도덕산이 버티고 있고 서쪽에 자옥산, 동쪽에 어래산과 화개산, 남쪽에 무능산이 있는 등 대체로 높은 산들이 감싸고 있는 가운데 마을이 위치해 있어 언뜻 보기에도 안온한 느낌을 주는 명당으로 보인다.

⊙마을소개

1리의 계정(溪亭)은 조선시대 영남 오현(五賢)의 한 분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 곳에 들어와 독락당(獨樂堂)과 계정(溪亭)을 세우므로, 마을 이름을 '계정'이라 하였다 한다. 이 마을에 있는 독락당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이 공부하던 서재로, 독락당의 현판 글씨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썼다고 전하며 혹은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하는데, 옥산정사 현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친필이다. 옥산서원 서북쪽 700m지점에 있는 이 건물은 1965년 11월 14일 보물 제413호로 지정 보호 되고 있다.

독락당에는 어서각(御書閣)이 있다. 어서(御書)를 보관하는 집으로 어필각(御筆閣)이라고도 한다. 회재의 문집 해동명적(海東名蹟)2책,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회재 이언적이 생원시에 합격한 방)과 회재수필고본13책이 보물로 지정 보관되어 있다.

독락당 뒤에는 계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회재 이언적(李彦迪)이 42세 때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세웠다. 계정(溪亭)이라는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며, 정자의 좌우에는 회재 선생이 심었다는 주엽나무(천연기념물 제115호)가 있으며 회재의 제자인 협천군수 권덕인이 심었다는 수령 420년된 은행나무가 있다. 양진암(養眞庵)이라고도 하며, 현판은 퇴계 이황(李滉)의 글씨이다.

독락당 앞에는 1984년에 세운 잠계공기적비(潛溪公紀蹟碑)가 서있다. 회재선생의 아들인 잠계(潛溪) 이전인(李全仁)의 기적비(紀蹟碑)로 공은 선조 1년(1516)에 돌아가자 예빈사정(禮賓寺正)에 추증되었으며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을 남겼다.

계정 서북쪽에는 정혜사(淨惠寺)터가 있다. 신라 선덕왕 원년(780)에, 백우경(白宇經)이 이곳에 암자를 짓고 만세암(萬歲庵)이라 불렀는데, 이 후 임금이 와서 보고 정혜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 곳에는 국보 제40호의 정혜사지 13층 석탑이 남아 있으나 얼마전 도굴범에 의해 탑재 일부가 해체되었으나 그냥 방치되어 있다.

계정마을에서 골짜기로 약2km 들어가면 옥산지 안쪽에 민내라는 마을이 있다. 면천(眠川)이라고도 하는 이 마을은 산에서 약초를 캐던 김씨 성을 가진 이가 실신하여 며칠 동안 냇가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나서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여, '면천', '면내', '민내골', '미내곡동(米內谷洞)', '면내곡(眠內谷)' 혹은 '잠계(潛溪)'라고도 부른다.

도화동은 도덕산 기슭에 있는 마을로 외뚜들이라고도 한다.

남천사(南川寺)터는 정혜사(淨惠寺) 12암자 가운데 하나인 남천사가 있던 터이다. 지금은 좌대와 파손된 부도만 남아 있다.

도덕암(道德庵)은 도덕산 중턱에 있는 신라 때의 절로 정혜사의 12암자 가운데 하나. 신라 경덕왕 때 도화동의 서북쪽 두덕산(斗德山:도덕산)에 세웠는데, 처음엔 두덕암(斗德庵)이라고 부르다가, 회재 선생이 정혜사에 머무르며 공부할 때 도덕암이라고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주 향교의 위패를 이곳에 보관하기도 하였다.

범바우는 사자바우 남쪽에 있는 바위로, 호암(虎岩)이라고도 한다. 옛날 숲이 울창하여 범들이 날뛰며 이 바위에 앉아 놀아 주민들이 늘 불안했으나, 회재 이언적 선생이 건너편 바위를 사자바우라고 부른 뒤에, 범의 자취가 없어졌다고 전한다.

옥산저수지(玉山貯水池)는 일제 때 못을 막기위해 기초를 하였으나 중단되었다가 1958년에 준공했다. 면적 119정보의 저수지로, 둑의 길이는 130m이다.

2리 서원마을은 선조 2년(1569) 회재 이언적 선생을 추모하고 제향(祭享)하는 옥산서원을 사액 받은 후, 이곳을 '서원(書院)마을' 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서원촌(書院村)' '서원마을', '원촌동(院村洞)'이라고도 한다.

옥산서원(玉山書院)은 자옥산을 마주하고 화개산을 배경으로 있다. 화개산은 회재선생이 붙인 이름으로 꽃우산을 연상할 만큼 지금도 울굿불굿한 산색이 마치 우산을 펴놓은 듯이 옥산서원을 감싸고 있다. 서원은 조선시대의 성리 학자이며 이조 5현(李朝五賢)의 한 분인, 회재 이언적(李彦迪)을 제향하는 곳으로, 조선 선조 5년(1572)에 경주 부윤 이재민(李齋閔)이 선비들과 더불어 사당을 세웠고, 서악(西岳)의 향현사(鄕賢詞)로부터 이언적의 위패를 옮기고, 선조 임금으로부터 옥산서원이란 사액(賜額)과 서적을 하사받았다. 이 곳에는 1967년 3월 8일 사적 제15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옥산서원 현판은 바깥쪽에 걸려 있는 것이 추사 김정희가 쓴 것이고, 안쪽에 있는 것은 아계 이산해선생이 쓴 것이다.

옥산서원에는 어서(御書)를 보관하는 옥산서원어서각(玉山書院御書閣)이 있으며 어필각(御筆閣)이라고도 한다. 이 곳에는 시전(詩傳), 춘추(春秋), 예기(禮記), 주자어록(朱子語錄)을 비롯한 약1,000여종, 6,000책이 현재 보관되어 있다.
옥산서원 앞 계곡의 넓다란 바위에는 퇴계 이황이 쓴 세심대(洗心臺)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오탁악세에 찌들린 마음을 씻어라고 일러주고 있다.

서원마을에는 옥산서원 서쪽의 개울 건너를 섬촌이라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자옥산계곡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이곳에 흙산을 이루어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지금도 이 마을에는 땅을 파면 자갈, 모래만 나온다고 한다. 또한 마을 뒤로 개울이 있어 마치 섬을 연상한다고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백씨세사(白氏世祠)는 서원 맞은편 자옥산 기슭에 있으며 백씨 시조인 송계 백우경(松溪白宇經)을 제향하기 위해 1985년 문중에서 세웠다. 경내에 묘우(廟宇)를 비롯해 경춘당(敬春堂), 경의당(敬義堂), 학고재(學古齋), 건중문(建中門), 신도비(神道碑) 등이 있다.

삼마을은 집이 세채만 있다고 불려진 이름이다. 지금은 이 곳에 대흥사가 들어서 있다. 대흥사는 염불종 김윤보스님이 지은 절로 지난해 완공했으며 자옥산(紫玉山) 동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3리의 중보마을은 중부(中阜)라고도 하며 약1,400년 전에 설씨(薛氏)가 이곳에 보를 막고 농토를 일구어 정혜들을 일구었는데, 후에 위에 정혜못을 막고나서 '중보'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4리 삼거리는 자옥산(紫玉山)과 어래산(魚來山), 그리고 무학산(舞鶴山)이 보이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마을이라 하여 '삼거리'라 불렀다고 하며, 서쪽으로는 영천, 북쪽으로는 노당, 그리고 동쪽으로는 포항으로 가는 세 갈래 길의 중심지라 하여 '삼거리'라고도 부른다 한다.

이 마을은 1, 2, 3리가 회재선생의 후손인 여주 이씨들의 집성촌으로 약70%가 이씨들인데 비해 32본이 어우러져 사는 각성받이 마을이다. 서태용(58 옥산1422)이장은 "1974년 새마을 우수마을로 지정될 정도로 주민화합이 잘된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약200년 묶은 은행나무가 있어 당수목으로 지정하여 해마다 동제를 지내고 있다.

원당(元堂)골은 옥산초등학교가 있는 곳으로 옛날 원씨 성을 가진 정승이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며, 원답골이라고도 부른다.

무학산(舞鶴山)은 무능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회재선생이 무학산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머메라고도 하며, 높이 338m로 옥산. 두류. 강교리에 걸쳐 있다. 도덕산, 자욱산, 화개산과 함께 옥산을 둘러싸고 있는데, 옥산의 서남쪽에 있다.

옥산1리(이장 이우근 39 1562)는 세대 명, 2리(이장 이지성 59 1356) 세대 명, 3리(이장 최현복 48 217) 세대 명, 4리(이장 서태용 58 1422) 세대 명이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손준석(98 옥산 9)할머니이다. 이 마을이 낳은 인물로는 이지해(52 금년에 해군준장으로 진급), 이근덕(74 5공당시 노동청 상무이사, 재해심사위원장), 이지각(75 자유당, 도의원), 이지태(화공학박사 현 경북대교수) 등이 있다. (이상 자료협조; 이주홍 71 옥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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