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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백댄서와 코러스가 등장하는 향가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13호입력 : 2019년 11월 07일
↑↑ 김영회 향가연구가
초대받은 자, 보언을 모르면 향가의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

오늘은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연구 도중 놀랐고 글을 읽을 독자들은 읽는 도중 놀랄 것이다. 그러나 믿는 것이 좋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필자 스스로도 믿을 수 없어 수없이 검증을 하였지만 결과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신라왕릉을 지키는 무인석 중에 이국적인 모습이 있다. 처용을 울산에 온 이슬람 상인이라고 주장하는 논문도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결과가 말하는 신라의 글로벌한 모습에 대해 예전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가볍게 넘겼었다.
그러다가 이국적 요소를 빼놓고는 신라를 이야기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향가 속에 흉노, 돌궐, 곤이, 사타 등 고대 아시아 대륙의 지축을 흔들던 민족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향가의 작자들은 향가 속에 이민족의 맹장들을 내세워 자신들의 조상을 치켜세우거나 천지귀신을 위협하는 임무를 맡겼던 것이다. 처용가의 해당 구절을 살펴보자.

可 入良 沙 寢矣 見 昆

극 입량 사 침의 견 곤

들어와 방을 보니

오랑캐 임금의 이름 극/들다 입/ 잠깐 량/사타족의 약자 사/자다 침/어조사 의/보다 견/종족의 이름 곤

극(可)과 사(沙), 곤(昆)이라는 세 개의 글자가 나오고 있다. ‘극(可)’은 돌궐의 왕 칸(可汗)이고, 사(沙)는 돌궐의 한 부족이던 사타(沙陀)이고, 곤(昆)은 주나라를 괴롭혔던 곤이족(昆夷族)이다. ‘극(可)’이라는 문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뜻이 ‘오랑캐 임금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돌궐족은 그들의 왕 칭호를 ‘칸(可汗)’이라고 했다. ‘극(可)’은 바로 ‘칸(可汗)’의 약자였다.

극(可)은 14편의 신라 향가 중 원왕생가, 처용가, 헌화가에 출현한다. 칸(可汗)은 돌궐에서 왕을 부르던 말이다. 돌궐의 왕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칸은 제2대 묵철 칸(默啜可汗, 재위 691 ~ 716년)이었다.
그는 측천무후 당시 당나라를 공격하여, 당나라 남녀 9만 명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천하를 뒤흔들던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초대받은 칸은 아마도 ‘묵철 칸’이었을 것이다.

사(沙)라는 글자는 사타돌궐(沙陀突厥)의 약자다. 신라 향가에 총 8회나 나타나고 있다. 살던 곳이 천산산맥 부근의 사막 지대였기에 사타(沙陀)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비록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신라에서는 어린아이까지 알았던 용맹한 민족이었을 것이다.

이들 글자는 연출자에게 백댄서나 백 코러스를 출연시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라고 지시하던 글자였다.
이들은 고유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와 민족의 고유한 춤을 추었다. 신라는 요즘 못지않은 글로벌한 나라였다. 향가 제작법에 따르면 처용가는 이랬다.

토함산 떠오를 때의 달 아름다워라.

밤에 일하는 벼슬이라서

여기저기 돌아다님이어.

잠깐 들어와 방을 보니

다리 넷이 좋아하고 있어라.

둘은 내 아래오고

둘은 누구 다리 아래이고

본래 내 아래여마오는

아내 빼앗긴 남편을 어찌하여 하릿고.

공연 도중 당나라 측천무후를 경악에 빠뜨렸던 묵철 칸과 사타돌궐족, 곤이족이 몰려나와 관객을 공포에 빠뜨렸다. 그는 처용의 아내를 괴롭히던 천연두 역신에게 썩 물러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겁먹은 역신이 처용 앞에 납작 엎드려 목숨을 빌었다.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안도했고 환호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처용이 추던 공포의 춤은 서역의 돌궐, 사타, 곤이 민족의 이국적 춤이었다. 서라벌의 밤은 이들의 경연장이었다.

처음 들어보신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민족의 왕과 군사들이 경주에 다녀갔음을 향가 제작법 속 보언이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그러한 밤이 신라의 밤이었다. 보언을 모르면 신라의 밤을 알 수가 없다. 보언을 모르고 풀면 향가의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13호입력 : 2019년 1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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