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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묵헌 이태수 선생도 다녀간 감포 ‘용굴’

용이 승천할 때 뚫렸다는 구멍이 있어 ‘용굴’로 불려 SNS상 핫플레이스로 등극
오선아 기자 / suna7024@hanmail.net1417호입력 : 2019년 12월 05일
↑↑ 여주이씨 옥산문중에서 선조의 자취를 둘러보고자 감포 용굴을 찾았다.

전촌항 북쪽 해안 길을 따라 긴 방파제와 전촌의 남쪽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곳곳에는 초소가 있다. 이곳은 군 작전지역으로 일몰이후 출입이 통제되며, 군사시설을 촬영하는 것 역시 금지다. 그곳에는 높다란 거북바위가 해변가에 웅크리고 있다.

용이 승천할 때 뚤렸다는 구멍이 있어 ‘용굴’로 불리어지는 이 곳은 거센 파도와 자연 절경이 어우러져 관광객과 지역민들 사이 입소문을 타며 SNS상 핫플레이스로 등극해가고 있다. 지난달 이곳 감포 ‘용굴’에 대해 옥산문중 묵헌 선생이 다녀갔던 곳으로 본지에 소개됐다.

오상욱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이 회재 이언적의 후손인 문헌 이태수 선생의 ‘남유일기’를 소개하며 감포 용굴의 옛 지명이 공암이란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오 원장이 해석한 ‘묵헌실기’ 권2 ‘남유일기’에서는 ‘정미년(1847) 9월 9일. 장진(長津) 공암(孔巖)에 오르니 높다란 거북바위가 해변 가에 웅크리듯 있고, 가운데는 굴이 나 있는데 사면에 구멍이 성문처럼 구멍이 났다. 고래 같은 파도가 드리닥치니 세 곳의 구멍으로 뿜어져 나가는데 정말 볼만한 볼거리였다’라는 내용이 전한다.

여주이씨 옥산문중 이수목 유사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반가운 마음에 문중 사람들과 선조의 자취를 둘러보고자 이곳 공암(감포 용굴)을 찾게 됐다. 경북고전번연구원 오상욱 원장님에 의해 잘 몰랐던 집안 어른을 조명할 수 있게 된 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문중발전을 위해 선조들의 삶과 업적이 더 많이 밝혀지고 선양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공암으로 밝혀진 감포 ‘용굴’

조선후기 유기(유람기)문학과 산문을 중심으로 집중 연구 중인 오상욱 원장은 “경주 유기는 당시 선비들이 옛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를 유람을 통해 다양한 인식과 회한을 담은 글로 조선시대 경주의 새로운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서 “고전을 번역하다 보면 기존 문화에 대한 통념이 새롭게 바뀌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시대 선비문화가 경주학의 하나의 범주로 정확하게 연구되고 밝혀진다면 경주의 중요한 문화컨텐츠로 자리잡을 것”이라면서 “감포 용굴 역시 묵헌의 ‘남유일기’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지역의 관광콘텐츠로 개발·활용되길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오선아 기자 / suna7024@hanmail.net1417호입력 : 2019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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