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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에 자리한 귀후재(歸厚齋)를 찾아서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49호입력 : 2020년 07월 22일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조선문화가 산재한 경주에는 학문의 수학장 한문서당이 마을 곳곳마다 있었다. 비록 산림에 묻혀 촌부(村夫)로 살았지만 평생을 수신제가(修身齊家)와 효우제공(孝友悌恭)을 바탕으로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살다간 이들의 삶과 공간을 이해하는 것도 소중한 우리 문화의 일부라 생각하며 옥산 귀후재(歸厚齋)로 향한다.

귀후재는 여강이씨 회재선생의 자취가 서린 옥산(玉山)의 옥산문중에 속한 강학당(講學堂)으로 독락당 서편에 위치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큰 글자 편액이, 마루 좌우에 경산 이대열(李玳烈)의 「귀후재중수기」와 안동 김창회(金昌會)의 「귀후재중수상량문」현판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662년 현종 3년 귀후재 이상규(李尙圭,1624~1696)선생이 창건하였고, 한국전쟁 이후 이지하(李志厦)에 이르기까지 강학기능이 유지되면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4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18호로 지정되었다.

『논어』「학이(學而)」편 “증자께서 말하길, 마침을 삼가고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 돌아가리라(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에서 자식이 부모의 상사(喪事)를 당하여 예절을 정중히 갖추고 조상의 덕을 생각하며 제사에 정성을 다하라는 ‘귀후(歸厚)’의 뜻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실제 귀후재는 성품이 온화하고 우애(友愛)가 두텁고, 부모를 봉양하며 선대 유훈(遺訓)을 실추시키지 않은 효자였었다. 독락당 물길 아래에 이계(伊溪) 이기희(李紀曦,1863~1953)와 그의 아들 고암(顧菴) 이병근(李秉近,1898~1975) 등도 강학의 기능을 이었고, 세월이 흘러 후손 춘포(春圃) 이병태(李秉泰,1915~1990)가 묘갈명(「歸厚齋處士李公尙圭 墓碣 幷序」)을 지었다.

춘포는 회재 이언적(李彦迪)의 혈손 잠계 이전인(李全仁)의 후손으로 치암(癡庵) 이순(李淳)·조부 율파(栗坡) 이치수(李致壽)의 가계를 이루며, 1915년 부친 농은(農隱) 이기봉(李紀奉)과 모친 영양최씨(永陽崔氏) 사이에서 영천 파계(巴溪)에 태어나 살다가, 1944년 경주 옥산으로 옮겨와 살았다. 어려서 당숙 이기삼(李紀三)에게 글을 배웠고, 1927년 경곡(耕谷) 정태검(鄭泰儉)의 사위가 되어 학문을 익혔다.

1963년 우암 송시열의 후손 술암(述庵) 송재성(宋在晟)이 “봄에 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둬들일 곡식이 없고, 젊어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다”에서 뜻을 취해 ‘춘포(春圃)’ 호를 지어 주고 기문도 지었다. 족숙 이기희·삼희재(三希齋) 손석여(孫錫汝) 등과 교유하며 선대의 서적을 정리하고, 󰡔회재선생별집󰡕 2책 󰡔구암집󰡕 등 편찬의 주요한 역할을 맡았고, 1979년 성균관장 박성수에게 선조 잠계공의 사적비 건립을 위한 글을 청해 받는 등 선조 선양에 정성을 쏟았으며, 근래 보기 드문 한학자이자 옥산의 든든한 재목이었다. 이처럼 평소 농사일처럼 학문을 중단없이 부지런하였고, 선조를 위한 일을 자신의 소임으로 생각하였으며, 지역학 연구에 소중한 『춘포초고(春圃草稿)』가 전한다.

귀후재 처사 이상규 공 묘갈명 병서
공은 1624년 4월 1일에 옥산리 옛집에서 여섯 형제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덕성이 온화하고 우애가 더욱 두터웠으며, 자신을 닦고 부모를 봉양하며 선대의 가르침을 계승하였다. 실로 선조가 남기신 세업(世業)을 봉수하고 자연에 묻혀 시부(詩賦)를 읊조렸으며, … 의를 행하니 친한 벗과 형제·친척 그리고 동복(僮僕)에 이르기까지 말을 달리하는 이가 없었다. … 선조를 받들고 후손의 터전을 두텁게 하는 것은 바로 유가(儒家)의 본분이었다. 숙종 병자년 5월 15일 향년 73세로 정침에서 돌아가셨다.

아! 슬프도다. 공은 대현(大賢)의 후손으로 효성과 우애는 하늘에서 타고났고, 지조와 실천은 가범(家範)에 바탕을 두었다. 자신의 몸가짐으로 집안을 처리하고, 법도를 준수하였으며, 아들과 조카를 양육하며 부모에게 누를 끼치지 않았다. 후손이 번창하고 자손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덕을 두터이 쌓고 넉넉히 베푼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驪江李氏 歸厚齋 世德考』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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