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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과 문무대왕의 마음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05호입력 : 2019년 09월 06일
↑↑ 박임관
경주학연구원 원장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선덕여왕은 서기 643년(왕 12년)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소원을 담아 황룡사 9층 목탑을 건축했다. 그리고 신라를 에워싸 위협하는 9개 나라의 이름을 층층마다 써 붙이고 의지를 다졌다. 1층은 일본(日本), 2층은 중화(中華), 3층은 오월(吳越), 4층은 탁라(托羅), 5층은 응유(鷹遊), 6층은 말갈(靺鞨), 7층은 거란(丹國), 8층은 여적(女狄), 9층은 예맥(穢貊)이 그것이다.

문무대왕은 백제 저항군을 진압하고 고구려를 정벌한 다음 당나라 군대까지 축출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평소에 지의법사에게 "나는 죽은 뒤에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한다"라고 말하였다. 왕이 돌아가시자 여러 신하들이 유언에 따라 인도식으로 화장하여 동해 어구 큰 바위에 장사 지냈다. 왕은 이후 682년 신문왕이 감은사에 나가 있을 때에 문무대왕은 호국용으로 현신하여 동해 바위에서 온갖 풍파를 잠재우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내려 주었다.

선덕여왕은 신라 왕경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랜드마크로 황룡사 9층 목탑을 만들고 가장 중요한 1층 현판에 일본을 써 붙이고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얼마나 일본이 해코지를 일삼았길래 그랬을까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문무대왕은 삼한일통을 완성하였음에도 스스로 동해의 호국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노라고 유언하였다. 사실 문무왕 당시에는 당나라와 전쟁까지 치룬 뒤라 일본의 침략보다는 당의 재침이 훨씬 더 우려되는 상황이었고 일본과는 사이가 아주 나쁘지 않았는데도 전무후무한 바다 속 능침을 유언하여 왜구(일본)를 막고자 했다. 이는 과거의 역사로나 미래의 잠재적 위협국가를 볼 때 1순위가 일본이었음을 의미한다. 문무대왕이 돌아가신 후 성덕왕과 경덕왕 때 몇 번이고 일본은 신라를 침공할 계획을 하였고 실제 그렇게 하기도 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왜(일본)는 수도 없이 한반도를 괴롭혀 왔다. 400년에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를 침공하여 서라벌이 약탈당하였으며,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파병으로 격퇴하였다. 또 661년부터 3년간은 백제 부흥을 구실로 해마다 1만~3만 명 가까운 병력으로 쳐들어와 백강 하구에서 물리쳤다. 또 신라를 자신들의 번국(藩國)으로 간주하다 753년(경덕왕 12년)에는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강요하다가 추방당하기도 하였다. 8세기 일본의 실세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나카마로[藤原仲麻呂]는 신라정토계획을 추진하고 미노와 무사시 지역에서 소년들을 선발해 신라어를 가르치고 호쿠리쿠도 등 4개 도 지역에서 500척의 배를 건조하였으나 발해와의 연합이 성사되지 않아 무산되기도 하였다.

고려에 이어 조선에 이르러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정명가도(征明假道)를 구실삼아 20만 명 병력으로 부산포를 통해 침공했다. 1592년부터 7년간의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조선 인구의 약 30%가 살육되거나 돌림병에 걸려 죽고 노예로 끌려갔으며, 농토는 절반이 초토화되었다. 1894년~1895년의 청일전쟁(淸日戰爭)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각축전이다.

1904년∼1905년의 노일전쟁은 일본이 조선과 만주에서 러시아의 지배력을 배격하려고 일으킨 전쟁이다. 이후 일본은 1904년 제1차 한일협약(한일협정서)을 강제로 체결하고 그들이 추천하는 고문을 재무와 외무에 두어 재정권과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1905년에는 고종을 협박하는 등으로 을사조약(제2차 한일협약)을 늑결(勒結)하여 국권을 강탈하였다. 1907년에는 헤이그 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것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킨 뒤 곧장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권도 합법적으로 장악해 버렸다. 일본은 1910년 8월 16일 비밀리에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합병조약안을 제시하고 그 수락을 독촉하여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되었다. 조선의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뒤 8월 29일 순종으로 하여금 양국(讓國)의 8개 조로 된 조칙을 내리도록 하였다. 이 조약 제1조는 ‘한국정부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에 양여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519년 만에 막을 내리고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은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한다’(是日也放聲大哭)의 제목아래 “오호 통재라…대황제 폐하의 강경하신 성지로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우리 2천만 동포가 노예가 되었으니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통재라 통재라…” 라고 나라 잃은 슬픔을 표현했다.

역사의 진실은 왜곡할 수도 없거니와 덮거나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일본은 지금까지 역사적 반성은 커녕 왜곡을 일삼아 왔고 독도마저 자기 땅이라고 우기기에 이르렀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whitelist)에서 제외 시킴으로서 적대국과 다름없는 경제보복전쟁을 감행하였다. 심지어 35세의 일본 중의원(하원) 의원인 마루야마 호다카[丸山穗高]는 "전쟁으로 독도를 되찾을 수밖에 없다"라고 SNS에 버젓이 적고 있다. 흔히 속내를 모르는 일본이라지만 제국주의적 보편적 국민정서가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매우 걱정된다.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영국의 수상 윈스터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 하였고 신채호 선생도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지난 과거의 역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선덕여왕과 문무대왕의 마음으로 돌아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 스스로 힘을 기를 때만이 세계 강대국의 각축장이 된 이땅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05호입력 : 2019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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