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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인 쌍탑과 불상대좌만 남아 있는 장항리사지(2)

도굴범에 의해 파괴되었던 장항리사지 석탑
하성찬 시민전문 기자 / 1405호입력 : 2019년 09월 06일
↑↑ 장항리사지 5층 쌍탑. 앞쪽이 동5층석탑이고 뒤쪽이 서5층석탑이다

↑↑ 하성찬
시민전문기자
신라의 가람배치 형식은 통일 이전에는 황룡사지와 분황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단탑이었으나 통일 이후로는 감은사지, 사천왕사지, 망덕사지 등 쌍탑 가람이 많았다.

이곳 장항리사지는 본래 금당을 사이에 두고 동서 쌍탑을 이루고 있던 것이 지금은 서탑 바로 옆에 동탑이 놓여 있다. 두 탑 중 서탑은 1923년 도굴범이 탑 속에 있는 사리 장치를 탈취하기 위하여 폭파했다. 중국 제나라에 탐욕이 심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번화한 시장에서 금은방에 들어가 금부처를 훔쳐 도망쳤다.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이라 그는 곧 붙잡히고 말았다.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 무슨 배짱으로 도둑질을 했는가?”문초를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라고요? 내가 금부처를 훔칠 때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금부처만 보였는데요” 중국 고전인 『열자(列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탑의 폭발음을 당시 절 근처의 마을 사람들도 모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굴범은 오직 탑 곳에 있을 사리장치를 비롯한 보화에만 눈이 어두워 주위를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도굴범이 체포됐다는 이야기는 없다. 혹 당시 일본 경찰의 비호 아래 이런 못된 짓을 저질렀던 것은 아닐까?
1932년 폭파된 서탑은 흩어져 있던 탑재를 찾아 현재의 위치에 복원했다.

복원된 이 탑은 높이 약 9.5m인 5층 석탑으로 돌 색깔이 부드러워 따뜻한 느낌을 준다. 1층 몸돌에는 문 모양과 함께 힘찬 인왕상이 조각돼 있다.

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석탑들은 각 부분이 여러 개의 석재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이 석탑은 8세기 중엽 이후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몸돌과 지붕돌들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어 석탑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국보 제236호로 지정돼 있다.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부를 올리고 그 위로 상륜부를 얹었다. 우선 상하 이중의 기단부는 널찍해 안정감이 있다. 하층 기단은 양쪽 우주에 탱주 2개를 조각했고, 갑석 상면에 높직한 원호(圓弧)와 얕은 괴임을 마련하여 상층 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에도 우주와 탱주가 각기 둘씩 조각됐다. 갑석은 아래쪽의 부연(副椽)이 정연하고, 상면에 높직한 각형 괴임 2단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5층 탑신은 신재로 보완했다. 지붕돌 층급받침은 각층 5단씩이고 낙수면 꼭대기의 몸돌 고임대는 각형 2단이 정연하고, 네 귀퉁이의 전각이 뚜렷하여 경쾌하다. 상륜부는 노반석만 남아 있다. 1층 몸돌과 2층 이상 몸돌의 체감률이 심한 편이나 2층 이상에서는 몸돌의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1층 몸돌 양 우주 가운데에는 문 모양의 조각[문비(門扉)]이 있고, 그 좌우의 인왕상은 벗은 상체에 무릎 위까지 오는 짧은 군의를 입고, 어깨가 떡 벌어진 다부진 몸매이다. 두 다리의 근육은 당당하면서도 활기찬 형태를 취하고 있다. 부라린 눈과 큼직한 코, 듬직한 입, 강인한 턱과 불거진 광대뼈 등 조각이 매우 빼어난 인왕상이다. 신영훈은 한 인왕상이 구성지게 노래를 하고 이 노래에 신이 난 다른 인왕상이 춤을 추는 것으로 보았다.

동탑은 언젠가 폭우로 축대가 무너지면서 계곡에 떨어져 뒹굴고 모서리는 깨져 반쯤 묻혀 있는 것을 1966년에 복원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기단부는 완전히 없어지고 탑신부 몸돌은 1층만이 남아 있는데 그 위에 5층까지의 지붕돌만을 쌓아놓았다. 1층 몸돌의 규모나 표면 조각으로 보아 동탑도 서탑과 같은 크기와 형태의 석탑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동탑의 남은 일부 부재는 붕괴된 상태로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금당터와 서탑 사이에 모아두었다.
하성찬 시민전문 기자 / 1405호입력 : 2019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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