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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동 선비 임화세. 계림 12경을 다시 읊조리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45호입력 : 2020년 06월 25일

↑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시대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경주를 다양한 기록으로 기술하였지만, 고려와 조선의 선비들은 경주를 망한 신라의 회한과 유적의 황폐함으로 애통함을 자주 드러냈다. 특히 달성서씨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남긴 「경주십이영(慶州十二詠)」은 폐허가 된 경주의 역사문화를 보면서 신라 망국의 한을 거침없이 12 소재의 시로 남겼다.

서거정은 자가 강중(剛中), 호가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으로, 안주목사를 지낸 부친 서미성(徐彌性,1383~1431)과 권근(權近,1352~1409)의 따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1438년(세종20) 생원·진사에 모두 합격하고, 1444년 2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을 거쳐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경연사경(經筵司經)·형조참판·대사헌·우참찬·이조판서·병조판서 등 여러 요직을 두루 지냈고, 중국사신이 되어 문명(文名)을 떨쳤다. 1478년 군용순찰사(軍容巡察使)가 되어 경상도 지역을 두루 순방하였고, 경주를 찾아 많은 기문을 남겼다. 작자 미상의 『해동잡록(海東雜錄)』에는 사가 서거정(徐居正,1420~1488)에 관한 인물 기록과 그가 남긴 글이 가득하다.

『사가집』「시집보유(詩集補遺)」권3에 수록된 「경주십이영」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鷄林靈異 계림의 기이함
*신라 박-석-김 900년 왕조의 흥망성쇠가 석양에 저물어 감을 표현
2.鰲山奇勝 금오산의 기이한 경치
*조망 좋은 금오산에는 서예가 김생과 최치원의 흔적이 가득하다
3.鮑亭感懷 포석정에 대한 감회
*유상곡수의 포석정 앞에서 신라의 마지막 모습에 만감이 교차하다
4.蚊川騁望 문천을 두루 바라보다
*사금갑(射琴匣)·옥문지(玉門池) 그리고 이차돈의 전설이 서린 곳
5.半月古城 옛 반월성
*아득한 명활촌과 인적 드문 흥륜사가 아스라이 곁에 있다
6.瞻星老臺 오래된 첨성대
*비바람에 꺾이고 깎여 형세가 기울어진 첨성대
7.芬皇廢寺 폐허가 된 분황사
*황룡사를 마주한 분황사에는 이름난 승려가 없는 아쉬움
8.靈妙舊刹 영묘사 옛 사찰
*비석엔 지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9.五陵悲弔 오릉을 슬피 찾다
*전설에 비해 초라하고 적막한 오릉을 표현
10.南亭淸賞 남정의 맑은 경치를 감상
*남정에 기대어 박혁거세와 석탈해의 탄생설화 그리고 김유신의 무상함을 느끼다
11.聞玉笛聲 옥적 소리를 듣다
*망한 성에서 옥적을 다시 듣고 싶은 심정을 표현
12.過金庾信墓 김유신의 묘를 지나다
*천하의 장수 김유신과 천관사를 추억하다

서거정 이후 서천(西川) 어세겸(魚世謙,1430~1500)의 「雞林十二詠」,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鷄林詠」, 송소(松巢) 권우(權宇,1552~1590)의 「次韻東京十二詠」, 양서(瀼西) 이광윤(李光胤,1564~1637)의 「次夢村月城韻 二首」, 시암(是庵) 임화세(任華世,1675~1731)의 「次徐四佳居正 魚文靖世謙 雞林十二詠 幷序」,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1679~1759)의 「次東京十二詠韻」 등 많은 문인들이 그의 시를 차운하였다.

임화세는 경주 남산리 출생으로 부친 임인중(任仁重)과 모친 오천정 씨 사이에서 태어나,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학풍을 가학으로 이었고, 1699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예조정랑에 이르렀다. 평소 지조가 강건해 권세가의 미움을 받았고, 모친 별세 이후 54세에 벼슬을 버리고 남산 기슭에 몽희당(夢羲堂)을 짓고 은거하였다. 저서로는 『시암집』이 전한다. 임화세는 서거정의 시를 차운하면서 서문(序文)을 달고, 12번째 過金庾信墓를 과각간묘(過角干墓)로 표현한 것이 특이점이다.

서거정·어세겸 시에 차운한 雞林十二詠 幷序
내(임화세)가 을유년(1705)에 낭산의 남쪽에 살았는데 옛 박혁거세의 유허지이고, 서라벌의 빼어난 곳이다. 월성은 그 북쪽에 있고, 포석정은 그 서쪽에 있으며, 금오산과 문천이 있어 예나 지금이나 굽어보고 우러러보니 감격스러웠다. 이에 지난날 번성함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고, 지금 깨진 기왓장과 무너진 담장은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없다. 황량한 풀밭엔 곳곳에 좁은 길이 생기고, 골짝의 바위 그리고 새와 꽃은 오히려 옛적 모습이 있으니, 나그네 가운데 이곳을 지나는 자들은 다만 한 움큼의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따름이다. 아프고 신음하는 겨를에 삼가 앞선 현자의 시를 차운하며 전에 없던 마음을 머문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45호입력 : 2020년 0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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