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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행 기억상실증에 걸린 백치처럼 애달프다···부조역

1969년 한해 10만여 명의 애안 실어 나르던 간이역
선애경 기자 / violetta22@naver.com1026호입력 : 2012년 02월 20일
↑↑ 부조역 대합실에 있었던 손님들의 체취가 배인 길다란 나무 벤치가 역의 뒷마당으로 쓸쓸히 쫓겨 나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
ⓒ (주)경주신문사
겨울비가 막 그친 오전의 부조역은 적요했다. 건설업체에 임대로 내어 준 부조역扶助驛은 단층의 현대식 건물로
여느 일반 여염집의 폼새와 다를 것이 없어 보여 그가 역이었다는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단촐한 세간살이를 떠올릴 만큼 한껏 웅크린 모습이었다. 역 입구의 오래된 호두나무는 전설만 주절이 열려 있었던가.
겨우 역구내(역의 뒤편)로 가서야 부조역이라는 역명의 역간판으로 표상되는 간이역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낯설고 수상한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부조역은 또 얼마나 강동면 사람들의 애환을 품고 있을까.

경주 강동면 유금리에 가면, 기차가 산굽이 돌아 병아리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만큼 멈칫하는 부조역이라는 간이역이 있지요 이놈의/ 앉은 뽄새를 볼라치면, 소꿉놀이하는 어린 누인/데요 늘 봄날 오후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지 않겠어요 그러다가도 하루 왕복 네 번 서는/ 통일호나, 느림보 비둘기 올 때만큼은요 말랑말랑한 가슴 헤쳐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얼굴로, 타고 내리는 두꺼운 손 한번 슬쩍 잡아보/곤, 떠나는 기차 마지막 칸을 더덕꽃잎 눈으로 그렁그렁 바라보더라/고요 글쎄// ...중략 -김종현, 유금리 시편 · 1 부조역扶助驛 중에서-

#강동면 유금리 부조역
ⓒ (주)경주신문사
부조역은 동해남부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양동마을 입구의 양자동역과 포항방면의 효자역 사이에 있다.
강동면 사무소, 강동 우체국, 강동 새마을 금고, 강동치안센터, 강동초등학교 등과 함께 경주의 경계 끝자락에서 인근의 포항을 생활권으로 하는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 1079-2번지에 있는 역으로 코레일(Korail) 대구본부 소속으로 경상북도의 철도역이다.
강동면 중심지에 위치한 역이었으나 여객수요가 적고 도로교통이 발달해 현재는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무인역이다. 경주시내에서 강동방면으로 가는 포항시내에 근접한 역사는 2010년 민간에 임대되어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부조시장의 이름을 따서 ‘부조역’이라는 역명 지녀
부조역 이야기를 알 만한 주민들을 찾다가 어르신들이 모여 있을 법한 부조역 근처의 다방들을 찾아다녔다. 그 중 한 곳에서 40여 년간 유금 4리 이장을 한 오재익(76세) 어르신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경부조장慶扶助場’ (경상북도 부조장)이라는 시장은 강동면 국당1리 연일쪽에서 장이 서다가 해방 후 부조역 주변으로 장터가 옮겨지면서 역이 위치한 행정구역은 유금리였지만 부조시장의 이름을 따서 ‘부조역’이라는 역명을 가지게 되었다”고 부조역의 역명 유래를 말해준다.

#협궤선에서 광개선으로...
“부조역에도 협궤열차가 있었다. 인동2리의 강동우체국에서 별산 가는 농로가 있는데 그 길이 옛 철길이었다. 그리고 당시는 유금1리에 부조역사가 있었다. 저지대인 유금1리의 역사는 잦은 침수로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완행이었던 증기기관차가 다녔고 물이 떨어지면 포항에 가서 끓인 물을 넣고 다니던 증기 기관차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한편 본사로 전화제보를 해준 부산시 수영구에 거주하는 최상익(82세)씨는 “1948년 정부수립 이전, 그러니까 국군이 창설되기 전 경주지역 철도파견본부가 있었고 ‘조선국방경비대’ 제 6연대가 경주의 터널과 철도에 한해 경주의 여러역을 비롯, 부조역까지 관리, 경비했을 당시 금장철교에 근무하던 초소장이었다.”며 협궤기차 시절의 기억을 회고해 주었다.
오재익 어르신은 “광궤선을 탔는데 한국전쟁이후에는 ‘고뻬기차’라는 화물기차에 화물과 함께 타고 다녔다. 이후 좌석을 몇 개 달고 다니더라고...(웃음). 그러던 것이 한냥 두냥에서 기차 냥수가 늘어났다. 짐을 이고 있는 사람들은 화물칸에 탔다. 짐이 없는 이들은 일반좌석에 앉고 짐에 따르는 운임도 줘야 했다. 짐도 공간을 차지하므로 차장이 내놓으라고 했었지.”한다.

↑↑ 민간업체에 임대를 내주어 부조역사임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부조역의 정면 모습.
ⓒ (주)경주신문사
↑↑ 2010년 민간에 임대되기 전의 단정한 부조역 모습.
ⓒ (주)경주신문사
#부조역의 주요 운수일지
부조역의 주요 운수일지를 살펴보면, 1918년 12월 28일(배치간이역)으로 출발,1944년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개업한다. 1945년 7월 10일 표준궤로 개량하고 화장실을 신축, 1967년 을종승차권 대비소로 지정되며 1972년 7월 20일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기에 이른다.
다시 1985년 11월 25일 역사를 신축하고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가 1992년 6월 22일 배치간이역(운전취급)으로 재격하된다. 1992년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고 1997년 1일1명 이 근무하는 역이 된다. 2004년 12월 10일 역원 무배치간이역으로 재격하, 2007년 6월 1일 영업이 종료되었고 일반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는 역이 되었다. 2010년 8월 14일 부조역사는 역사를 일반 민간건설업체에 임대하고 오늘에 이른다.

#1970년전후, 교복으로 까맣게 수놓을 만큼 통학생들이 많아
많이 달다 싶은 계피차를 마시며 오재익 어르신의 회고는 이어졌다.
부조역 인근의 강동면사무소 일대가 부조시장이었다. 부조역이 생기면서 해방 전에 부조역사와 부조장이 옮겨졌다. 부조역사 신축 당시 관리인은 일본인이었고 인부는 한국사람이었던 것으로 해방 바로 직전에 지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강동면 사람들이 이용객의 대부분이었던 이역은 포항과 경주의 중·고등학교를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부조역 주변은 생활권이 포항이다. 주요 생산물은 과일인 사과와 포도가 유명했으며 수확한 야채와 함께 포항, 울산으로 팔러 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다. 짐이 많은 사람은 소가 끄는 달구지를 이용해 장을 보러 다녔고 짐이 적은 사람은 생산물을 머리에 이고 와 이곳의 기차를 이용했다.

특히 통학생들이 무척 많았다. 겨울철에 역을 보면 당시의 교복으로 까맣게 수놓을 만큼 통학생들이 많았다. 호수는 적어도 가족구성원이 많았을 시절이었으니...
화물취급업체인 일명 ‘마르보시’가 있어서 운임을 받고 화물들은 그 직원들이 취급해 주었다.
역사의 위치는 그대로이나 많은 개보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 목재인 스기목으로 지은 역이었다.
원래 안강역이 제어역이었으나 2007년이후 포항역에서 ‘운전취급집중화’를 통해 부조역, 안강역, 효자역을 제어하게 되었다.

#부조역 여객인구 변천사 (그래프)참조
1969년과 1970년에 그 이용인구가 최대치를 기록하고 점차 감소해 1989년을 고비로 1993년부터 급감하게 된다. 아스팔트가 보편화되고 대중교통인 시내버스가 등장하면서 여객인구가 급감한다. 이는 자연스런 결과다. 기차는 하루에 서너번 운행했으므로 당연히 수시로 운행되는 시내버스에 그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영화촬영지로...
가게들이 역 주변인 유금4리 부조장터에서 역전까지 부조역 앞 일대를 이루고 있었다. 부조장은 포항바다까지 약 4킬로 지점으로 해산물이 시장의 주요 거래 품목이었다. 처음엔 역장, 부역장이 근무하는 역이었고 10명이 격일로 교대를 하다가 다시 4명, 2명으로 최후엔 한명의 역무원이 있었다. 하루 24시간 근무를 하더라. 20여 년 전에는 부조역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기도 했는데 그 영화 제목은 기억나질 않는다.“고 소중한 부조역의 뒷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허남태 경주역부역장은 “장용수 계동역장이 부조역에 혼자 부역장으로 근무했을때 에피소드 하나는 지네에 물려 안강역에 전화해서 급히 병원에 실려가 구사일생한 경우도 있었다고. 부조역에는 유난히 지네가 많았다.”며 파안대소 했다.

역명판 조차 철거되어 떨어져 나가 한쪽 기둥만 남아있는 부조역. 수많은 애환들로 북적였을 대합실은 건조하고 각진 네모난 간판을 걸고 사무실로 사용되어 역으로서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찻길 옆은 인근 주민들이 경작하는 텃밭으로 변해 버렸고 간이역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상상은 에누리없이 어그러졌다. 그럼에도 ‘저어 안강이나 포항 다녀오는 바람이 역사에 들러, 심심한 역무원의 목덜미를 애인 머리 쓰다듬듯 살살 어루만지기라도’하던 부조역은 급행 기억상실증에 걸린 백치처럼 뒤태가 어여쁘다.

역 구내를 지키던 오래된 소나무와 늦은 밤 막차에서 내리던 사람들의 발길을 인도하던 부조역의 가로등은 기억할 것이다. 시끌벅적했던 강동면민의 발자욱 소리를.
↑↑ 포항 효자역으로 가는 선로.기차는 더 이상 부조역에 정차하지 않는다.
ⓒ (주)경주신문사
선애경 기자 / violetta22@naver.com1026호입력 : 2012년 0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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