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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 물 길 따라, 이야기 따라[4]-경주 국당마을의 효자, 효부이야기


이종기 시민 기자 / 1398호입력 : 2019년 07월 11일
경주에는 ‘국당’이란 마을이 두 군데가 있다. 옛 부터 나라님이나, 신령께 굿을 하며 복을 비는 사당들이 있든 동네로, 그 이름이 굿당→국당(菊堂)으로 변해왔다고 한다. 둘 다 형산강 물의 좋은 기운을 받아. 인심 좋고, 평온하며, 특히 효심이 넉넉한 마을로 전해 오고 있다.

▼강동면 국당리의 칠자교(七子橋) 이야기
강동면 사무소에서 앞 형산강을 건너 천북쪽으로 가는 큰 다리(국당교)가 있고, 그 강 뚝 오른쪽으로 400여 미터 올라가면 물 높이만한 낮은 보(堡)가있다. 주변에 돌더미가 있고, 갈대들도 무리 지어 너울거린다. 이곳 국당리(菊堂里) 일대가 조선말 전국에서 이름난 큰 시장인 ‘위 부조장터’로 알려져 있다.
옛날 이 마을 에 과부와 아들 칠형제가 살고 있었다. 언제 부터인가 어머니는 밤이 되면 몰래 마을 앞개울을 건너, 저쪽 마을 남자를 만나러 다녔다. 어느 날 밤 칠형제는 냇가로 나가 어머니가 강을 건너는 모습을 몰래 보고. 모두들 그녀를 위해 징검다리를 놓자고 했다. 어머니의 수고와 위험을 걱정해서였다. 밤이 이슥해 어머니가 나가시면 그들도 그녀가 돌아오기 전까지 몰래 돌다리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마음 한구석에 깔려있지만 아버지 없이 고생하며, 자기들을 길러준 어머님의 정성이 우선 앞선 것이다. 어느 늦가을 쌀쌀한 밤이었다. 어머니는 보통 때보다 일찍 귀가하다가 개울에서 물을 첨벙거리며 사람들이 돌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았다. 풀 섶에 숨어 그들의 동태를 살폈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좀 더 빨리 서둘러라,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가 다 되어 가는 것 같아’ ‘저 소리는 틀림없이 큰 애 목소리였다. ‘겨울이 오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해요. 그래야 어머니가 추운 날에 고생을 안 하지’ 저 소리는 막내의 소리였다. 갑자기 어머니는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마움의 눈물이요, 죄스러움의 눈물이었다. 이튿날부터 어머니의 건너 마을 밤길은 뚝 끊어졌다. 그러나 징검다리가 완성될 때까지는 전(前)과같이 그 시간대에 개울에 나갔다. 자식들의 갸륵한 효심의 돌무지를 중도에 허물고 싶지 않아서였다. 수일이 지나 징검다리는 완성되었지만 정작 어머니는 그 다리를 한 번도 밟지 않았다. 훗날 사람들은 이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고도 불렀는데, 아버지에 대해서는 자식으로서 불효였지만, 어머니께는 효도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선행이야말로 어머니께 그릇된 행동을 일깨워준 진정한 효심으로 보았으리라. 그래서인지 훗날 그 어머니와 아들들을 칭송하고, 이 다리를 효성이 지극한 일곱 아들이 쌓은 다리인 ‘칠자교(七子橋)’라고 불렀다고 한다.

↑↑ 월성최공열부 오천정씨 효열각.

▼사정동 국당 마을 오천정씨 효열비각 이야기

오릉 뒤편 흥륜사 건너 도로〔국당길〕변에 ‘최진간’과 그의 열부 ‘오천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각이 있다. 효열각(孝烈閣) 앞에는 큰 무궁화가 서있고, 태극 대문에 돌담이 사각으로 비각을 에워싸고 있다. 이곳은 남천물이 형산강(서천)으로 유입되는 주변 논밭지역이다. 마침 비각을 관리하는 분의 도움으로 그 안에 들어가 조언도 듣고, 찬찬히 살필 수가 있었다.

비석에는 ‘고 독효 처사 월성 최공 열부오천정씨 기적비(故 篤孝處士月城 崔公烈婦烏川鄭氏記蹟碑)’라고 적혀있다. 이 비문속의 ‘최진간(崔震幹)’은 임진왜란 때 크게 공을 세운 경주 ‘최진립’ 장군과 인척이 되는 ‘최신린’의 둘째 아들이요, ‘오천정씨(烏川鄭氏)’는 그의 아내이다. 임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최신린은 아들들을 불러놓고 병환중인 할머니를 잘 모셔야한다는 당부를 하고 싸움터로 떠난다. 왜적이 쳐들어오고 주변 사태가 위험하자, 평소 효성이 지극한 최진간이 할머니를 엎고 깊은 산 골로 피신한다. 그러나 왜군에게 발각되고 할머니를 헤치려하자, ‘나는 죽어도 좋으니 할머니는 헤치지 마라’고 외치며, 맨몸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본인은 물론, 할머니도 칼을 맞아 죽는다. 포항 영일에서 시집온 그의 부인은 왜군이 퇴각하자, 남편과 할머님의 시신을 묻고 통곡한다. 두 분 다 잃고, 전쟁에 나간 시 아버지의 유언마저 지키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에, 난들 살아 무엇 하랴?, 정 씨는 충효가문의 현숙한 부인답게 자기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임란 후 조정에서는 정씨부인을 칭송하고, 효열각을 세우도록 했다고 한다. 효열비는 효녀, 열녀, 열부에 대한 통칭비로 부모에게 효도하거나, 결혼 후 남편이나 시댁 어른에게 부도(婦道)를 다한, 타의 모범이 되는 여자에게 내리는 포상으로 여성 최고의 미덕이며, 양 가문의 영광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hanmail.net

이종기 시민 기자 / 1398호입력 : 2019년 0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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