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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 속 사라지고 있는 감포의 옛 가옥들
근대건축양식의 외형이 보존된 가옥들 아직많아
2011년 10월 07일 1008호 [경주신문]

↑↑ 감포3리 390번지 최훈씨 가옥으로 화려하고 이국적인 용마루가 아름다운 집이다.
ⓒ (주)경주신문사
지난호에 이어 감포읍에 남아있는 일정가옥들에 대해 살펴보겠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자원을 가지고 있는데도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떨칠수가 없었던 감포읍.
현재 읍민들은 예전 화려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다시 한 번 고장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한편, 개발과 편리함의 실정에 밀려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감포의 옛 가옥들을 보며 어떤 논리로 그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새로운 양식과 크고 번듯한 건물에 밀려서 점점 사라져가는 모양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

하지만 사라져가는 근대건축물을 바라볼수만은 없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우리가 관심있게 바라보고 쉽게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해 단지 구시대의 잔재로만 생각하지 말고 애정을 가지고 접근하고 재고해 볼때다.

● 감포3리 390번지 최 훈씨 가옥(40세)

ⓒ (주)경주신문사

↑↑ 긴 회랑(복도)과 내부의 화려한 목재장식이 잘 보존되고 있다.
ⓒ (주)경주신문사
거실1개,주방1개등 방이 4개이다. 이 집은 우선 용마루(건물의 지붕 중앙에 있는 주된 마루)가 화려하고 이국적인 아름다운 집이다.

기와는 당시 그대로였으며 거실1칸, 주방1칸 등 방이 4칸이었다. 그 당시 감포에서 일본갑부의 집으로 기본골격은 그대로이며 건평만 80평 정도라고 한다. 원래 건평은 170여 평으로 어머어마한 규모의 넓은 집이었고 정원도 오래 된 수석과 정원수로 잘 가꾸어진 집이었다.
최씨가 이집을 구입한지는 6~7년 정도이다. 원래 지금의 주인이 살기 전에는 ‘조선옥’이라는 고깃집을 운영하던 식당이었다. 고깃집으로 운영할 때까지는 내부구조를 전혀 손대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현관문을 열면 커다란 원형의 문이 있었다고. 94~5년까지는 원형 그대로였으며 실내가 다 들여다 보이는 구조였다. 그 이후 주인이 바뀌면서 실내의 많은 부분을 개조했다.

이는 문의 대부분이 홑 유리문들이어서 상당히 추웠기 때문이다. 외장은 일본서 직접 가져온 스기목으로 마감되었으며 창고도 일제시대 그대로이다. 1년 가량을 비워두었는데도 습기가 차지 않았다. 천정이 높은 집으로 방을 따라 길게 회랑(복도)을 가지고 있고 방마다 붙박이장인 벽장이 딸려 있어 그들이 얼마나 공간을 잘 활용했는지 알 수 있었다.

● 부산마찌(일제강점기 당시 부산 사람이 모여 살았던 집촌골목) 감포 안길 26번지

ⓒ (주)경주신문사
지금도 이 골목을 ‘부산마찌’라 부른다. 골목 끝자락에 ‘안의원’이라는 병원 건물이었던 집이 있다. 이 동네 주민들은 어릴 적부터 이 병원에 다녔다고 한다. 일제시대부터 의원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 감포3리 54-3번지, 경주수협 소유

ⓒ (주)경주신문사
경주수협이 소유주이며 원래 전무이사 사택이었고 지금은 노인들의 사랑방으로 쓰인다. 집은 90년 정도 되었다. 1920~30년의 건물이다. 해방 후 수협의 사택으로 사용되었다. 외장은 그대로이나 너무 노후화 되어 자재가 썩는 등 가옥으로서의 기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방은 4칸이며 원형의 유리창이 있는 집이었다.

● 감포3리 까만색 양철지붕 김한식씨 가옥(66세)

ⓒ (주)경주신문사
일본이 패망하고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감포주민에게 이 집을 주고 갔다고 한다. 40년 만에 전 일본집 주인의 아들이 이집을 방문했던 적도 있었다. 전 주인은 감포의용소방대장을 한 사람이다.

수리 중 대들보 안에 건축년도가 적혀있는 목재를 발견했다. 외관이 깨끗하게 보존된 일제시대 창고도 있었는데 각종 어구들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당시 감포가 어업이 발달한 항구여서 일본에서 어업관련사업자가 많이 왔고 이집도 상당히 큰 규모의 집이었다.

지붕과 벽 외장이 함석(양철)으로 지어졌고 일제강점기 당시 함석자재 그대로였고 아연도금이 아주 잘 된 집이다. 건평은 40평, 전 일본인 소유자는 어장을 관리하던 부자였다. 1960년도 기준으로 경상북도 인구가 600만이었고 감포의 인구가 3만명 정도였다. 당시 경북도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사람이 감포 사람일 정도였다.

어업은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1차 산업이었다. 이 집도 방마다 유리창문이 있었고 복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체 내부를 수리했다. 바닥이 전부 다다미였다. 김씨는 “건축연도가 107년이나 된 집으로, 수리할 때 외형은 손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이는 건물의 희소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본의 거리를 촬영할 때 감포를 많이 방문한다. 당시의 가옥들이 많이 남아있고 전국에서도 몇 안되는 귀한 곳이다.

기와는 일제당시에 원래 함석이 더 좋았다. 콜타르칠을 했는데 아주 질이 좋다. 함석지붕의 장점은 누수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내진설계를 염두에 둬 목재를 꼼꼼하게 구성했고 못을 사용하지 않았다. 벽체는 대나무에 흙을 붙여 만들었고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했다. 내가 제일 아름답게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창고의 창문이라고 본다. 창고의 내부자재는 그대로”라고 했다.

● 감포로 8길 6번지 박종호씨 가옥 (72세)

↑↑ 감포로8길 6번지 박종호씨 가옥으로 일제강점기 감포에서는 가장 늦게 지어진 집이다.
ⓒ (주)경주신문사
지붕은 원형 그대로이고 내부엔 여닫이 문이 많았고 창문이 많았다. 6.25한국전쟁 이후 감포읍장의 사택으로 사용했다. 주인 박씨는 “원래주인은 어장을 하던 ‘남정’南井이라는 일본사람 소유였다. 일본갑부로 추정되며 추정건립연도는 일제 말기로 70년이 넘은 집이다. 당시 일제강점기에 감포에서는 가장 늦게 지은 집이다. 건평은 40평 정도로 단층건물이다. 이집에 거주한 지는 50년이 넘었다. 일본식 2층 창고가 있었으나 목조집이어서 판자(스기목)로 지어 80년대 초반에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 각 방이 다다미 방이었고 문이 많았다.

천정이 무척 높았으나 지금은 많이 낮춘 상태로 일본인은 추위에 개의치 않아서 천정을 높이 지은 것 같다. 문들이 많아 외풍이 셌다. 일본집이 대부분 그렇듯 벽이 많이 없어서 통나무기둥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정원의 모습도 거의 원형 그대로이며 뒤켠에 일제당시 우물도 있다. 해방후 감포읍장사택으로 사용하다가 6.25 당시 집이 넓어 부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이 집을 수리하다가 사무라이들이 쓰던 장도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일본식 가옥의 특징

ⓒ (주)경주신문사
한옥에 비해 천정이 높고 현관의 기능이 중시 되었다. 부잣집일수록 좋은 창고를 지니고 있었다. 단층인데도 지붕의 형태가 2중으로 지어진 것이 많다. ‘후시마’라고 불리는 벽장(붙박이장)이 많았으며 긴 복도(회랑)를 가졌다. 또 크고 작은 방이 많았으며 유리창과 문이 많았다.

주민 하덕원씨는 “한 예로 제일교회 아랫집의 경우는 무려 유리창문이 200여 개나 되었다. 부잣집일수록 정원의 향나무 둥치의 둘레와 자란 높이로 세력을 과시했다고 하며 집안에 신사를 모시던 방이 있었다. 한옥은 주요 자재로 육송을 사용해 그 목재의 곡선미를 살리는 반면 일본가옥은 히노기, 스기목을 사용해 서까래나 용마루가 목재자체의 특성상 일직선으로 지어졌다.”고 말했다.

● 감포읍 사무소 관계자
“타도시에서 감포로의 접근성이 아직은 미흡하다. 현재 경주 감포간 국도 4차선 경감선도로가 공사 중이다. 그 공사가 완공되면 접근성이 나아질 것이다.

아직 구룡포읍의 경우처럼 일정가옥에 대한 관광자원화로의 추진계획은 없다. 읍내의 경우 일정가옥이 많이 남아있었던 것은 도로폭이 워낙 좁은 소로변의 건물이라서 제대로 수리할 수 없었던 터였고 도로폭이 인도 넓이 정도밖에 되지 않아 건물공사를 하지 못했던 원인이 크다. 읍민들은 도로 상가지역의 주차문제와 통행의 불편을 호소해 조속한 시일 안에 상가가 철거 되고 확장도로가 개통되길 바라는 입장이다. 현재 오류에서부터 도시계획도로 2차선으로 확장해오고 있다.

현재 감포는 어업관련업에 종사하는 어업비중의 인구가 60~70%정도이다. 감포가 좀 더 발전하려면 어업뿐만 아니라 관광레져산업도시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으며 고대안과 거마장 등을 레져산업으로 개발해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감포의 제2보문단지인 대본도 관광단지로 조성 중이다. 이런 사업들이 완성되면 좀 더 역동적인 감포가 될 것이다.” 고 말했다.

끝으로 감포3리 터줏대감인 하재원(동도기공 대표,56세)씨의 살가운 안내로 여러 일정가옥들을 자세하게 탐방 할 수 있어서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선애경 기자  violetta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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