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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균형 잃게 한 문화재보호법의 맹점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16호입력 : 2019년 11월 28일
↑↑ 정주교
변호사/문화재청 고문
이은상이 시를 쓰고 김동진이 곡을 붙인 가곡 ‘가고파’는 우리 국민의 애창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노래는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로 시작된다. 이은상은 자신의 고향 창원 앞 바다의 풍광을 그리며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고향이 있다. 여름이면 책가방을 메고 서천내로 달려가 물놀이하고, 겨울이면 미나리 깡에서 썰매를 타던 추억,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던 봉황대와 이름 모를 고분들, 사진작가 배병우가 유명세를 탄 작품 소나무를 나는 이미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수도 없이 그렸다. 천년고도의 유적과 그 추억을 배경으로 한 경주의 옛 모습을 꿈엔들 잊을 수가 있을까. 그때 경주는 균형 잡힌 도시였다.

오악으로 둘러싼 경주 분지 중심에 시가지가 있었고 서천, 남천, 북천을 경계로 주변부가 형성되었으며 도시와 전원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경주는 도시로서의 균형을 상실한 듯하다. 도심은 낙후되고 시가지 주변지역은 난개발이 진행되었다. 나는 이러한 도시 균형의 상실은 문화재보호법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문화제보호제도가 시행된 것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우리 문화재보호법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진 것은 1962년에 이르러서이다.

문화재보호법에서는 처음으로 문화재라는 용어가 사용됐고, 문화재에 대한 현상변경이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문화재에 대한 원형보존 제도가 시행됐다.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될 당시만 하더라도 문화재에 대한 보호는 점(點)의 보호에 치중해 문화재 그 자체만을 보호했을 뿐이고 문화재 주변을 따로 보호하지는 않았다.

다만 1978년 건축법시행령으로 공항, 터미널, 종합경기장, 공공건물 등과 같은 특수건축물 등에 대해서는 건설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면서 문화재 외곽 300미터 이내 지역도 이에 포함시켰으나 이 제도는 1980년에 이르러 그 범위를 100미터로 축소하고 승인권자를 시도지사로 변경했다가, 그마저도 1999년 규제 개혁 차원에서 모두 폐지했다. 그러다가 유적은 그 땅에서 삶을 영위한 조상들이 자연환경에 대해 성취한 생활체험의 표현물이기 때문에 유적과 그 유적을 둘러싼 환경을 동시에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문화재는 그 자체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도 동시에 보호하도록 확대됐다.

이에 따라 2000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문화재 외곽 500미터 이내 지역에서는 문화재 영향검토를 의무화하고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문화재 주변지역의 현상변경을 억제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그런데 문화재보호법은 전국을 똑 같은 대상으로 하다 보니 미처 경주의 특수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이 법에서는 현상변경허가를 받아야 하는 지역을 문화재 외곽경계로부터 500미터로 규정하였는데, 경주는 도시 전체에 문화재가 산재해 있고 각각의 문화재로부터 500미터의 동심원을 그리다보니 시가지 대부분이 현상변경허가 구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다보니 경주 시가지는 문화재의 경관보호라는 규제에 묶여 개발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시가지 개발 수요는 자연스럽게 문화재 주변 500미터 지역을 벗어난 주변지역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풍선효과처럼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른 것과 마찬가지로 개발 제한을 피해 시가지 주변 지역으로 난개발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화재의 경관 보호를 문화재 주변 500미터로 정한 것은 절대적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화재 주변이라고 하더라도 문화재의 경관에 영향이 없는 곳이 있는 반면 500미터 바깥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문화재의 경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이 있다. 특히 경주는 오악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이기 때문에 시가지에서 바라본 오악의 경관은 경주의 풍경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에 해당하므로 경주 시가지 주변지역도 여전히 경관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웃 일본은 고도 아스카무라가 시가지의 확장으로 난개발이 이루어지자 1966년 「고도에서의 역사적 풍토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면서 시가지 주변에 보존구역을 설정하고 시가지 주변지역에 대한 경관을 보존하였고, 그 이후 유사한 내용으로 고도보존법이 제정되어 교토와 나라 등 일본의 고도는 시가지와 주변부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문화재의 경관을 보존하기 위하여 시행된 제도가 오히려 고도 경주의 균형을 상실하게 한 것이라고 본다. 경주는 경주만의 특수성을 살려야 도시로서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가지는 보존을 통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반면 주변지역에 대해서는 경관보호를 강화하여야 경주가 도시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게 될 것이고, 보존과 개발이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16호입력 : 2019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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